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옹야편(雍也篇)에 공자와 그의 제자인 염구(冉求)의 대화 내용이 나온다. 그 대화 내용을 보면 염구의 학문하는 자세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고 공자의 말씀에서 학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잘 가르쳐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冉求曰(염구왈) 非不說子之道(비불열자지도)언마는 力不足也(역부족야)로소이다.”라고 하였다. 29세 아래의 제자인 염구가 스승인 공자에게 한 말이다. 스승의 가르침이 기쁘다고 하였다. 이중 부정(非不說)의 표현을 쓴 것으로 보면 강한 긍정을 나타내기에 배움에 기쁨을 만끽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좋고 배움이 기쁘다고 할 정도면 학문은 거의 이룬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 할까? 스승인 공자께서는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면 不亦說乎(불역열호)아”라고 하지 않았는가? 배우고 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하셨다. 스승이 배움에 대한 기쁨을 가졌으니 그 제자도 스승과 같이 배움에 대한 기쁨을 가졌으니 얼마나 보기가 좋은가?
10대 청소년들이 염구의 배움에 대한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배우는 것도 재미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배우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배우는 것에서 행복을 찾고 배우는 것에서 삶의 보람을 찾고 배우는 것에서 꿈을 찾고 배우는 것에서 만족을 얻으면 10대 청소년의 삶은 분명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요즘 젊은이들 중에 배움에서 기쁨을 얻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정말 배움이 기쁠까? 배움에서 쾌락을 얻을까? 책을 읽음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아무리 공부가 싫고 배우는 것이 싫고 책 읽는 것이 싫어도 작은 것부터 배워서 알아가는 재미를 찾으면 좋을 듯싶다. 배워서 깨달아가고 배워서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는 게 학문하는 보람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염구는 스승의 가르침에 기쁨을 맛보기는 했지만 끝까지 학문하는 자세를 견지하지 했다. 힘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더 이상 배우고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게으름의 변명거리를 스스로 만들었다. ‘더 이상 배우고 따를 수 없다. 힘의 한계에 이르렀다. 한계를 느낀다’고 하면서 스승에게 포기의사를 말했다.
그 때 스승의 가르침은 대단하였다. 흥분하지 않았다.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주 냉정하게 타일렀다. 감성보다는 지성이 앞섰다. 얼마든지 염구의 기분을 맞추어 줄 수도 있다. “아 그래 힘이 없어? 지금까지 배운 것만 해도 됐으니 이제 그만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공자의 가르침은 가히 본받을 만하다.
스스로 힘이 부족하다고 하는 염구에게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力不足者(역부족자)는 中道而廢(중도이폐)하나니 今女(금여)는 劃(획)이로다” “힘이 부족하다 하는 사람은 중도에서 그만두나니 너는 지금 스스로 한계를 짓고 있다”라고 엄하게 말씀을 하신 것이다.
선생님이나 학부모님이 학생들이나 자녀들이 나는 더 이상 공부를 하기가 싫다고 포기할 때 공자의 훈계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뭐 힘이 부족해?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야. 배우다가 중도에 배우기를 그만 두는 것이야. 지금 보니 너(女=汝) 스스로 한계를 짓고 있네. 너 스스로 선을 긋고 있네.
그건 너 마음으로 너가 그렇게 한정을 지울 뿐이지. 한계는 없는 거야. 포기는 해서는 안 돼. 공부하기 싫은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스스로 한계를 지어서는 안 돼. 게으름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는 더 이상 능력이 없어 배움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야...” 이렇게 알아듣기 쉽게 깨우쳐 나가야 할 것이다. 中道而廢(중도이폐) 즉 무슨 일이든 중도에 포기하려 하는 이에게 “끝까지 해보지”라는 말을 들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