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청주삼백리와 대전옛생돌 회원들이 회인의 오장환 문학관과 풍림정사, 회남의 국사봉을 답사 산행하기로 약속된 날이다. 피반령 고갯길을 오르는데 안개가 자욱해 정상의 표석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곳에서 하이닉스 매그나칩 답사모임 '천년의 향기' 회원들을 만났다. 듣기만 해도 옛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이름이다.
피반령은 해발 360m에 불과하지만 도로를 포장하기 전에는 무척 험준한 고개였다. 경주 목사로 부임하기 위해 4인교를 타고 이 고개를 넘던 조선 중기의 문신 이원익이 힘이 들어 가마를 들 수 없다고 꾀를 부리는 가마꾼들을 기어오르게 하여 손발에서 피가 터진데서 '피발령'이라 부르다가 '피반령'이 되었다고 한다. 청주삼백리 송태호 대표는 고갯길 밑에서 피를 많이 재배한 것도 '피반령'이라는 고개 이름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고갯길 아래의 회인면 중앙리에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이 명예관장을 맡고 있는 오장환 문학관이 있다. 옛생돌 회원들을 기다리는 동안 최근에 복원한 오장환 시인의 생가를 둘러봤다. 오장환은 이곳에서 1918년에 태어나고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한 천재시인이었지만 월북 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아츰]까마귀 한 마리/ 게을리 노래하며/ 감나무에 앉엇다.//
자숫물 그릇엔/ 어름덩이 물//
[기러기]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별도,/ 달도,/ 꽁-, 꽁-, 죄 숨었는데//
촛불도 없이 어떻게 가나.//
[바다]눈물은/ 바닷물처럼/ 짜구나.//
바다는/ 누가 울은/ 눈물인가.//
오장환 문학관은 다른 문학관에 비해 공간이 좁고 전시물도 적다. 그래도 전시된 시들을 읽어보고 있노라면 시인의 숨결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좁은 골목길의 돌담들 때문에 오히려 작고 아담해서 정이 가는 문학관이다. 회인은 감나무가 많아 가을 풍경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주변의 정리가 시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장환 문학관을 나오면 길 건너편 안쪽에 조선시대의 건축물 인산객사(충북유형문화재 제116호)가 숨어있다. 객사는 고려시대 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고을에 있던 관사로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정당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 중수기록과 인산객사(仁山客舍)라는 명칭이 나왔다.
인산객사에서 나와 보은 방향으로 가면 바로 눌곡삼거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우회전해 571번 지방도로 접어들면 눌곡리 길가에 풍림정사(충북기념물 제28호)가 있다.
정사는 집을 떠나 숙식을 같이하며 공부하던 지금의 사립학교다. 풍림정사(楓林精舍)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인 호산 박문호가 성리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872년(고종 9)에 세운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사 뒤쪽의 후성영당(後聖影堂)은 주자, 이이, 송시열, 한원진, 박문호의 모사본 영정을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후성 영당 뒤편의 멋진 소나무 사이로 산소가 보인다.
풍림정사를 돌아보고 회남방향으로 달리면 회인천이 대청호와 만나는 도로 옆에 운동시설이 갖춰진 쉼터가 있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금곡리 스승골로 향하면 구불구불 산길이 정겹다. '스승골'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알고 싶었으나 마을 주민이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
스승골에서 보이는 봉우리가 작은 국사봉이다. 길 좌우로 과수나무들이 많이 심어져있다. 오르막의 경사가 제법 심하고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미끄럼을 타는 산길을 한참 땀을 흘리며 걸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능선에 올라서니 군락을 이룬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산행을 즐겁게 해준다.
국사봉 정상이 가까워지자 솔잎이나 나뭇가지에 상고대가 하얗게 피어있다. 산불감시초소 옆 돌탑에서 대청호 주변을 바라봤다. 조망이 좋지 않은 날씨지만 흐릿하게나마 대청호, 샘봉산, 염티재, 호점산성 등이 보인다. 꼬리를 무는 연봉들도 아름답다.
때로는 배꼽시계같이 정확한 게 없다. 먹을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팠지만 날씨도 흐린데다 정상 주변이 좁았다. 하산 길에 있는 헬기장까지 이동을 해 점심을 먹었다. 누가 뭐래도 산에서는 이렇게 여럿이 둘러앉아 서로 나눠 먹어야 꿀맛이다.
헬기장부터는 내리막길에 길마저 좋아 금방 조곡마을에 도착한다. 수령을 짐작할 수 없지만 500년 이상은 되었을 보은군 보호수 은행나무 두 그루가 길가에서 맞이한다. 십여 명의 회원들이 양팔로 늘어서서 은행나무의 둘레를 재보는 풍경도 재미있다. 노란 은행잎을 잔뜩 매달고 있을 가을 풍경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허물어진 빈집들이 비탈길을 지키고 있는 조곡마을은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탄광이 있던 80년대까지는 30여 호가 살던 마을이었다는데 지금은 달랑 4집만 남아있다. 곳곳에서 탄광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지도상으로 은행나무 뒤편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마전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은 마을 가까이에 석탄을 채굴하던 막장들이 있고, 막장이 연결된 곳은 겨울에는 더운 바람ㆍ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며 여름에 또 들리라고 얘기한다. 그 당시 채굴장소를 찾기 위해 산 곳곳에 구멍을 뚫어 그런 곳이 많다는 것도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국사봉 못미처에 있던 상고대가 정상에는 없었던 게 생각난다.
사실마을을 지나 대청호반 길을 걸으면 571번 지방도로의 거신교와 건너편의 회남소재지가 바로 앞이다. 길가의 조곡리 마을 자랑비에 새실 마을 앞으로 군량을 제공할 만큼 넓은 들이 있었는데 애석하게 대청댐 수몰로 사라졌다는 내용이 있어 수몰민들의 애환을 생각하게 한다.
흐린 날씨가 조망을 가렸지만 회인 고을에서 문학을 얘기하고 우리의 문화재를 접하며 새로운 것을 배웠다. 어쩌면 좋은 사람들과 보낸 하루라서 더 즐거웠던 답사였다.
[교통안내]
1. 청원상주간고속도로 회인IC - IC 앞 사거리 우회전(회인방향) - 눌곡삼거리 직진 - 회인지구대 - 회광상회 바로 전 골목으로 좌회전 - 오장환 문학관
2. 청주 - 고은삼거리 직진 - 두산삼거리 우회전 - 인차삼거리 직진 - 25번 국도 보은방향 - 피반령 - 고석삼거리 직진 - 회인중학교 - 회광상회 지나며 우회전 - 오장환 문학관
3. 보은 - 후평사거리 청주방향 - 25번 국도 - 수리티재 - 고속도로IC 앞 직진 - 눌곡삼거리 직진 - 회인지구대 - 회광상회 바로 전 골목으로 좌회전 - 오장환 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