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느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양성산의 팔각정 정자가 바라보이는 문의초등학교 도원분교에서 천사들과 생활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의 아이들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한다. 일주일에 몇 번씩 분교에서 수업을 하는 전담교사나 특기적성 강사는 물론 KBS 1TV에서 추석특집으로 방영한 '나홀로 학교에'의 작가와 PD도 아이들이 착해 촬영이 쉬웠다며 칭찬을 많이 하고 갔다.
어른의 말꼬리를 잡는 되바라진 아이들은 다른 세상의 얘기다. 유치원까지 다 합해봐야 28명에 불과한 소인수의 분교지만 이곳에는 순진하고 소박한 아이들만 있다. 어떤 일이든 다 자기 할 나름이라고 순진한 아이들은 행동도 귀여움 받게 한다. 그래서 이곳에 근무하는 교원들은 늘 행복하고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한 가지라도 더 챙기려고 노력한다.
〈 ~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다보니 문득 3월에 아이들과 했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선생님 집에 가보고 싶어 합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고, 저의 어린 시절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소박한 아이들의 꿈을 들어주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을 테니, 꼭 실천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일상을 하루만 도회지로 옮깁니다. 특별히 신경 쓰거나 따로 준비하는 것도 없습니다. 저는 그냥 도회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ㆍ외식을 하고ㆍ산책을 하고ㆍ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아파트의 생활모습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 〉
3학년 사회과에 옛날과 오늘날의 생활모습에 대해 많이 나온다. 수업을 하다 농촌에 사는 우리 반 아이들이 아파트의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 여섯 명을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 재우도록 한 것은 한 가지라도 더 챙기려는 마음이었다. 학부모님들에게 보낸 안내장의 내용대로 실천에 옮기는 일도 그 마음 때문에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이 집에 와서 하룻밤을 묵는데 왜 신경 쓸 일이 없겠는가? 그래도 우리 집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오랜만에 꼬마손님을 맞이하는 일이라 즐거웠고, 아내가 적극적으로 뒷바라지 해주는 일이라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퇴근 무렵이 되자 수업이 끝나고 일찍 하교했던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로 들어섰다. 마침 다음날이 먼 곳으로 현장학습을 다녀오는 날이라 부모님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고 오랬는데 약속시간 훨씬 전에 학교로 달려온 아이도 있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이들이다. 집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설렘으로 긴장하기보다는 싱글벙글 얼굴마다 웃음꽃이 피었다. 부모님과 시내에 오가며 몇 번은 보았을만한 풍경에도 환호성을 지르며 신기해한다.
아이들은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 집에 도착하자 말문을 닫았던 아이들이 긴장이 풀리자 집안이 소란스러울 만큼 장난을 친다. 아이들의 마음이 들떴고, 여럿이 모였으니 시끄러운 게 정상이다.
여럿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는 것도 민주시민의 의무다. 아이들의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후 청주의 젖줄 무심천이 바로 옆에 있는 숯불구이전문점 강산으로 갔다. 어릴 때는 먹는 것도 경쟁을 한다. 급하게 먹다가 체할까봐 실컷 사줄 테니 천천히 먹으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세상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 밑반찬을 나르던 종업원이 테이블에 쪼르르 앉아있는 아이들이 비슷한 나이인 것을 궁금해 했다. 그러다가 같은 반 아이들이 담임교사와 갈비를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바쁜 시간이건만 우리가 일어설 때까지 일일이 먹을 것을 챙겨줬다.
저녁을 먹은 후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어린이 영화는 낮에만 상영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삼일공원에서 시내의 야경을 구경하고, 집에서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우암산 순회도로를 드라이브하며 시내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시민들의 쉼터인 명암지의 밤풍경을 구경하며 아이들은 신이 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영화마을에 들러 아이들이 볼거리를 선택하도록 했다.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고, 화면에 만화가 나오자 집안의 불을 모두 끄며 알아서 분위기를 만든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 옆에서 나만 이방인이었다.
만화가 끝난 후 우리 반의 홍일점 현정이는 아내와 안방의 침대에서, 나머지 다섯 명은 나와 응접실의 이부자리에서 자기로 잠자리를 정했다. 남자 아이들은 현정이가 침대에서 자는 것을 부러워하며 괜히 시샘을 한다.
한참동안 이불 속에서 짓궂게 장난을 치고 도란도란 얘기를 하던 아이들이 집안의 훈기 때문에 하나, 둘 잠에 빠진다. 얌전하게 자는 아이, 코 고는 아이, 잠꼬대 하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친구들의 잠버릇이 우스워 잠 못 자는 아이도 있다.
일찍 일어났지만 현장학습을 떠나는 날이라 아침부터 바쁘다. 아이들을 깨워 한 명씩 샤워를 시키고 부모님과 통화를 하게 한 후 김밥을 사러갔다. 김밥 집에 사람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새벽부터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고 찌개를 끓인 아내 덕분에 아이들이 아침밥을 많이 먹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밥만 뚝딱 먹고 우리 반 아이들이 현장학습지에서 먹을 김밥과 음료수를 챙긴 후 부랴부랴 학교로 향했다. 시간에 늦을까봐 마음이 급해도 교통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리 없다. 평소보다 잠을 적게 자 피곤할 텐데 저희들끼리 선생님 집에서의 하룻밤을 얘기하느라 차안이 떠들썩하다.
몸과 마음이 바쁘고 어수선해도 아이들의 미소와 웃음소리가 밝아 행복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