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대한 단상

2008.12.24 10:33:00


강원도 영동지방에 지난 일요일 밤에 내린 폭설로 초․중․고 대부분의 학교가 월요일 휴교령이 내려졌다. 눈이 그쳐 다행이었지만 녹아내린 눈이 밤사이에 얼어붙어 화요일 등굣길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대혼잡을 이루었다.
 
미끄러져 넘어지며 지르는 아이들의 비명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편으로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아이들의 얼굴에서 행복이 묻어 나왔다.
 
25일 성탄절과 방학을 앞두고 교무실은 선생님께 감사 카드를 전하려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담임선생님 또한 한 학년을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분주하기만 하였다. 아이들과 이별을 아쉬워하며 선생님은 성탄 인사를 잊지 않았다.

“얘들아, 메리 크리스마스”

2교시가 끝날 무렵, 보건 선생님으로부터 보건실로 잠깐 와 달라는 쪽지가 왔다. 보건실에 도착하자 빙판에 미끄러져 타박상을 입은 몇 명의 아이들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보건 선생님은 보여줄 것이 있다며 책상 아래에 있던 상자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 상자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맞춰보라고 하였다.
 
“김 선생님, 이 상자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글쎄요.”
 
보건 선생님의 질문에 궁금증이 더욱 커져만 갔다. 혹시나 무슨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살며시 귀를 상자에 대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감지되지 않았다. 내 모습이 우스워 보였는지 선생님은 연신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리고 손으로 상자를 건드리자 상자 안에 있던 물체가 갑자기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상자 안에 있는 물체는 다름 아닌 새였다.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아침에 출근하여 보건실 문을 열자 새 두 마리가 창가로 날아왔다는 것이었다. 폭설로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 이곳으로 날아온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날려 보내려고 창문 모두를 열어 놓았으나 밖으로 날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보건실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한바탕 소란만 피웠다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아이들을 불러 새를 강제로 잡게 하여 날려 보내 주려 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탈진한 듯 제대로 날지 못해 치료를 해주었다고 했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좋아져 비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였다.
 


보건 선생님은 방생을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평소 친분이 있는 내게 쪽지를 보냈다고 하였다. 보건 선생님과 함께 두 마리의 새가 들어 있는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운동장에 쌓인 눈에 햇살이 비춰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행여 새들이 놀랄세라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상자를 열자, 예쁜 새 두 마리가 겁에 질린 듯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우선 한 마리를 집어 들어 공중 높이 날려 보냈다. 그런데 탈진했던 다른 한 마리는 웅크리고 앉아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직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듯했다. 며칠 더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상자 문을 닫으려고 하는 순간, 날지도 못할 것 같았던 그 녀석이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하얗게 덮인 설원 위를 두 마리의 새가 하늘 높이 힘차게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세상의 어수선한 일로 답답했던 내 마음이 한순간에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 폭설이 생활에 큰 불편함을 주었지만 올 한해 좋지 않았던 모든 일이 이 폭설에 파묻혀 눈 녹듯 사라지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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