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의 육촌인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는 타고난 전사였는데 기원전 280년경에 로마공격에 나섰다가 로마군을 궤멸시켰으나 본인 또한 그에 못지않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로마군은 현지에서 병력을 충원할 수 있었지만, 그로선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4년 뒤 로마군과 다시 격돌해 결국 패배했다고 한다.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는 이처럼 큰 희생을 치르고 얻는, 상처뿐인 승리를 뜻하는 관용어로 알려져 있다. '카드모스의 승리’(Cadmean victory)라는 말도 있는데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며, 이긴 뒤에 오히려 더 큰 재난이나 새로운 시련을 초래하는 형국을 뜻한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부시의 승리’라는 말도 있는데, 아들 부시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뜬소문을 듣고 쳐들어가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는데 성공했으나 아버지 부시가 중동을 장악하기 위해 그 후세인을 키우고 도와줬던 사례가 있어서 손실이 더 많은 전승이었기에 피로스의 승리처럼 비꼬아서 부른다.
- 한겨레신문 '유레카'에서 발췌 -
이런 것은 비단 외국에만 있는 전설 같은 얘기만은 아니다. 2009년에 '반(反) MB교육정책', 'MB교육정책 심판'이라고 선언한 서울교육감 주경복 후보의 석패 이후 완벽한 승리를 거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대표공약이 경기도교육위원회(이하 '경기교육위')에 의해 좌절된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아시다시피 경기교육위나 경기도의회는 현 김상곤교육감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보여 왔다. 이런 것이 이번 경기교육위의 초등학교 무상급식과 학생인권 조례 제정 예산 절반 삭감, 혁신학교 예산 전액 삭감 이라는 행태로 나타난 것이다. 교육청과 교육위가 제 아무리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신임 대통령과 의회는 약 6개월 내지 1년여의 밀월(蜜月, honey moon)이 유지되는 것이 통례라고 한다. 즉, 대통령이 새로운 정치와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일단은 지켜본 후 그 다음에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1년이 조금 더 남은 짧은 임기의 경기교육감에 대해서 주민으로부터 지지받은 핵심공약을 처음부터 어깃장을 놓은 것은 그 정도가 지나친 것이다. 특히 농·어촌 및 군 단위 지역, 전교생 300명 이하 도시지역 학교 어린이에게 무료로 밥을 먹이겠다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은 내년 선거를 대비한 또 다른 정치적 음모 때문이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더군다나 보수적인 정부의 등장으로 인해 인권에 대해서 관심이 더 높아야 하는 이때에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한 것도 그렇다 할 것이다. 혁신학교도 그렇다. 교장공모제와 초빙강사제, 행정인력 고용 확대 등을 통해 자율성을 부과하고, 학급당 인원수를 25명, 학년 당 학급수를 6개 이하로 제한하여 과밀화를 해소하여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려는 목적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것은 지나쳤다고 본다.
물론 교육위원의 임무는 집행청에 대한 감시와 견제이다. 그러다 보니 무상급식이나 혁신학교 보다 시급한 사안이 많아서 반대했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정치적 이념을 떠나 부유한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 같아 반대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인구나 예산 규모가 큰 경기도교육청을 생각해 본다면 앞서 말한 예산들은 전체규모에서 5%도 못 미치는 미미한 예산들이다. 하지만 이 예산들은 학생 복지와 공교육 활성화, 학생인권 신장 이라는 대명제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이라는 말인가.
하여튼 예산삭감에 찬성표를 던진 교육위원들은 어쨌든 예산삭감 의결이라는 피로스의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 후폭풍으로 인하여 유권자인 경기시민들로부터 엄청난 항의전화를 받아서 아예 전화기를 꺼놓고 있다고 한다. 민심을 거스른 것에 대한 상처뿐인 영광만을 안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