준비안된 학업성취도공개, 재고를

2008.08.07 18:00:00

인기 TV방송 프로그램 중 '만원의 행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매주 1인당 만원의 범위 안에서 생활하도록 하고 잔액이 많은 사람이 승리하는 프로그램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노력없이 도움을 받아도 안되고 그냥 얻어 먹어도 안되는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호응이 매우 높다. 많은 연예인들이 출연했었는데, 그 때마다 정말 짠순이와 짠돌이가 누군지 알수 있다. 물론 오락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만원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그 돈에서 사용한 만큼 감액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의 자신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교과부에서 2010년부터 일선 초,중,고에서 학업성취도를 3개 등급으로 분류한 학생들의 비율을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도록 하여 학교서열화 논란이 거세다. 이 뿐 아니라 올해 12월부터는 초,중,고의 폭력 발생과 처리, 급식현황 등과 전문대학ㆍ대학의 취업률, 장학금, 연구실적 등도 함께 공개하도록 하였다. 교육과학기술부는 7일 이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교육관련 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초중고는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 등 5개 과목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2010년부터 `보통학력 이상',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등 3등급으로 나눠 해당 등급의 학생 비율을 공개한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매년 10월 초6, 중3, 고1을 대상으로 5개 교과의 교육과정에 대한 학생의 이해도를 측정하는 것으로, 그동안 일부 학교에서 제한적으로 실시됐지만 올해부터 전체로 확대된다. 평가 결과는 `우수학력'(80% 이상), `보통학력'(80% 미만~50% 이상), `기초학력'(50% 미만~20% 이상), `기초학력 미달'(20%미만) 등 4등급으로 학생들에게 통지되지만 외부에는 3등급으로만 공개된다. `우수학력' 비율이 공개되면 학교서열화 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교과부의 설명이다(연합뉴스 2008-08-07 13:08)
 
공개의 범위를 학교서열화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교서열화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어차피 학교별로 성적차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의 학력을 기초학력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이 역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어차피 수능시험을 보면 해당학생들의 성적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성적으로 공개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것이다. 학업성취도 공개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학교선택제'보다 도리어 더 가혹하다는 생각이다. 불손한 의도가 깔려있다는 생각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별로 여건차이가 분명히 있는데도 무조건 공개해서 학교간 비교를 하겠다는 발상이다. 공개를 하면 학교간 경쟁에 불이 붙을 것이고 불이 붙다보면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비하기 위해 문제풀이위주의 수업이 진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이 학생들이 단 1점이라도 더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교육과정의 파행운영을 일시적이지만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학교교사들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대단한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교육을 부추길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이미 시중에는 학업성취도 대비 문제집들이 시판되고 있고 학원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특강등이 신설되고 있다. 학생들이 부담스럽다면 당연히 학부모들도 부담스러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 임명된 교과부장관이 사교육을 잡겠다고 했는데 그와 정반대로 추진되는 것이 바로 학업성취도공개인 것이다.

다시 서두의 만원의 행복으로 돌아가면,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과 거의 신인에 가까운 연예인이 대결을 해도 둘 다 똑같이 만원에서 시작한다. 유명한 연예인이라고 액수를 높여주는 것이 아니다. 공평하게 만원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만원은 프로그램 초기부터 지금까지 공평하게 지급되는 액수인 것이다. 그런데 학업성취도평가는 모든학교가 공평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되는 것이다. 공평한 기준없이 결과로만 학교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를 가지고 나중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예측이 가능하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교에는 당장에 어떤 압력이 가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구에게는 만원만 주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2만원을 주고 대결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학교정보공개 중 학업성취도공개 부분은 재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창희 서울상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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