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서 <한비자>(韓非子)의 한 고사를 인용해 본다.
황제가 한 궁정 화원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고, 가장 그리기 쉬운 것은 무엇이냐?” 화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리기 어려운 것은 개이고, 그리기 쉬운 것은 도깨비입니다.” 이에 황제는 놀라서 되묻는다. “개는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어찌 그리기 어렵다고 말하고, 도깨비는 사람 눈에 안 보이는데 어찌 그리기 쉽다고 말하는가?” 화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개는 주위에서 늘 보는 까닭에 누구나 그 모습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그림으로 그려 놓으면 사람마다 꼬리가 짧다느니 다리가 굵다느니 하면서 타박을 줍니다. 그러나 도깨비는 누구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붉고 푸른 물감으로 괴상한 형상을 마음대로 그려 놓으면 모두 감탄하면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합니다.” <한겨레신문, 2009.4.14. 참고>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문제가 정책의제로 채택되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무의사결정(無意思決定, Non-decision making)이라고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0년대 바흐라흐(P. Bachrach)와 바라츠(M. Baratz)라는 학자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무의사결정은 사회를 주도하는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들을 억압하고 방해하여 정책의 결정․집행․평가 등 정책과정 전반에 걸쳐 수면에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위 한비자 고사의 도깨비나 개처럼 지배계급들이 잘 알거나 이익을 주는 혹은 일반 시민들이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는 엘리트들이 특히 관심을 많이 가진다. 이러한 것들은 엘리트들이 변화요구를 억압 내지 묵살하거나 안전한 의제만 선택하며, 보수적 결정을 하되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은밀하게 결정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아울러 이러한 무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도깨비처럼 일반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적게 받고, 가급적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어야 하며, 국가기관 어느 쪽에 해당하지 않는 애매한 문제이면서 공공의 논의대상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조건을 가진다.
무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것이 폭력이며, 이보다는 온건한 것이 권력을 동원한 방법이다. 현재와 같은 참여민주주의 시대에 악용하는 교묘한 방법으로는 의사결정 기구에 소수 집단을 참여시켜 반대의견을 없애는 것도 있고, 돈이나 지위 등을 이용한 매수와 엘리트들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처럼 한 다음에 무마하거나 고의로 지연시키는 사례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의사결정의 생생한 사례는 어떤 것일까? 흑인의 인종차별 문제가 심했던 예전의 미국 사례를 굳이 찾을 필요 없이 우리나라의 1970년대나 1980년대 노동, 환경, 통일, 민주화 문제 등을 들 수 있겠다. 당시만 해도 초고도 경제성장을 위해서 다른 문제들은 모두 사치로 몰아간 지배계급이나 보수 언론들의 이데올로기는 이것을 증명한다. 근래에는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4대강 정비를 빌미로 운하건설을 위한 기반 작업을 하고 있고,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에 대운하 대책팀을 밀실에 설치하여 은밀하게 추진한 사례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교육문제에 있어서도 무의사결정 사례는 많다. 참여정부 때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추진한 판교신도시의 미니 교육특구 같은 것이다. 강남 집값과 사교육을 잡기 위해 판교에 제2강남을 만들겠다는 것은 실패한 정책임에 틀림없다. 특정 지역에 그러한 도시를 만들기보다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국민의 교육기회 불균등을 시정하기 위한 공교육 내실화가 더 시급한 정책의제였음에도 말이다.
여기에다가 얼마 전 한바탕 태풍이 몰고 지나갔었던 학업성취도 평가 문제도 그렇다. 실시여부부터 첨예하게 대립했었지만 제도운영 방식(채점 방식, 시험지 보관, 등급 판정 등)에 있어서 완벽하게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성급하게 치르는 바람에 그 난리가 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늘었다. 수학능력시험 5년간 성적 자료를 시군구별로 공개한 것은 공교육 강화라는 본래 목적은 없어지고 지역, 학교, 계층 사이의 격차를 재확인하고 그 간극을 더 벌려서 서열화 논란만 더 부채질 할 가능성이 크다. 비록 소송에서 승소하여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공개로 인한 이익이 비공개로 인한 이익보다 크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본다.
각종 성적 공개는 평준화 정책에 대한 찬반이 진보나 보수간 이념논쟁쪽으로 흐르고 해결점이 쉽게 안 보이다 보니 현 평준화 정책을 허물기 위한 외곽 때리기를 통해 문제점을 도출하여 알리려는 일련의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잘못된 방식의 교육정책으로 얻게 될 폐해가 더 크고, 학력신장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학벌이 천형처럼 고착화된 한국에서 상위 몇몇 대학에 들어갈 인원은 항상 적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본래 목적의 실효성 또한 의문이 든다.
사회에는 수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어떠한 것들은 곧바로 의제형성이 되어서 쉽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으나 어떤 문제는 방치되어 두고두고 사회 문제화 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해서 정책의제화 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사회적 지도층과 언론은 사적인 이익을 버리고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특히 교육문제는 모든 사회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책이기에 더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