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 조헌의 발자취 돌아보고, 좌우 바뀐 한반도 내려다보고

2009.01.02 07:50:00


지난 12월 21일, 충북 옥천군 안내면과 안남면에서 중봉 조헌의 발자취와 인근의 볼거리를 돌아보기로 했다.

처음 찾은 곳이 안내면 도이리에 있는 후율당이다. 후율당(충북기념물 제13호)은 중봉 조헌이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은현감을 파직당하고 옥천에 낙향했을 때 제자들을 가르쳤던 서당이다.

중봉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고, 영규의 승병과 합세하여 청주를 수복하는 등 왜병들을 막아내다 금산전투에서 700의병과 함께 장렬히 순국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율곡 이이의 제자였던 중봉은 후율을 호로 정하며 스승의 사상을 잇고자 했다.

안내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정방사거리에서 보은방향으로 500여m 거리에 한문으로 '後栗堂'이라 새겨진 표석이 길에 서 있다. 그곳에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우측 길로 접어들어 400여m 가면 길가에서 후율당을 만난다. 돌담으로 둘러쳐 있고 북쪽으로 삼문이 나있는 후율당은 용촌 밤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오며 중봉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 되었다. 마을 안쪽에서 만나는 한옥도 옛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도이리에서 나와 37번 국도로 옥천방향으로 가다보면 다리를 건너기 전에 인포삼거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안남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575번 지방도로다. 중봉 조헌 신도비(충북유형문화재 제183), 표충사, 중봉 묘소(충북기념물 제14호)가 있는 도농리에서 처음 만나는 게 길가의 신도비다.

임금이나 고관의 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둔 것이 신도비다. 인조 27년(1649)에 세워진 중봉 신도비에는 중봉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최후의 격전지였던 금산싸움이 자세히 적혀있고, 좌의정 김상헌이 글을 짓고 이조판서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표충사는 신도비에서 바라보이는 150여m 거리에 있다. 표충사의 대문인 삼문은 충의문으로 가운데 문이 높고 양쪽의 문이 낮은 솟을삼문 형태를 갖추고 있다. 삼문에 들어서면 주병덕 전 충북지사가 쓴 '표충사'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있는데 이곳에 중봉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지당에 비 뿌리고 / 양유에 내 끼인 제 // 사공은 어디 가고 / 빈 배만 매였는고 // 석양에 짝 잃은 갈매기는 / 오락가락 하더라

잔디밭에 있는 조헌 시비 앞에서 옛 시조 한 수 읊으며 당시의 생활풍습을 생각해보는 것도 현대인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다.

표충사와 영모제 사이로 연결된 돌계단을 60여m 오르면 중봉의 묘소다. 묘소는 낙낙장송들이 에워싸고 있는 언덕 위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우암 송시열이 중봉의 공적을 기록한 비석과 문인석이 서 있는 묘소에서 표충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표충사에서 청정리를 찾아간다는 것이 마을 입구에 수령 300여 년의 느티나무가 서 있는 화학리 2구로 들어섰다. 회관 앞에 36년 전에 부락훈을 새겨 넣은 표석이 있어 어느 곳에 가든 새로운 문화가 있다는 것을 깨우친다. '열심히 일하자, 굳게 뭉치자, 서로 받들자'는 글귀가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았지만 늘 부지런했고, 나눌 줄 알았고, 예절바르던 옛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마을에 나타난 낯선 사람을 집에서 지켜보다 밖으로 나온 정척기 어른은 인근 마을과 옥천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 숨을 몰아쉬면서 옥천 육씨와 옥천 전씨, 본인의 이름에 얽힌 일화를 들려줬다.

안남천이 흐르는 길가의 청정리에 3기의 선돌이 있다. 돌도 돌 나름이라고 답사를 하다 보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돌을 많이 만난다. 가까운 거리에서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선돌들은 나름대로 역할과 의미하는 바가 크다.

1호 선돌은 폐교된 삼호초등학교 앞 논 가운데에 있고, 윗부분을 뾰족하게 손질한 숫선돌로 마을에서는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일부다처제를 의미하듯 암선돌 두 개를 좌우에 거느리고 있다. 선돌 옆에 서 있는 신태만선생교육공적비와 유리창에 붙어 있는 교장실, 교무실이라는 글자가 기도원으로 바뀐 옛 삼호초등학교를 알려준다.

