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사는 현우이야기

2008.12.30 21:07:00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야기를 들었다. 6학년 교실에 전담수업을 하고 나온 선생님이 전해주는 말인즉 현우라는 아이가 2층 창밖으로 뛰어서 죽겠다고 하여 이 상황을 수습하느라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고 하며 자초지종을 이야기 해줬다. 현우가 성적이 조금 올랐는데 부정행위로 점수가 올랐다고 아이들이 놀렸단다. 현우는 너무 억울하여 자기결백을 주장해도 믿어주지 않자 투신까지 생각을 한 것 같다고 한다.

6학년에는 현우이름을 가진 아이가 두 명인데 알고 보니 나와 결연을 맺은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선택한 아이는 아이지만 담당선생님이 학년 초 선생님들과 1대1 결연을 맺어 도움을 주기로 한 학생인데 학교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상담한번도 못한 처지 인지라 정신이 번쩍 났다. 그 것도 학교장과 결연을 맺은 아이가 사고를 쳤다면 내 얼굴이 뭐가 될 것인가? 생각하니 나의 무관심으로 결연아동을 잊고 있었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담임선생님에게 일과가 끝나는 대로 현우를 교장실로 좀 보내달라고 했다. 몸집이 큰 현우는 가방을 메고 겸연쩍어하며 교장실로 들어왔다. 마주앉아 대화를 시작하는데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우의 가정은 부모가 이혼을 하여 아빠는 서울에서 혼자 살면서 가끔 집에 오고 올해 82세 되신 할머니와 단둘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고모와 삼촌이 시내에 살고 있지만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조손(祖孫)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였다.

현우는 집에서 할머니를 도와드리려고 청소는 물론 밥도 하고 설거지와 빨래도 하는 착한 아이였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인데 부모의 사랑이 부족한 아이였다. 학용품을 몇 가지 주며 할머니를 잘 도와드리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해주며 걱정거리가 생기면 언제든지 교장실로 와서 이야기하라고 하고 돌려보냈다. 그 후 교내에서 만나면 할머니 안부를 묻고 몇 마디 격려를 해 주었다.

여름방학 때 조금여유가 있어서 현우네 집에 전화를 몇 번 걸었다. 현우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많이 밝아졌다. 아버지 다녀갔느냐고 물으니 안다녀갔다고 한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늙으신 부모님에게 자식을 맡겨 놓고 어찌 그렇게 무심할까?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으면 키우는 책임을 져버리고 부모에게 짐으로 안겨드리는 현우처럼 조손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어느덧 세밑이 되어 그 동안 현우네 집엘 못 다녀와서 더 이상 미룰 수 가 없었다. 분교선생님들까지 내려와 금년도 교육과정을 반성평가하고 내년도 교육과정 수립을 위한 토론회를 갖는 날 30분간 시간을 내어 현우를 교장실로 불러 같이 가자고 했다. 할머니와 드실 것을 조금 사가지고 현우를 태우고 달천강가를 따라 현우네 집엘 같다. 현우 할머니가 반가워하시며 나를 맞아주셨다.

지난번 다치신 손은 어떠시냐고 하니 손가락을 보여주시는데 아직 다 아물지도 않은 것 같았다.

“병원에서 이제 오지 말래 유”

검지 끝이 잘라졌는데 얼마나 아프셨을까? 할머니께 연세를 여쭤보고 나의 모친과 같은 연세라고 하니 빙그레 웃으신다.

“교장선생님 우리 현우 좀 잘 보살펴주세요.”라는 말을 뒤로하고 학교일정 때문에 방에도 못 들어가고 학교로 와야 했다. 올 겨울을 어떻게 잘 보내셔야 현우 졸업식에 참석 하실 텐데……
이찬재 (전)충주 달천초등학교 교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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