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의 나라 대통령 얘기이지만 부러움을 느끼게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미국 전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하여 억류중인 자국민 여기자 2명을 인솔하여 고국으로 돌아간 것을 본 것 때문이다. 비록 전임 대통령이지만 클린턴을 비롯한 지미 카터는 외교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정식 외교채널을 통해 해결하기 난망한 일에 대해서는 특사 형태로 파견돼 막후협상을 통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하는 일은 그들의 몫이 됐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현 임기 때보다는 퇴임 후에 더 인기가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북한 소식통들은 클린턴이 미국을 대표해 억류된 여기자들이 북한 영토를 침범하고 적대적 행위를 한 것에 대하여 사과를 했고, 이에 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별사면 하여 떠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 모양이다. 하지만 미국 고위 당국자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을 했다. 경위야 어째든 남의 나라 일이지만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 외교적 성과이기에 남한 노동자 한 명이 북한에 억류되어 생사 파악도 안 되는 이 시점에 부러움 마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을 보면서 한 가지 머리를 퍼뜩 스치는 옛 일이 생각났다. 필자가 태어나기 전에 생긴 일이었지만 푸에블로 호라는 미국 정보함 말이다. 나이가 50을 넘어선 분들은 알겠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해 본다. 1968년 1월 23일 북한 동해 원산항 앞바다에서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피랍된다. 아시다시피 이 시기는 남․북한, 미국 모두 알게 모르게 간첩을 남파하고, 자료를 수집했던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1․21사태, 실미도 684부대 사태 등은 이런 것을 웅변하는 것이다. 하여튼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정보탐지를 위해 보낸 최신예 함정과 함께 80여명의 군인들이 피랍되자 이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중국, 소련, 유엔기구 등을 통해서 다각적인 노력을 하지만 무위로 끝나고 만다.
끝내 미국과 북한은 판문점에서 비밀 막후협상을 벌이는데 그 과정과결과가 아주 재미있다. 세계 최강 미국이 이른바 3등 국가로 치부하는 북한(이때만 해도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았음)과 대등하게 앉아 협상을 벌이는 것에 적잖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수많은 목숨이 달린 터라 줄다리기가 한창 진행됐다. 그런 끝에 미국의 외교력은 기막힌 결론을 도출한다. 그것은 미국이 북한 영해를 침범한 것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사과문에 서명을 하되, 서명 직전에 그 사과문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부정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서로가 양해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북한은 최강 미국을 상대로 대등한 국가(미국은 북한이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된 사과문에 서명하였다)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은 자국 군인들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송환 받게 되었다. 비록 군사적 손해와 자존심을 구기긴 했지만 말이다.
미 여기자 사건과 푸에블로호 사건이 동일한 범주에 드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기시감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기시감(旣視感)이란 단어를 인터넷으로 조회해 보니 처음 보는 대상을 이전에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고 나온다. 프랑스어로 '이미 본'이라는 뜻인 데자뷰(déjà vu)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는데, 기시감이 드는 원인으로는 인간이 정보를 뇌에 저장할 때에 원래 정보보다 간략화 하여 저장하기 때문에, 두 가지 정보가 서로 다르더라도 간략화 하여 같아진다면 같은 정보라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여튼 외교라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교섭을 통해 자국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를 뜻하는데, 이런 것은 비단 외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요즘 매일 뉴스에 나오는 쌍용차 사태나 교사 시국선언 서명자 징계,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로 인한 극한대립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국가 간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사례들도 서로간의 막후협상과 기지를 통해 윈윈(win-win)을 이끌어낸 아름다운 사례가 있기에 더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한다면 지금처럼 준전시를 방불케 하는 그런 증오의 시대는 한발 더 멀어지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