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섬진강보다 좋은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섬진강은 강물의 양을 늘리며 긴 잠에서 깨어난다. 이때쯤이면 어머니의 속 깊은 정이 느껴지는 섬진강을 끼고돌며 봄의 전령사인 매실나무, 산수유나무, 벚나무가 번갈아 꽃 대궐을 만들어 놓는다.
3월 중순경에는 광양 청매실농원의 매화, 3월 말경에는 구례 산동면의 산수유꽃, 4월 초순경에는 하동에서 구례까지 경남과 전남을 어우르는 섬진강변과 쌍계사 가는 길의 벚꽃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낸다.
따뜻한 봄바람에 꽃 축제의 화사함이 더해지니 봄 마중 나온 사람들의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들뜬 마음으로는 작은 사찰이나 큰길에서 조금 외돌아진 여행지를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런 여행지가 바로 구례군 문척면 오산 정상에 있는 사성암이다.
사성암(전남문화재자료 제33호)은 구경거리가 많은데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명소다. 드라마 토지에서 주인공 길상과 서희가 불공을 드리던 도솔암의 촬영지였다는 것도 아는 사람이 적다.
크기가 작은데다 사찰에서 100여m 거리의 주차장까지 차로 오를 수 있어 섬진강변을 오가는 길에 잠깐만 짬을 내면 된다. 다만 경사가 급한 산꼭대기에 있어 오르는 동안 사람대신 차가 신음소리를 낸다. 여유를 누리려는 사람들은 도농상설체험장이 있는 각금마을에서 시작되는 오산 등산로를 이용하는 게 좋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사성암의 아름다운 모습을 말할 수 없다. 제비집처럼 가파른 바위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사성암을 보고나서야 '오산을 오르지 않으면 후회하고 두 번 다시 가지 않아도 후회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역사가 오래된 사찰답게 좁은 공간에 오밀조밀 중요한 것을 다 갖추고 있어 위엄과 품위가 느껴진다.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과 구례읍의 풍경도 일품이다. 자라 오(鰲)자를 쓴 오산이라는 산의 이름도 이곳의 생김새가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물을 자라가 먹고 있는 모습이어서 붙여졌다.
암자는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오산에 있어 원래는 오산암이었는데 '원효, 의상, 도선, 진각'이 수도한 후 4대 성인이 수도했던 곳이라 하여 사성암으로 불린다.
주차장 끝에 있는 돌탑을 지나면 100여m 거리에 사성암이 숨어있다. 바위벽을 병풍 삼은 암자들이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채 만들어 논 세상이 새롭다. 넓은 마당 대신 허리높이의 돌계단이 이어지고, 양옆의 돌담 위에 이름과 소원을 적어놓은 기와들이 눈길을 끈다.
기둥 세 개에 의지한 채 바위벽에 매달린 약사전은 97년 이후 법당까지 흙을 채워 절벽을 메우고 공사가 끝난 다음 다시 흙을 파내는 고생 끝에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만든 암자다. 구불구불 돌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면 25m의 암벽에 조각된 마애여래입상(전남문화재 제222호)이 자비로운 미소로 맞이한다. 선정에 든 원효 스님이 손톱으로 그렸다는 입상은 음각으로 놀라울 만큼 선이 뚜렷하다.
약사전에서 지장전으로 가는 길의 언덕에 수령이 800년도 더된 귀목나무가 섬진강을 굽어보고 있다. 그 위에 있는 지장전의 돌담에도 소원을 적은 기왓장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주지스님이 묵는 작은 암자 옆 바위도 기도를 하는 장소다. 소원을 빌면서 바위의 빈틈에 올려놓은 동전들이 이색적이다. 기왓장에 소원을 적었건 바위틈에 동전을 올려놓았건 소원이 모두 이뤄질 것 같은 기운이 감돈다.
지장전 위에 뜀바위로도 불리는 소원바위가 서있다. 이 바위에 하동으로 뗏목을 팔러갔던 남편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움에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바로 아래에 있는 활공장에서 이륙한 패러글라이딩들이 하늘을 수놓는 모습도 멋지다. 나지막한 돌담길을 돌아서면 큰 바위 사이로 아담한 산신각이 나타난다. 산신각 옆의 바위틈이 도선국사가 좌선하던 도선굴의 입구다. 안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어두운데 중간쯤에 좌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수행에 정진했을 도선국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도선굴의 출구가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어 밖으로 나오면 구례읍, 섬진강,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올망졸망한 집들이 넓은 들판에 둘러싸여 있는 구례읍, 큰 물줄기를 만들며 S자로 휘감아 도는 섬진강, 그런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꼬리를 무는 지리산의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이 도선굴에서 깨달음을 얻고 딴 세상에 온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인 오산 정상은 등산로인 활공장에서 5분여 거리에 있다.
사성암을 나와 넉넉한 마음으로 자연을 품은 봄철여행 1번지 섬진강변을 달리노라면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은빛물결이 다음에 또 만나자고 손짓한다.
*도로안내
①통영ㆍ대전고속도로 함양JC → 88고속도로 남원IC → 19번 국도. → 밤재터널 → 구례읍 → 861번 지방도 → 문척교 건너 우회전 → 죽마리 → 사성암
②호남고속도로 전주IC → 남원 → 19번 국도 → 밤재터널 → 구례읍 → 861번 지방도 → 문척교 건너 우회전 → 죽마리 → 사성암
③호남고속도로 곡성IC → 곡성읍 → 17번 국도 → 구례 구역 → 18번 국도 → 구례읍 → 861번 지방도 → 문척교 건너 우회전 → 죽마리 → 사성암
④남해고속도로 하동IC → 하동읍 → 19번 국도 → 간전삼거리 좌회전 → 861번 지방도 → 죽마리 → 사성암
*Tip자료
①사성암 입장료 : 2,000원(주차료 없음)
②전화 : 사성암 061)781-5463, 구례군청문화관광과 061)780-2450
③사이트 : 구례군청문화관광(
http://www.gurye.go.kr/culture)-관광명소-유명사찰-사성암
④주의사항 : 사성암 주차장까지 가파른 산길이 이어져 안전운전이 필수
⑤주변 볼거리 : 구례 산수유마을ㆍ화엄사ㆍ천은사, 하동 화개장터ㆍ최 참판 댁ㆍ쌍계사, 광양 청매실농원
⑥먹거리 : 재첩국, 참게탕, 은어회, 산채정식
⑦장터 : 구례장-3ㆍ8일, 화개장-1ㆍ6일
⑧등산 : 각금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해 사성암과 오산 정상을 거쳐 마고마을로 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