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는 길을 잃지 않는다

2009.01.05 12:55:00

필립 풀먼의 판타지 영화 ‘황금나침반(The Golden Compass)’에서 주인공은 학자이자 탐험가의 제안에 따라 유괴된 친구들을 찾기 위해 북극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신세계로 갈 수 있게 해주는 ‘황금나침반’을 두고 천상과 지상사이에서 거대한 전쟁을 벌이면서 그 서막이 열린다.

영화 ‘코어(The Core)’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각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개발한 병기 데스티니(destiny)가 인공지진으로 적을 공격함으로써 지구의 핵(코어)의 회전이 멈추게 되고, 그로 인해 지구 자기장이 없어져 엄청난 에너지의 태양풍 입자들이 지구를 침투해 많은 재앙들이 속출한다는 내용이다. 이 두 영화는 ‘나침반’이나 ‘지구자기장’을 소재로 한다.

나침반은 지구자기장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해주는 간단한 도구로 지구자기장의 남극과 북극이 서로 잡아당기는 원리로 작동된다. 항공이나 항해뿐만 아니라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방향을 찾아주는 나침반일 것이다. 지구자기장은 첨단과학시대인 오늘날까지 정확한 형성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지만 지구가 자전할 때 전도성 유체인 외핵의 운동에 의하여 전류가 발생되고, 이 전류에 의하여 자기장이 생성된다는 이른바 ‘전자기유도 현상’을 설명하는 ‘다이나모 이론(dynamo theory)’이 유력한 이론적 모델이다.

한편 현대과학으로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지구 자기장을 거북과 도마뱀, 가재로부터 곤충에 이르기까지 50여 종의 동물이 감지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기러기 등 먹이와 번식의 문제로 철따라 이동하는 철새는 몸 안에 숨겨진 ‘정교한 나침반’이 지구 자기장을 이용한다. 철새들의 이동 시기가 되면 수천, 수만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가는 장관이 펼쳐진다. 선두에서 후미까지 한 마리의 흐트러짐도 없이 춤을 추듯 날아가는 새의 무리를 보노라면 그 경이로움에 넋을 잃을 정도다. 나침반이 없이도 철새는 수천㎞ 떨어진 목적지로 정확한 경로를 따라 비행한다. 도중에 경로를 바꾸거나 목적지를 변경하는 법이 절대 없다.

철새가 어떻게 정해진 시기에, 오차 없이 같은 경로를 이동할 수 있을까. 철새가 목적지와 방향을 잃지 않는 이유는 ‘지구 자기장을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한 방향감각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 온 지금까지 학자들의 견해와는 전혀 다른 결과다. ‘크립토크롬(cryptochrome)’이라고 알려진 단백질이 철새의 눈에 존재하고, 이 시각 정보를 매개하는 부위가 미미한 전자기장에 반응한다는 것. 즉 철새는 태어날 때부터 자기 동족끼리만 통하는 고유한 자기장 나침반을 갖고 이동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계산해 이동경로를 조정하는 것이다.

요즘 광적인 영어열풍에 따른 조기유학 붐으로 자식의 유학을 위해 아내까지 해외에 보낸 뒤 아버지만 남아 학비 등 돈을 벌어 뒷바라지를 하는 ‘기러기 가족’, ‘기러기 아빠’가 등장한지 오래다. 확고한 정치철학과 소신 없이 이리저리 당적 옮겨 다니는 정치인을 ‘인간 철새’, ‘철새 정치인’라고도 한다. 이런 신조어는 아마도 번식과 먹이를 얻기 위해 철 따라 서식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철새의 생태에서 유래했으리라. 그렇다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철새의 생태적 습성만 보고, 막연하고 지조 없이 옮겨 다니는 인간을 그에 비유해선 안 된다. 철새는 결코 길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수천에서 수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철새의 여정은 일생에서 가장 위험한 모험이라서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강한 귀소본능을 갖고 태어나서 길을 잃지 않고, 자기가 태어난 곳과 이동장소 사이의 정해진 경로를 정확하게 왕복 비행하는 철새는 단지 양지만을 찾아 갈지(之)자 행보를 하는 ‘인간 철새’나 막연한 희망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기러기가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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