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기 전보 인사 발령이 났다. 5년 동안 정든 학교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떠나 다른 학교로 가야한다. 물론 새 학교에 가서 지내다 보면 곧 익숙해지고 다시 정이 들기도 하겠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오랫동안 앉아 교재연구를 하던 책상이며 의자까지도 다시는 앉아보지 못한다 생각하니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된다. 낯익었던 학교 시설물들, 내가 드나들던 교실이며 칠판, 원어민과 함께 수업하던 영어전용구역, 하다못해 매일 아침 차를 대던 주차장이며 넓은 운동장, 매일 이용하던 교직원 식당, 낯익은 긴 복도, 그 복도에 붙어있는 화장실까지도 남다른 감회로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된다.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 교무실이 다르고 교과목이 달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선생님들조차도 언제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는지 헤어지려 하니 섭섭해진다. 숙제를 하지 않았거나 예습을 하지 않고 수업 시간 소란을 피워 힘들었던 아이들조차도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 여간 서운 한 게 아니다.
특히 그 동안 4년 동안이나 내 가 맡았던 방송반 아이들에겐 아쉬운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학교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착오를 일으키면 행사가 엉망이 되다 보니 늘 신경이 곤두서서 다그치고 소리 지르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에 들를 일도 2일 밖에 없다. 23일 가서 업무 인계하는 일과 25일 가서 이임인사를 하고 학교 측에서 마련한 저녁 송별회식에 참석하는 일이다. 떠나야 하는 마당에 너무 미련을 갖고 있어도 안 될 것이다. 어떤 일에든 과감한 결단이 요구될 때도 있는 것이고 훌훌 미련과 아쉬움을 털고 발길을 옮기기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인가? 나름대로 열심히 근무한다고 했으면서도 열심히 따라와 주지 않던 아이들, 혹시 내 교수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원로교사로서 각 부장선생님들, 담임선생님들의 노고를 충분히 헤아렸는가? 학생들과 소통하는데 혹 나이가 걸림돌이 된 것은 아닐까? 수업시간 무엇인가 딴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학생들을 어떻게 학습으로 이끌지 몰라 난감해지던 숱한 시간들이 무엇보다 아쉽다.
이제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많은 동료교사들이 교육전문직으로 혹은 관리자로 진급했다. 진급한 동료들에겐 또 부여받은 더 큰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그 책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축하하며 나는 또 내게 주어진 책무를 충실히 할 것이다. 직장생활의 성공 여부가 꼭 지위는 아닐 것이다.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갖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임할 때 성공한 교육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엊그제 나는 새로 발령받은 학교에 들러 교장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왔다. 교감선생님께도 업무에 관련하여 몇 가지 말씀드리고 몇 선생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새로 근무하게 될 학교는 신설학교다. 작년에 개교했으니 아직 3학년이 없다. 신설학교는 그 초기에 발전의 기틀을 튼튼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학습하는 분위기, 정직하고 예의바른 인성을 갖춰가는 분위기, 소질과 특기를 계발하는 동아리 문화도 초기에 형성될 것이다. 비교적 교직경험이 많은 교사로서 젊은 교사들이 창의적으로 능력을 펼쳐갈 수 있도록 나도 열심히 동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