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학생에게서 배울 점

2008.09.27 08:42:00

어제 울산 강북교육청 관내 남목중학교에서 교장 장학협의회를 가졌다. 장학협의회 시간에 교감 선생님께서 학교현황을 설명하셨다. 그 가운데 지금 2학년에 다니고 있는 할머니 학생에 대해 방송녹화된 것을 보여 주셨다.

이 박영선(62) 할머니 학생은 지금 2학년 학생으로 학교를 잘 다니고 있었다. 아주 잘 적응하고 계셨다.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머리만 파마머리일 뿐 다른 것은 다 똑 같았다.

젊은 선생님이 가르치고 계셨고 연세 많으신 할머니 학생은 몇 앞에 다른 학생과 함께 앉아 서 공부하고 계셨다. 학생들이 단체로 벌을 쓸 때는 할머니 학생도 똑 같이 뒤에 나가서 손을 들고 벌을 쓰기도 하셨다.

할머니 학생은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셨다. 과목마다 재미있다고 하셨다. 젊은 학생들 중에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는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할머니 학생은 공부할 시기가 아닌데도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니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은 자극을 많이 받을 것 같았다.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시는 모습을 볼 때면 공부가 죽으라고 하기 싫은 학생들에게 많은 자극과 도전이 됨에 틀림없을 것 같다. 공부시기를 놓친 것이 후회가 되어 늦게나마 공부에 뛰어 들었는데 그게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10대 청소년들에게 많은 유익을 끼치고 있음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할머니 학생에게서 배울 것이 참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할머니에게서 공부하고자 하는 열정을 배우게 된다. 공부할 열정이 있으니 나이를 이겨내었다. 공부할 열정이 부끄러움을 이겨내었다. 공부할 열정이 게으름을 이겨내었다. 공부할 열정이 나약함을 이겨내었다.

공부할 열정이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공부할 열정이 건강하게 만들었다. 공부할 열정이 새롭게 만들었다. 할머니 학생처럼 열정만 있으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공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공부할 열정만 있으면 시력이 나빠도 해낼 것 같고 허리가 아파도 해낼 것 같고 집중력이 떨어져도 해낼 것 같고 어깨가 아파도 해낼 것 같다.

할머니 학생보다 나이가 적은데도 머리가 안 돌아간다. 공부가 안 된다. 시력이 나쁘다. 허리가 아프다. 체력이 딸린다. 집중이 안 된다 하면서 핑계를 대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야 되겠다. 무슨 공부든 손을 놓지 않고 계속 하고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할 수 있으리라.

그 다음 할머니 학생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겸손함이다. 만약 겸손이 없다면 60이 넘어 어떻게 손자 또래의 애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겠나? 젊은 자식 같은 선생님에게서 어떻게 배울 수 있겠나? 학생들에게, 젊은 선생님에게 대접을 받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겠나? 아마 학교에서 공부하지 못할 것이다.

나이 대접도 안 해 줄 텐데, 어른 대접도 안 해 줄 텐데, 그들에게 모욕을 당할 텐데, 어떻게 체면을 구겨가면서 공부하겠나 하겠지만 할머니 학생에게서는 조금도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었고 젊은 학생들보다 더 표정이 밝고 건강하고 활발해 보였다. 그건 오직 겸손으로 자신의 위치를 던져 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박영선 할머니 학생께서 3학년까지 건강한 가운데 학교생활을 잘 해서 무사히 졸업을 해서 우리 한국교육사에 길이 빛날 아름다운 인물로 자리매김을 했으면 좋을 것 같다. 할머니 학생의 더욱 좋은 소식을 기대하면서...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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