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안연편에 “非禮勿視(비례물시)하고 非禮勿聽(비례물청)하고 非禮勿言(비례물언)하고 非禮勿動(비례물동)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의 뜻은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라’는 뜻이다.
공자의 수제자였던 안연이 仁에 공자에게 물었다. 그 때 공자께서는 克己復禮(극기복례)가 仁이라 했다. 안연은 다시 克己(극기)를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 때 공자께서는 위의 네 가지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즉 보지 말고 들지 말고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눈은 보기 위해 만들어졌고 귀는 듣기 위해 만들어졌으면 입은 말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발은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보지 말고, 들지 말고,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고 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렇게 해야만 자기를 이기는 길이라 하셨다.
아무리 보기 위해, 듣기 위해, 말하기 위해,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예가 아니면, 바른 것이 아니면, 예의에 어긋난 것이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勿(물)은 -하지 말라의 뜻이다. 금지의 뜻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이 ‘禮(예)’이다. 예절이다. 바른 것이다. 옳은 것이다.
10대 청소년들은 방학을 맞이해서 四勿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학교를 떠나 선생님의 곁을 떠나 있으면 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가 있다.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가 있다.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할 수가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아무리 주위에서 선생님께서 지켜보지 않는다 해도 눈에 거슬리는 것 보이면 보지 않아야 한다. 바른 행동이 아닌 것을 하면 고개를 돌려야 한다.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눈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자기를 이기는 비결인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예를 실천하는 것이다.
온갖 욕설이 들리면 듣지 않아야 한다. 온갖 나쁜 말이 들리면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전염되기 때문이다. 쉽게 따라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런 말을 들었다. 자기 아파트 주차장에서 애들끼리 욕설을 얼마나 잘하는지, 10마디 중 8-9마디 말은 욕이라고 하였다. 거의 다가 욕설이라는 것이었다. 욕설도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었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지도 듣지도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입에 음담패설(淫談悖說)을 삼가야 한다. 음담패설을 하지도 듣지도 말아야 한다. 음담패설도 결국은 자기를 건강하게 지켜주지 못하고 만다. 음담패설을 즐기는 이는 결국 자신이 깨끗한 인품을 지니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배우는 이들이 이런 것 배우려고 애를 써서는 안 된다. 이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하였다. 바른 것이 아니면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면 하지 말아야 한다. 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나의 발걸음이 바른 길이 아니면 돌아서야 한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자기를 다스리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바른 것을 향해, 예절을 향해, 옳은 것을 향해 나가는 것이 자신을 바르게 세우는 길인 것이다. 자기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넘어지고 만다. 자기를 깊이 뿌리박지 않으면 자주 넘어지고 만다. 자신을 세우는 일과 자신을 굳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를 이기는 길이다. 공자의 제자 안연은 스승인 공자의 말씀을 듣고서 다짐을 하였다. “제가 비록 부족함 몸이오나 이 말씀을 명심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결심을 한 것이다.
10대 청소년들도 공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안연처럼 비록 부족하지만 내가 꼭 실천해야 할 것이기에 명심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결의를 다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