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체벌했다고… 스승 살해’
교육계 전체가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기사의 제목만 봐도 섬뜩하고 충격적이다. 어른과 스승에 대한 존경을 근본도리로 배우는 우리나라의 정서와 너무나도 동떨어진 사건이라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오죽하면 경향닷컴에서 이 기사의 제목만 봤을 때는 해외토픽을 인용한 글이려니 했다.
기사의 내용대로라면 지난 8일 오후 9시40분쯤 옛 제자가 스승의 집 근처에 숨어서 기다리다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사망케 했다. 그것도 21년 전인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시험시간에 감독 교사에게 커닝을 했다는 지적과 체벌 받은데 앙심을 품고 벌인 일이다.
경찰조사에서 전화를 하거나 근무 중인 학교로 찾아가 협박하고, 모교의 복도 및 화장실에 스프레이로 비방하는 글을 쓰고, 마트에서 등산용 과도를 구입하고,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3개월간이나 집 앞에서 범행 기회를 노린 것도 밝혀졌다.
'커닝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진위여부나 '누구의 잘잘못이냐'를 따질 필요가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분명 스승과 제자 사이다. 스승과 제자는 좋은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다. 그런데 비뚤어진 자기 인생이 커닝 사건 때문이라는 망상에 시달리며 '나는 커닝을 하지 않았다. 그 일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사과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절규하던 제자나 제자의 협박을 피해 지방의 노모 집에 머물러야 했던 스승이나 다 같이 불행했다.
성격이나 사는 환경이 다른 아이들이 같은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게 학교다. 그런 아이들을 지도하다보면 온갖 일을 다 경험한다. 가르치는 아이나 부모에게 상처준 것을 뒤늦게 알고 무지를 탓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원망을 들으며 속을 끓이는 경우도 있다.
나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비극적인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내 자신을 반성한다. 젊은 시절에는 화도 내고 매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넣어주거나 바른 길을 가르치는 게 최선의 방법인줄 알았다.
넘치는 사명감 때문에 이성보다 혈기를 앞세우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30년이 넘는 교직생활 동안 나를 원망하고 손가락질한 아이나 학부모도 많았을 것이다. 평생을 배워야 하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걸 늦게 깨우쳤다.
스승과 제자 사이는 사랑과 존경의 고리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속에 앙금이 남아있지 않도록 대화로 소통을 이루고,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며 서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오랫동안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옛 스승을 원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교사와 학생만 있고 스승과 제자는 사라졌다'고 한다. 종종 듣는 말이지만 굳이 부인하기도 어렵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교사의 체벌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생님 소리도 듣기가 쉽지 않다.
자유분방한 요즘 아이들이 이번 사건을 잘못 받아들일까 걱정된다. 또한 해외토픽에서라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악연으로 결말 맺는 기사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