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대한 추억, 마당을 읽으며 떠올리다

2009.02.24 22:48:00

몇 십 년 전만 해도 도시건 농촌이건 마당이 있었다. 그러다 아파트라는 새로운 개념의 건물이 들어서면서 마당은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시골에서 자라 마당과 함께 살았던, 나이가 들만큼 든 이들에게도 '마당'은 아련한 옛 것이 되었다.

한 움큼의 추억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누군가 '마당'이란 낱말을 뱉으면 숨어버린 것들을 떠올리는 정도다. 그런데 마당이란 존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요즘 아이들에게 마당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쩌면 먼 나라 동화처럼 들릴지도 모른다는 괜한 노파심마저 든다.

주변이면서 중심인 마당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마당은 집에서 결코 중심이 아닌 주변이라는 것을. 모든 삶의 공간은 온돌방과 거실이지 마당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마당이 중심으로 들어오는 때도 있다. 혼례를 치룰 때 마당은 더 이상 주변공간이 아니다. 성스러운 공간이 된다. 어엿한 주인공이 된다.

또 마당을 중심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놀고 마당에서 자고 뒹굴기도 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소꿉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신랑도 되고 신부도 된다. 아빠도 되고 엄마도 되고 아기도 된다. 그렇게 놀다 보면 하루해가 진다.

사실 마당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삶의 공간이면서 놀이의 공간 역할을 한다. 마당은 늘 고즈넉하게 있으면서도 늘 바빴다. 봄이면 농사 준비에 바빴고, 여름이면 노곤한 몸을 쉴 곳을 제공했다. 가을이면 온갖 곡식을 받아드리기에 바빴다. 마당이 좁으면 일을 하기가 어려웠다.

놀이공간으로서도 마찬가지이다. 봄이 되면 마당이나 토방 머리에 채송화나 맨드라미가 피었다. 또 어린 병아리는 엄마 닭을 따라 오종오종 걸어다니며 엄마 흉내를 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흙장난이나 공기놀이를 하며 놀았다. 마당은 늘 생기 있는 존재였고 공간이었다. 그런 마당이 지금 점차 사라지고 있다.

마당에 대한 추억, 마당을 읽으며 떠올리다

어릴 때 아버지는 새벽 눈을 뜨자마자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었다. 늦은 아침 일어나보면 마당은 대빗자루의 고르고 선명한 자국이 머릿결처럼 나 있었다. 밤새 어둠 속에서 별들과 노닐다 잠들었던 마당은 아버지의 빗질 소리에 깨었고 우리들도 깨었다. 그리고 하루의 시작을 열었다.

가끔은 나에게 마당을 쓸게 할 때도 있었다. 눈을 비비며 마당을 쓸다보면 어린 내 마음도 깨끗이 쓸어짐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마당을 쓴 다음 그곳에 멍석을 펴고 고추도 널고, 빨랫줄에 빨래도 널었다. 지금 마당이 그 기능을 점차 잃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마당은 여전히 그대로 서있다.

2년 전 눈이 많이 내린 날, 난 우리 집 꼬맹이들과 마당에 눈미끄럼틀을 만들어 탔고, 눈사람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 어릴 때 추억을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마당에 대한 경험이 없는 지금의 아이들, 그 아이들은 마당이 사라지면서 추억을 만들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쓴 책이 충북대 국문과 교수로 있는 정효구의 <마당 이야기>이다. 그가 '마당'에 대해 쓴 연유중 하나가 마당을 모르고 자라는 어린아이들에게 마당의 꿈을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당 없이 유년을 보내는 어린아이들에게, 마당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싶다. 마당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다. 맘껏 뛰어놀 장소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야생의 놀이터인 마당을 되돌려주고 싶다. 마당과 같은 성실함과 튼실함을 배워가야 할 아이들에게, 드넓은 마당의 꿈을 선사하고 싶다."

마당은 변하지 않았다. 늘 그대로 있었다. 다만 사람들이 변했고 시대가 변했을 뿐이다. 또 마당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마당을 잊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흙과 바람, 달과 별, 하늘과 구름, 꽃과 나무, 사람과 가축이 머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정효구의 <마당 이야기>는 마당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도 있다. 그가 이 글을 쓴 이유가 마당을 모르고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마당을 알려주고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당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이 읽기엔 조금은 철학적이다. 물론 그의 의도가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마당의 철학성과 우주성, 영성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했지만 오히려 이 책은 마당을 경험한 세대들이 읽기에 더 적합하다.

혹 마당에 대한 추억이 있거나 마당에 얽힌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마당 이야기>를 권하고 싶다. 잊혀진 유년의 추억과 아름다움이 새록새록 묻어날 것이다. 그리고 불안정한 요즘 시대에 위로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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