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이제 봄이 완연한 때인데도 불구하고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이상 고온으로 점철되는 요즘 날씨다. 그래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때는 약간 지났지만 한 번은 봐야하지 않겠느냐는 아내의 권유와 놀러 나가자는 딸의 으름장에 집에서 가까운 테미공원을 갔다. 참고로 테미공원은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과 대사동에 위치한 대전 시민 공원으로 야트막한 언덕인데, 근처에는 태마도서관도 있다. 아름드리 왕벚나무가 수백 그루 있어서 한창 필 때는 필자 아파트에서 보면 마치 살색 모자를 쓴 모습으로 보인다.
하여튼 일요일에 점심을 먹고 테미공원을 갔더니 끝물인 벚꽃을 보려는 상춘객들이 많았다. 이제는 만개를 넘어서 사나흘만 지나면 벚꽃도 그 아름다움을 다할 정도인데 꽃잎이 마치 비처럼 흩날리고 구석에는 그 흔적들이 켜켜이 쌓인다.
우리나라처럼 일본도 봄철에는 하나미(花見, はなみ)라고 해서 벚꽃 등의 꽃을 감상하면서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는 행사가 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3월에서 4월에 걸친 봄 기간에 핀 벚나무의 밑에서 벌어지는 연회, 파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진해 군항제, 여의도 윤중로 축제(참고로 윤중(輪中)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여의섬둑을 여의윤중제라고 부른 말에서 유래한 일본 한자식 표현이다. 여의방죽길로 고쳐 부르기는 해도 워낙 사람들 머리에 잘못 박힌 단어로 이제는 고쳐 불러야 한다.)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벚꽃은 묘한 성격이 있다. 꽃 필 때는 그 화려함이 극에 달하여 보기에는 아주 좋아 보이지만 지고나면 그렇게 볼 품 없어 보이는 것이다. 물론 어느 꽃인들 지고 나면 보기 좋겠냐마는 그 화려함에 비해 지고 난 후의 모습이 영 아닌 것은 벚꽃이 더 심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하지만 그 이후에는 흑앵(黑櫻)이라는 불리는 버찌가 열려 배고팠던 시절 사람들의 허기를 달랬고 이제는 와인으로까지도 확장된 좋은 곳에 쓰이는 열매가 열려서 그 아쉬움을 달랜다.
벚꽃의 피고 지는 것은 사람 사는 것의 덧없음을 표현한다. 꽃을 피우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꽃봉오리들의 모습은 청소년기의 학업을 닦는 모습을 보인 것 같기도 하고, 화려하게 꽃을 피워서 세인들의 눈길을 모으게 하는 것은 젊은 시절을 보이기도 한다. 만개를 넘어 꽃잎이 비처럼 날리는 때는 사람의 중년을 보는 것 같고, 꽃이 진 후에 버찌를 연 것은 노년에 자기가 남겨 놓은 것들, 자식일 수도 있고, 무슨 업적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요즘 들어 언론지상에 전직 대통령과 관련한 보도기사가 연일 대서특필이다. 부인이 후원회장 격인 사람에게 빚을 갚기 위해 재임 중 돈을 받았다고 하고, 아들 또한 무슨 투자된 돈을 받았다는 풍문이다. 청렴과 도덕성을 금과옥조로 내세웠던 대통령이 무언가 구린 돈을 받아서 검찰 소환까지 받게 될 모양인데 보기가 영 씁쓸하다. 한때는 저 테미공원 벚꽃처럼 화려하게 꽃피우고 언제까지나 지지 않을 것처럼 의기양양하더니 최후에는 제대로 된 버찌 열매하나 맺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평범한 숙어를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한 번 곰곰이 곱씹어 볼 만한 벚꽃이 주는 교훈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