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지다’는 ‘차지다’의 방언

2009.06.15 17:21:00

SBS 주말극장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드라마를 본다. 주인공 네 자매는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유쾌하고 발칙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 신세대의 새로운 부부상과 결혼상을 그리고 있어 흥미롭다.

요즘에는 이 집안의 셋째 딸 오금란(한고은 분)의 결혼 문제가 주된 이야기다. 그녀는 결혼하기 싫지만 아이는 갖고 싶은 신세대 여성상이다. 해서 인공 수정으로 딸을 낳았다. 혼자 딸 오장미를 키우다가 정자 기증자인 대학병원 내과의사 이순신(박광현 분)이 나타나서 결혼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주말에 오금란의 집에서 신랑 집에 함을 보내는 내용이 있었다. 함은 혼인 때 신랑 쪽에서 채단(采緞)과 혼서지(婚書紙)를 넣어서 신부 쪽에 보내는 나무 상자다. 이는 혼인에 대하여 감사와 두 집안의 유대를 표시하며 보내오는 것이다. 원래는 결혼 전날에 보내오는 것을 지금은 시대적 상황과 사정에 의해 결혼 며칠 전에도 보내진다.

함에는 혼서(혼인할 때에 신랑 집에서 예단과 함께 신부 집에 보내는 편지. 두꺼운 종이를 말아 간지 모양으로 접어서 쓴다.)와 청홍 비단의 혼수, 예물이 자리한다. 함은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구성되며 대체로 바닥에는 붉은 한지를 한 겹 깔고 그 위에 오방주머니를 놓고 그 위로 채단을 놓는다. 그 위에는 쌍가락지가 놓이는 경우가 많고 시어머니가 물려주는 패물이 오르기도 한다. 패물에는 보통 노리개나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패물이 하나 정도 오른다.

이 중에 오방주머니는 다섯 가지 빛깔의 헝겊으로 지은 주머니이다. 오방(五方)에서 재수가 들어온다는 뜻에서, 궁중이나 양반의 집에서 사용하였다. 동쪽은 파랑 실, 서쪽은 하양 실, 남쪽은 빨강 실, 북쪽은 검정 실, 가운데는 노랑 실을 썼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지난 주말에 방영된 드라마에서는 함을 신부인 오금란이 시집에 가지고 간 것부터가 어색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통적으로 함은 신랑이 신부집에 가지고 간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설정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즉 그날 오방주머니에 찹쌀에 대한 해석에서 설정 의도를 알 수 있다. 사실 오방주머니의 찹쌀은 부부의 해로를 기원하고 질긴 인연을 바란다는 뜻에서 넣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날 친정 엄마는 찹쌀을 시어머니가 먹는 것을 연상한다. 찹쌀을 입에 가득 넣으면 ‘찰진 찹쌀’ 때문에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못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야말로 재미를 위해서 넣은 설정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친정 엄마인 박애숙(박정수 분)이 찹쌀에 대해 계속 ‘찰지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말이다. ‘찰지다’는 ‘차지다’의 방언이다. ‘차지다’를 국어사전에서 검색하면,

차지다1. 반죽이나 밥, 떡 따위가 끈기가 많다.
- 차진 흙/인절미가 퍽 차지다./반죽이 너무 차져서 떡 빚기가 힘들다.
- 그는 차진 밥을 좋아한다.2. 성질이 야무지고 까다로우며 빈틈이 없다.
- 염상진은 큰 키에 비해 싱거운 사람이 아니었다. 맵고 차지고 단단한 사람이었다.(조정래, ‘태백산맥’)

그런데도 주변에서는
○ 밀가루 고추장은 물엿이 많이 들어서인지 끈적끈적하고 찰진 느낌이 든다.
○ 보리보다 쌀이 더 많이 들어가 밥이 제법 찰진 편이다.
○ 비탈진 곳에서 벼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있어야 하니 바닥에 곱고 찰진 흙을 깔아 바닥을 만든다.
처럼 ‘찰지다’를 많이 사용한다. 여기에도 이유는 있다. ‘차지다’가 ‘디다’에서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1957년 한글학회 지은 ‘큰사전’에서 ‘차지다’와 ‘찰지다’는 동의어로 처리했었다. 또 현대어에서 ‘찰강냉이/찰곡식/찰기/찰떡/찰벼/찰시루떡/찰흙’ 등에서 ‘찰-’을 많이 쓴다. 이 ‘찰-’은 ‘차지다’의 의미와 범주가 비슷한 것도 영향을 준 것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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