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은 마중물 처럼 해야 한다

2009.05.01 12:26:00

지금은 시골 고향집 부엌 한쪽에 흔적만 조금 남아 있지만, 20 여 년 전 그때 그곳에는 흔히 뽐뿌(펌프의 일본식 발음)라고 불리는 물을 퍼 올리는 장치가 있었다. 대부분의 시골에는 다 있는 것이었지만 펌프로 물을 퍼 올리려면 펌프장치 안에 먼저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부어야 한다. 펌프와 샘을 이은 파이프 안의 공기를 없애기 위한 것인데, 이를 옛 어른들은 마중물이라 했다. 마중물을 붓지 않고는 아무리 펌프 지렛대를 움직여도 공기만 퍼 올릴 뿐이다.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면 처음에는 마중물이 흘러나오다가, 이어 샘물이 퍼 올려진다. 가끔 가다가 지렛대를 너무 빨리 움직이거나 혹은 물을 적당량 붓지 않거나 펌프질 시기를 놓치면 마치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꺼어어억하는 특유의 소리가 울린다. 바로 마중물의 중요성이 여기에서 나온다. 적당량의 물과 적절한 시기의 펌프질, 힘 조절 등 삼박자가 잘 맞아야 물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언론지상에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 중 하나가 곽승준이라는 인물이다. 이 사람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로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거쳤다. 비록 내부 권력다툼에 밀려 그 자리에서 낙마하긴 했지만 신임이 대단한지라 미래사회 전망 및 이에 기초한 사회통합과 안전, 인구, 환경, 교육, 문화, 에너지, 식량, 수자원, 건강, 정보통신과 미디어, 우주개발 등 미래생활과 관련된 총체적 국가비전 및 전략의 수립에 관하여 대통령 자문에 응하기 위해 설치된 미래기획위원회의 위원장에 중용되었다. 앞에서 말한 기능을 연구하는 위원장인지라 그가 말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특히 요즘 벌어지는 학원 교습시간을 10시로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우선 위원회와 정부, 정당간의 정책 추진 불협화음 같은것도 그렇지만  학원 교습시간 제한에 대한 의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봤다. 우선 정책이라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 추진하기에는 불가능한 면이 많다. 특히 모든 분야에 파급력이 미치는 교육정책은 더 그렇다. 주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익은 정책을 남발한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다. 비록 그가 제안한 사항이 서민들의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고, 학생들에게 천형처럼 부과된 과도한 정신적 육체적 학업 부담을 다소 완화해 줄 수 있는 좋은 제안이 된다고 해도 면밀한 검토와 협의가 되지 않은 채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은 자칫하면 좋은 의도를 반감시킬 우려가 있다.

더욱이 학원 교습시간 제한은 이해관계자인 교육관련 단체와 사교육 수요자인 학부모, 학생들의 의견 수렴이 필수 사항이다. 거기에다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라 할 수 있는 학원관계자들의 의견수렴은 또 어떤가. 정책의제를 함에 있어 워낙 민감한 문제라서 사회 공론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정책결정 쪽으로 직행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든다. 거기에다 사교육 창궐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학벌위주 사회의 견고화와 입시를 위한 살인적인 경쟁교육의 폐해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도, 그 뿌리에서 파생한 곁가지인 사교육만 건드린다면 근본적 문제 해결은 어렵다고 본다. 이것은 마치 진단은 암으로 났는데 처방은 반창고만 붙이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좋은 교육정책을 꽃피우려면 위에 언급한 마중물처럼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양의 물과 함께 힘을 조절하여 펌프질을 해야 지하에 있는 맑은 물을 끌어 올릴 수 있다. 마중물을 붓지 않고 물을 끌어 올리는 방법은 없다.
백장현 교육행정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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