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교로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다. 이번에 간 학교는 신설학교다. 아직 3학년이 없다. 학교 설립 초기에 학교의 좋은 전통이 세워지기를 바라며 열심히 근무할 생각이다. 엊그제 1학년 학생들에게 고등학교에 입학한 소감을 적어보라고 했다. A4용지를 배부하고 한 면을 전부 채우라고 했다. 이제 입학한지 삼사일밖에 안된 학생들이 진지하게 자기들의 고충과 기대감을 기록해나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변화된 학교생활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럼 한 면을 다 채운 학생의 글 하나를 무작위로 뽑아 옮겨보기로 한다.
고등학교라는 것은 참 힘들다. 일단 등교시간부터가 너무 이르다. 7시 50분…… 아마도 3학년 때부터는 더 일찍 등교한다고 들었다. 잠과의 싸움이다. 야자 끝나고 나면 9시인데 그래도 학원가고 이것저것 집에서 하다보면 2시쯤 잔다. 항상 아침엔 피곤하고 더 자고 싶다. 졸려서 학교에서 집중하기도 쉽지 않다. 나는 잠이 늘 많은 편인데 잠깨기만큼 힘든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공부내용도 상당히 어려워졌다.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참 막막하다. 솔직히 서울에 있는 대학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는 남녀공학이었는데 고등학교는 남고라서 참 편하다. 남자애들만 있으니까 거슬릴 게 없다. 우리학교 교복도 맘에 든다. 그렇지만 두발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공부하는데 머리가 관련이 있다면 서울에 있는 학교들은 다 삭발할 거다. 물론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야 하지만 그런 일 때문에 사사건건 시비 붙고 서로 얼굴 찡그리고 아침부터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을까? 학생신분 알려고 머리 자르는 거라 치면 더 어이가 없다. 군인은 위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그 지시에 따라서 해야 한다. 근데 학교에서는 아… 학교가 뭐 군대도 아니고 난 정말 정말로 우리나라 두발 때문에 피곤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학업, 진로 면에서 스트레스가 상당히 많이 쌓이는데 학생용의까지 간섭할 시간이 있다면 교과연구를 더 하겠다. 물론 이건 오로지 주관적인 내 생각이다. 3년. 정말 길고도 짧은 시간이면서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매일 열심히 하기로 다짐은 하지만 실천은 잘 못 하는 거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에 가치관에도 문제가 있기도 하다. SKY라면 어느 직장에서도 환영한다. 하지만 이름 못 들어 본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깔보기 일쑤다. 혈연, 지연, 학연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런 얘기 백날 해봤자 바뀔 것도 아니고 난 오늘도 역시 이 세상에 순응하면서 또 펜을 잡는다. 내가 바라는 세상이 실현되기에는 너무 무리인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세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혁명가가 너무나도 필요하다.-1학년 6반 학생의 글-
나는 학생들이 쓴 글에 일일이 내 의견을 달아 놨다. 이제 학생들에게 돌려줘 읽힌 다음 다시 거두어 내가 보관할 참이다. 학생들의 글을 내가 보관함으로써 학생들과의 유대가 더 돈독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혁명가가 너무나도 필요하다」결론부분이 멋집니다. 그러나 학생이 혁명가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개혁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변화시키고 우리 학급, 나아가 우리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한번 해보기 바랍니다. 나 자신부터 새로운 나로 개혁할 때 나의 미래는 달라질 것입니다.
나는 간단하게 의견을 달아놓았다. 다음 시간 학생들이 쓴 글을 학생들에게 돌려줘 내 의견을 읽게 할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너무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쉽게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계속 연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