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의 모습이 곰을 닮은 지리산의 '웅석봉'

2009.02.06 16:44:00

1월 31일, 산행을 하며 기축년 첫 달의 마지막 날을 멋지게 보내기로 했다. 청주토요산악회 회원들과 두 번째 산행이라 약속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이 낯설지 않다. 용암동에서 출발한 차가 분평동을 거쳐 청주체육관 앞에서 7시 30분에 지리산 웅석봉으로 향한다.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과 단성면의 경계에 있는 웅석봉(높이 1,099m)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봉우리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백두대간을 등반할 때 시작하거나 끝맺음을 해야 하는 곳이라 더 사랑받고 있다.



산행의 들머리인 밤머리재에 화장실이 없어 금산휴게소에 이어 함양휴게소까지 들렸고, 550여m 높이까지 경사가 급한 고갯길을 오르느라 예정시간보다 30여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밤머리재를 알리는 표석이 맞이한다. 제법 넓은 주차장 옆에 한봉 벌통이 여러 개 놓여있어 카메라에 담았다.

기념촬영을 마치자 도로 건너편에 있는 나무 계단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90여명의 회원들이 한 줄로 늘어서 산행을 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산행대장이 알려준 대로 초입의 오르막길이 가파르다. 전날 직원들과 과음한 탓에 몸뚱이가 무겁고, 날씨도 포근해 땀도 많이 흐른다. 하지만 땀을 많이 흘릴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게 산행의 묘미다.

밤머리재에서 1㎞ 거리인 856m봉에 오르니 조망이 좋아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흰 눈이 쌓여있는 천왕봉과 이어진 지리산의 산줄기들, 길게 한일(一)자를 그린 고속도로, 산청읍내 뒤편으로 보이는 연봉들이 아름답다. 이곳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웅석봉까지는 4.3㎞ 거리다.




누구나 산에서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 한다. 전날부터 몸이 좋지 않다더니 오늘따라 아내의 발걸음이 더디다. 성큼성큼 앞서가는 회원들과 거리가 점점 멀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아내의 보폭에 맞추며 쉬엄쉬엄 걸었다. 덕분에 입에 단내 풍기며 허덕이지 않는 산행을 했다.

가까운 곳에서 첫 번째 헬기장을 만난다. 산행 길에는 물이 피로회복제다. 물을 마시며 잠깐 휴식했는데 아내의 표정이 밝아졌다. 암릉 길을 지나자 오르내림이 비교적 완만한 산길이 이어져 발걸음이 가볍다.

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반갑다. 길에 서있던 등산객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 '영역표시 중'인 사람이 있다며 쉬었다 갈 것을 권한다. 내 뒤에 온 사람들은 일행인 듯 민방위훈련 잘했느냐고 농담을 한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야 능률이 오른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일행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다보니 선녀탕 방향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합류하는 왕재삼거리에 도착했다. 며칠 전 꽁꽁 얼어붙은 선녀탕 주변의 모습을 인터넷에서 봤던 것이 생각난다. 이곳에서 웅석봉까지는 2㎞ 거리다.

두 번째 헬기장에 도착하니 회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편평한 장소를 찾다 아내를 바라보니 안경이 보이지 않는다. 제법 값이 나가는 다초점 렌즈라 아내가 안경을 쓰고 있던 휴식 장소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날씨가 푹해 길이 질척거리는데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려니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져 발걸음이 더디다.

주위에 낙엽이 많아 쌓여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눈을 비벼가며 샅샅이 찾아봤지만 안경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품에서 떠난 물건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안경 값보다 비싼 보약을 먹는 산행을 하면 된다고 아내를 위로했다.

요즘 아내는 나이 값을 하는지 아픈 날이 많고, 물건을 손에 들고 찾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긴 여자 나이 50대 중반이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다. 피곤하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지만 남편이 원한다고 즐기지도 않는 산행까지 따라나선 아내에게 미안하다.

회원들이 떠난 자리에서 뒤늦은 점심을 먹고 부지런히 300m 거리의 웅석봉 정상으로 갔다. 정상 바로 전에 있는 태양열 전지판 보호 철망에 산악회를 알리는 리본들이 잔뜩 걸려있다. 바람이 찬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등산객들도 많다.

웅석봉이라는 이름은 곰을 닮은 정상의 생김새 때문에 붙여졌다.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올 만큼 정상 부분의 산세가 험하다. 웅석봉이 산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가 시원한 조망이다. 정상에 서면 지리산, 가야산, 황매산, 경호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부분은 몇 명 들어설 수 없을 만큼 좁은데 곰의 모습이 그려있는 표석을 배경삼아 추억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언제나 그렇듯 정상에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일행들을 뒤쫓아 하산을 시작했다. 이정표의 잘못인지 정상에서 무명봉까지 한참을 왔는데 겨우 1㎞ 온 것으로 표시돼 있다. 내리까지 4.3㎞ 더 가야 한다는 말에 아내가 놀란다.

하산 길은 경사가 급하고,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로프에 의지하는 암릉지대를 만나면 하산 속도가 느려진다. 내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꽤 고생할 것 같다. 거리가 들쑥날쑥한 계단 길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것도 힘을 뺀다.

히말라야를 여러 번 다녀왔다는 창원산악회원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자장 기억에 남는 게 네팔사람들이 만든 계단이다. 10년 이상 된 우리나라 소형차를 최고급차로 여기는 후진국이지만 계단의 거리를 보폭에 맞춰 편안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단다.




가뭄 때문에 물이 적은 계곡에서 진흙이 잔뜩 달라붙은 등산화를 씻고 건너편에 있는 지곡사를 둘러봤다. 1958년 중건되어 규모가 작고, 본래의 지곡사와는 가람배치 등이 무관한 사찰이다.

지곡사와 가까운 주차장 옆에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지곡사지가 있다. 지곡사지(경남기념물 제225호)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국태사로 불렸던 지곡사의 옛 터다. 초라하게 서있는 안내판을 읽어보면 빨치산 토벌 당시 불탄 자리에 거북머리비석받침대 2기, 부서진 석탑조각과 주춧돌, 석축 등의 흔적만 남아있지만 한때는 300여명의 승려가 머물고 물방앗간이 12개나 되던 대사찰이었다. 흔적만 남은 지곡사지에서 저수지 건너편으로 보이는 황매산의 모습이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이란다.

주차장에서 먼저 도착한 산악회원들을 만났다. 우리가 꼴찌인줄 알았는데 뒤에 내려오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입안을 얼얼하게 만드는 홍어탕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니 피로가 확 풀린다. 


산행을 하는 동안 하늘이 맑지 않아 아쉬웠는데 함양휴게소에서 바라보니 구름이 무척 아름답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이나 닥쳐올 일에 대해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세상의 이치다. 집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다.

공자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로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할 일 다 하는 산과 같이 어진 사람은 몸가짐이 진중하고 심덕이 두터워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나는 부족한 게 많지만 산을 좋아한다. 산행 길에 부족한 걸 하나둘 채워가며 어진 사람들의 행동을 본받는 것도 행복이다.

[교통안내]
1. 대전통영고속도로 산청IC - IC삼거리 우회전 - 매촌리삼거리 좌회전 - 59번 국도 - 신촌마을 - 밤머리재
2. 대전통영고속도로 산청IC - IC삼거리 우회전 - 경호1교 - 60번 지방도 - 1001번 지방도 - 내리교 - 지곡마을 - 지곡사 주차장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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