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2009.05.20 11:55:00

세상이 좋아지고, 물질이 풍부해지면 학교에 근무하는 것도 즐거워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힘이 든다. 시대가 변하는지 아이들이 변하는지 학교의 모든 환경이 예전 같지 않다.

올해도 역시 이런저런 뉴스로 학기 초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특히 국민권익위원회가 촌지 단속을 이유로 학부모가 가져온 쇼핑백을 뒤지고, 교실에 무단으로 들어와 조사를 했다는 보도는 많은 생각을 담게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교실에 들어가면 이런 현실이 금방 잊힌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보면 주변을 탓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교사로서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본능이 일어난다.

이제 고등학교에 왔으니 학급 내용도 조금 어렵다. 중학교 때 공부를 게을리 해 단어의 뜻도 모르는 아이가 많다. 그런데 사전 찾는 것도 싫어한다. 그냥 가르쳐줄까 하다가 습관을 키우기 위해 강제로 사전을 찾게 한다. 공부가 익숙지 않아 아이들 말처럼 멍 때리고 앉아 있는 경우도 많다. 일일이 지적하며 의식을 수업 시간으로 끌고 온다. 졸고 있으면 세워놓기도 하고 농담을 건네 보기도 한다.

공부뿐인가. 아직도 학교생활을 잘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급식 시간에 새치기를 하고, 청소 시간에 매점으로 바로 달려가는 아이도 있다. 등교 후 휴대전화는 학교 사물함에 넣었다가 하교할 때 찾아가야 하는데 이 규칙도 자주 어긴다. 아직 어린데 화장은 왜 그리 많이 하는지. 여학생들이 치마를 짧게 입는 것도 보기 흉하다.



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자기보다 남을 위해 사는 삶이 더 넉넉함과 따뜻함이 있다고 말했다. 공부도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자기 역할이라는 것도 이야기했다. 내가 배식도 도와주고, 걸레를 들고 청소도 하면서 지켜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자기 역할을 안 하는 아이가 보인다. 말로 타일러도 안 된다. 소리도 지르고 눈물이 쏙 바지도록 혼을 낸다. 때에 따라서는 매를 들고 때리기도 한다.

그런 덕분인지 채 3개월이 안 되었는데 모두가 어른스러워졌다. 내가 조금만 밝은 얼굴이 아니어도 걱정을 함께 한다. 곁길로 간 아이도 없다. 자기 진로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장래 희망도 당당하게 말한다.

엊그제 스승의 날도 이놈들이 나를 울렸다. 스승의 노래를 부르고 꽃다발을 안기고 만년필까지 선물을 준다. 떡 케이크까지 준비해서 함께 먹었다.

내가 그렇게 엄하게 하고, 잘못하면 무섭게 타일러서 내 곁에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더욱 여자 아이들이니 마음도 약해서 쉽게 삐칠 것이라고 여겼다. 늘 공부만 하라고 하고, 자기들 마음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타박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녀석들이 화낼 때는 무섭지만 인자하다고 한다. 웃는 모습이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고 편지를 쓴 녀석이 많다. 또박또박 그리고 자세히 가르쳐 줘서 고맙다고 한다. 말썽을 제법 많이 피우던 녀석은 눈물이 젖은 채로 와락 안기는 바람에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들이 노래를 할 때 눈물이 핑 돈 이유는 무엇일까. 고마움이 밀려왔다. 또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녀석들은 내가 무섭기도 하지만, 인자한 적도 있다고 양면을 보았는데, 난 늘 말썽쟁이들로만 보았다는 자괴감이 인다.

학교는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많은데 언론은 오늘도 학교는 학원보다 못하다고 추측 보도를 한다. 스승의 날 신문 만평에도 ‘학교는 썰렁, 학원은 와글와글’하는 그림이 실렸다. 실제로 우리 아이들은 일찍 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선생님을 찾아간다고 부풀어 있다.

요즘 학교의 모습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만들어낸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편지를 받고 꽃 한 송이를 받았다. 그런데도 선생님들은 마치 금품 수수에 촌지를 받는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은 외면하고 학원으로 간다고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이 시대 스승은 없고 교사만 있다면서 작문식 기사를 남발하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선생님의 사랑이 담긴 양분으로 자란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꿈을 키우고 있다. 밖에서 보면 한없이 작고 하찮은 것이지만, 선생님과 아이들은 한 장의 편지와 감동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행복한 눈물을 흘린다. 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들이다. 이 아름다움 모습에 찬사를 보내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는 행위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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