송정마을 뒤 논 가운데에 있는 2호 선돌은 뒤로 배가 불룩 튀어나오게 손질한 암선돌로 마을에서 할머니라 부르고, 마을회관 앞 냇가에 있는 3호 선돌은 윗부분을 둥글게 손질한 암선돌로 아이 낳기를 기원하는 여성들이 돌로 문질러 반들반들하다.


청정리에서 안남면 소재지인 연주리로 가면 해발 384m에 불과하지만 한반도가 내려다보이는 둔주봉에 오를 수 있다. 한반도를 보려면 등산로 입구인 안남초등학교 옆길을 따라 점촌고개까지 간다. 이곳에서 900여m 거리의 전망대까지는 길이 평탄해 산책을 하듯 편히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 있는 정자에 올라 아래를 바라 보면 금강의 물길이 U자를 만들며 휘돌아나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강 건너편으로 물길 안에 갇힌 땅이 영락없는 한반도의 모습이다. 물론 영월 서강의 물길이 만든 한반도의 모습과는 다르다. 둔주봉은 부산은 왼쪽, 목포는 오른쪽에 위치하도록 한반도의 좌우를 바꾸며 기막힌 반전을 보여준다.

둔주봉 정상은 전망대에서 가파른 산길을 500여m쯤 더 올라가야 한다. 비교적 조망이 좋은 정상에서 바라보면 대청호가 만든 물굽이와 산봉우리들이 아름답다. 정상에서 전망대 사이에 독락정으로 가는 하산로가 있다.


둔주봉에서 내려오면 초계 주씨들이 많이 사는 연주리 2구의 독락정이 가깝다. 독락정(충북문화재자료 제23호)은 절충장군중추부사를 지낸 주몽득이 1607년에 세운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 정자다. 독락정 바로 앞이 둔주봉에서 바라본 한반도다. 1991년에 세운 '연주리 마을 자랑비'를 읽어보면 이곳의 자연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안다.

앞에는 금강물이 휘돌아 흘러가고 뒤에는 층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니 산천이 아름다워 정자 없이 지낼 손가. 이곳에 정자 지어 이름은 독락이라 어찌 홀로 앉아 즐거운 낙 누리리까. 태평세민 모두 모여 함께 낙을 누려보세. 대청호에 물이 차니 고기 반 물 반이요 낚싯대 드리우니 현세낙원 이곳이라.

옥천은 중봉이 관직에서 파직당한 후 학문을 가르치고, 구국의지를 불태우고, 뼈를 묻은 곳이라 자취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중봉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고 싶어 군북면 이백리의 이지당으로 향했다.


이지당(충북유형문화재 제42호)은 중봉이 후학을 교육한 서당으로 조선시대 중엽 금(金), 이(李), 조(趙), 안(安)의 4문중이 합작해서 세웠다. 각신동이라는 마을 앞에 있어 처음에는 각신서당으로 불렀는데 중봉의 제자인 우암 송시열이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는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의 끝 글자인 '지(止)'자를 따서 이지당(二止堂)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이지당까지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한적한 숲길이다. 산모롱이를 돌아서면 수수해서 정이 가는 전통가옥이 나타난다. 뒤는 상수리나무와 느티나무가 많은 야산이 감싸고, 앞에는 시냇물이 흘러가며 졸졸졸 물소리를 내는 이지당이다.

이지당은 본채와 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앞면 7칸ㆍ옆면 1칸의 강당건물이고, 누각은 앞면 1칸ㆍ옆면 1칸으로 높은 단 위에 누마루를 두고 있다. 풍광이 아름다운 누각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개울과 주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지당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정자가 하나로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통안내]
경부고속도로 옥천IC - 보은방향 좌회전 - 문정삼거리 좌회전 - 문정사거리 직진 - 37번 국도 - 석호삼거리 보은방향 우회전 - 정방사거리 직진 - 500m - 도이리입구 - 400m - 후율당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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