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2008.09.02 08:41:00

비가 온 뒤라 그런지 너무 깨끗하다. 공기도 맑다. 더운 기운은 사라지고 선풍기가 없어도 견딜 만하다. 가을을 재촉하는 단비였던 것 같다. 이런 날이면 정신도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진다.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

출근하는 길이었다. 아침 6시 40분 모 라디오방송국에서 수원 어느 초등학교 학급 임원을 뽑는 상황을 녹음하여 들려주었다. ‘잘 하겠습니다. 잘 할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잘 할 것 같습니다.’ 등 임원으로 뽑히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들이었다. 주로 ‘잘 하겠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임원이 되는 애들에게 부탁하는 학급 애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잘난 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말보다 실천을 하면 좋겠습니다.’라는 따끔한 충고의 말도 하였다.

재미있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정말 똑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옛날 시절이 생각났다.학급 임원이 되겠다고 나섰던 추억도 되살아난다. 다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보다 단순하고 진실되게 오직 잘 하겠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요즘처럼 무엇이든 안 하려고 하는 세태에 하겠다고 하고 잘 하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기좋은 일인가?

오늘 아침 초등학교 학급 임원 선출의 방송을 들으면서 중,고등학교의 임원 선출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젖게 되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학급 임원 선출에 대한 열기가 이렇게 뜨거울까? 과연 관심이 있을까? 초등학교처럼 학급 임원을 서로 하려고 할까? 잘 하겠다는 다짐을 학생들이 있을까? 초등학교처럼 학급 임원을 서로 하려고 하고 학급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오면 담임선생님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얼마나 수월하겠는가? 학급관리를 하는데 큰 힘이 될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중.고등학교 학급 임원 선출이 초등처럼 활발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다 그렇지는 않아도 대부분의 학교는 임원 선출 문제로 힘들어할 것 같다. 학교 현장에 있을 때 담임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알 수가 있다. 너무 힘들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학생들이 임원을 하지 않으려 하고 학급 일에 협조를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는 초등학교처럼 학급 임원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아니 아예 없는 학급도 있어 애를 먹는다. 서로 안 하려고 한다. 잘 하겠다. 열심히 하겠다. 밀어달라 하는 구호는 중.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은 담임선생님들이 할 만한 학생들에게 반장을 맡아달라고, 학급 임원이 되어서 해 달라고 사정을 해야 하는 판국이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담임선생님께서 학급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초등학교처럼 잘 하겠다고 하는 학생이 그리운 때다. 잘 하겠다고 하지 는 않더라도 하겠다고 나서는 학생만 있어도 담임선생님으로서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 정도이다.

왜 이렇게 갈수록 잘 하겠다도 아니고 하겠다도 아니고 안 하겠다고 하는가? 중.고등학생들이 머리가 컸다고 계산을 하다 보니 안 하겠다는 것 아닌가? 공부하는 시간 빼앗기고, 학생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고, 괜히 신경쓰이고 학급관리에 책임을 져야 하고...이러니 아예 발벗고 나서는 학생이 없는 것 아닌가?

요즘 학생들은 나이가 들수록 고학년이 될수록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너무나 이기적인 것 같다. 너무 자기 계산에만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조금도 헌신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조금도 남을 위한 노력은 하기 싫어한다. 자기 시간 빼앗기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자기가 임원이 되어 부모님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싫어한다.

초등학생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초등학생 때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해야 할 것 같다. 학급을 위한 헌신, 학급을 위한 노력, 학급을 위한 봉사, 학급을 위한 수고, 학급을 위한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이 있을 때 학급은 건강한 학급이 될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순수한 마음을 회복해야 서로 임원에 나오려 하고 ‘잘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올 것 아닌가? 공부하는 시간 조금 빼앗기고 친구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고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고 해도 내가 학급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 너도 나도 해 보겠다. 잘 해 보겠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와서 담임선생님의 고민 중의 하나를 속시원하게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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