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야 한다. 어른들이 바른 가정을 이루며 오순도순,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행복이다. 어쩌면 바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요즘은 하도 급변해 세상을 따라가기도 힘들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이 더 중요하다. 각종 연구 자료의 통계숫자들을 보면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금방 안다.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하는 어린 시절일수록 어른들의 뒷바라지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가정환경이 곧 교육환경이다.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꼭 부모의 관심과 열성만큼만 발전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부모의 가정사나 경제상황 때문에 고통 받거나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지금의 추세라면 이런 아이들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걱정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정환경이라는 좁은 틀 속에 갇혀 지낸다. 그러면서 애정결핍에서 오는 욕구불만을 응어리로 만든다. 그런 불만을 해소시킬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가 부모의 손길이 멀어지면 나쁜 생각과 엉뚱한 행동으로 불만을 표출한다. 자기 나름대로는 희열을 느낀 생각과 행동이 왜 문제가 되는지 어린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히고, 그런 일이 가족들까지 구속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점점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나만큼 우리 반 아이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성인이 되면서 떳떳하게 밝히고 있는 내 어린 시절이 그러했다.
분교 근무를 마치고 본교에서 4학년을 맡았다. 아이들 모두가 보물단지다. 나이 탓인지 올해는 유달리 내가 맡은 아이들 때문에 행복을 느낀다. 때로는 나를 반기는 31명의 아이들이 있어 아침이 즐겁다.
그런데 아이들 몇 명 때문에 가끔 화를 낸다. 사실 내 어린 시절을 닮은 그 아이들의 환경이 나를 화나게 한다. 면소재지에 위치한 학교지만 우리 반에는 가정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이 유난히 많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아이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부모의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조손가정의 아이들이 6명이나 된다. 그중 3명의 아이는 1년에 몇 번이라도 아버지를 만나 학용품값이라도 받지만 나머지 3명은 부모의 생사조차 몰라 가슴에 피멍이 든 아이들이다.
결국 불우한 가정환경은 아이들이 나쁜 길로 가는 원인 제공자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 길에 동조하거나 방관하지도 않는다. 잘못된 일이라면 작은 일이더라도 원인을 챙기며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담임을 맡고 3일 후에 우리 반 ◈◈가 결석을 했다. 들려온 소문으로는 배가 아프다는 게 이유였다. 실컷 노느라 숙제 못해 결석했다는 것 어린 시절 형사를 꿈꿨던 내가 모를 리 없다.
들은 얘기가 있어 습관이 되기 전에 뿌리를 뽑아야 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속으로 ‘너 잘 만났어.’, ‘누가 이기나 보자.’, ‘틀림없이 내가 이긴다.’를 외쳤다.
사실 나는 싸움이라면 자신이 있다. 떳떳이 살면서 끝까지 약속을 지키면 꿀릴 것이 없는 게 싸움이다. 상대가 누구든 그런 신조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스스로 주눅이 든다. 질 싸움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아이 둘을 군에 보내놓고 국방부장관, 국회국방위원장,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국방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이 왜 의료보험혜택을 못 받는지 끈질기게 따진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아내와 주변 사람들이 우려를 많이 했지만 몇 년 전부터 외출 나온 군인들도 의료보험 대상자가 되었다.
수업이 끝난 오후에 ◈◈네 집을 어렵게 찾아갔다. 골방에서 TV를 보며 ‘하하’ 웃음소리를 내던 ◈◈가 화들짝 놀란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를 다독이며 생활을 지도할 형편이 아니다. 집에 찾아와 숙제 검사를 하는 담임 때문에 ◈◈가 다시 놀란다. 고생하는 선생님에게 커피 한 잔 주라는 할아버지의 안달이 부담스러워 밖으로 나서게 한다. 그래도 결석해 집에 찾아오지 않게 숙제 꼭 해야 한다는 당부는 잊지 않는다.
개교기념일이 겹쳐 이틀을 놀던 날이다. ★★이가 밤 11시경까지 시장 주변을 배회해 우리 반의 자모님이 차에 태워 마을 입구까지 데려다줬는데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이 이틀을 보낸 아이들을 조사해보니 자질구레한 사건들이 많았다. 아이들의 실상을 알아보니 그까짓 것 모두 눈감아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 아이들이 밖에서 자는 일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아버지를 학교로 오시게 했다. 어느 부모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자식 때문에 고심하는 부모의 마음을 읽었다. 삐뚤어진 아이일망정 부모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듯이 제자리로 온다. 마음을 터놓은 대화 속에 그 아이를 자식같이 사랑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조손가정 아이들을 지켜보니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적 보살핌을 못 받는다. 그 중 몇 명의 아이는 끝까지 부모와 만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 아이들이 친구들을 많이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당분간은 눈감아주련다.
그러면서 꿈을 키워줄 것이다. 꿈이 있어야 하는 일이 재미있고 미래가 보인다. 다른 학부모님들이 그 아이들을 이해할 때까지 욕도 좀 얻어먹으련다. 그래서 반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과의 첫 만남에서 불우했지만 꿈이 있던 내 어린 시절을 떳떳하게 얘기했다.
아이들과 생활할 열두 달 중 한 달이 지나간다. 남은 열한 달도 내 마음은 한결같다.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내 자식처럼 아이들을 사랑하련다.
하지만 무작정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나쁜 행동을 일삼으면 따끔하게, 눈물 쑥 빠지게 혼도 낼 것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주는 사랑이 고귀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련다.
이 마음만은 몇 명이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모두와 함께 하련다. ‘너희들 잘 만났어.’, ‘누가 이기나 보자.’
마지막까지 잊지 말고 실천해야 할 게 또 있다. ‘틀림없이 내가 이긴다.'. 누가 뭐래도 우리 반 아이들은 인성이 바른 사람으로 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