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읽었던 내용 중에 기억난 것을 찾아봤다. 미국 오리건 대학의 마이클 앤더슨과 스탠퍼드 대학의 존 가브리엘리가 19∼31살의 성인 4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두 사람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증기-기차’ ‘턱-껌’처럼 서로 관련된 36쌍의 단어를 주고 외울 때까지 보라고 했다. 그런 다음 앞쪽 단어 12개를 보여주고, 뒤에 올 단어를 몇 초 동안 기억해 보라고 부탁했다. 이어 다른 앞쪽 단어 12개를 보여주고, 이번엔 뒤에 오는 단어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 뒤 시험을 치렀더니, 기억에서 밀어내려 했던 단어들이 실제로도 기억에 조금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사람들은 경험한 것을 모두 기억하진 않는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에 남긴다. 프로이트가 심리적 방어기제의 하나로 제시한 데서 비롯된 ‘선택적 망각’이다. 선택적 망각은 무의식적으로, 하지만 정교하게 이뤄진다. 자기공명영상법(MRI)으로 찍어보면, 선택적 망각을 할 땐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반응은 감소한 반면 판단을 맡은 전전두피질은 뚜렷하게 활성화했다고 한다. 전전두피질은 행동을 억제하고 자극에 대한 반응을 매개하면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곳이다.
역사 영역에도 선택적 망각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학자인 폴 리쾨르는 과거는 우리의 기억 속 에서만, 기억이 지시하는 대상으로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억은 반드시 선택적 망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서술이나 인식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만, 그 나쁜 사례도 많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독일 나찌나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2차대전 발발 사건만 봐도 그렇다.
현재 이러한 선택적 망각현상이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언제는 학교의 자율을 최대한 주어서 교육의 폭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학교운영위 심의를 거쳐 학교장이 정하게 되어있는 교과서마저 이제는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모두 다 정하려고 하고 있다. 이 장면은 역사 수레바퀴를 30여 년 전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다가 역사교과서 서술에 대한 이념적 문제만으로 들여다본다면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만 깊어가지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데 있다. 그래서 교육평론가인 이범 씨 생각대로 서술의 문제만으로만 보지 말고 생각이 첨예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공과를 놓고 토론식 수업이 가능하도록 교사들에게 권한과 여건이 주어졌느냐를 보는 시각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특히 현 정부가 기획하고 시도교육청이 따라하는 이러한 표리부동한 교육정책이라는 것이 백년을 가야 함에도 앞뒤 얼굴이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 신뢰에 대한 저하를 가져올 가능성이 큰일이기에 더 그렇다.
비단 교과서 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른바 국회 폭력 사태로 인하여 야당의 한 농민 출신 국회의원이 보수 언론과 여당의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그러나 그를 통렬히 비난하는 많은 무리들의 과거 의정 행태 또한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었다. 야당의원이 한 행동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러한 행위를 하게한 근본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고 결과만 가지고 손가락질을 하는 현실에 대해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기억하고 불리한 것은 애써 잊어버리거나 기억하지 않으려는 '선택적 망각'이라는 유령이 연초부터 활개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