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생긴 일

2009.08.05 17:55:00

올해 2월에 졸업하여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제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석은 중학교 3학년때에 전교학생회장 겸 학급회장을 지냈었다. 갑자기 무슨일이가 싶어 잠시 긴장하기도 했지만, 일상적인 인사를 나눈후 '선생님, 저희들 모이기로 했는데, 시간 되세요?'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본 결과 학교에 출근하는 일 말고는 별다른일이 없어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약속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다음날 또 전화가 걸려왔다. 야구장에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수주 전에 몇몇 아이들과 야구장에 가기로 했었는데, 세미나 참석관계로 취소한 적이 있었다. 취소 다음주에 가기로 다시 약속을 잡았지만, 공교롭게도 그날은 비가 내려서 또 취소하고 말았었다. 그때는 다음에 장마가 끝나면 함께 가기로 했었는데, 이제서야 연락이 온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거의 잊고 지내고 있었다. 지난해의 우리반 아이들이 많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간맞춰 나가겠노라고 했다.

당일은 최근들어 무더위가 더욱더 기승을 부렸다. 그늘아래 들어가 있어도 저절로 땀이 흐르던 날이었다. 그래도 약속시간 30분전에 야구장 앞에 도착을 했다. 아이들은 아직도 도착을 안했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도착하려니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경기시작 10분전이 되어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경기시작 5분전이 되니 초조한 마음에 전화기를 열었다. 그런데 그때 전화벨이 울리는 것이 아닌가.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선생님, 지금 어디계세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야구장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는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지금 매표소 앞인데, 너희들은 어딘데...' '어, 우리 지금 다 야구장에 들어와 있는데, 선생님이 안오셔서 전화 했어요.' 

어이가 없었다. 야구장이 어디 손바닥 만한 공간인가. 2-3만명이 입장하는 곳인데,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야구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었던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아참, 그랬었지요, 저희들은 같이와서 들어왔는데... 선생님 죄송해요. 지금 빨리 들어오세요. 저희들 105블럭에 앉아서 선생님 자리 맡아 놨어요.' 아이들이 오면 같이 표를 살 요량으로 표도 구입하지 않고 있었다. 전화통화하는 사이에 경기는 이미 시작된 듯 야구장 안에서는 함성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길게 줄을 서서 입장권 구입하는데만 또 10분이 흘렀다. 그런데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하늘을 보니 소나기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얼른 비를 피하고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가그친 것은 그로부터 거의 30분이 지난 후였다. 물론 그사이에 경기도 중단이 되었다. 겨우 아이들을 찾아서 자리에 앉았을때는 습도가 높아서 더욱더 무더위를 느낄 때 쯤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었다. 늦게 들어왔지만 1회초 원아웃부터 경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관람하다보니, 어느새 시장기가 돌았다. 아이들은 말이 없다. 그냥 관람하면서 함성만 지르고 있다. 나는 배가 고파 죽겠는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패스트푸드점으로 갔다. 햄버거를 아이들 숫자에 플러스 한개 해서 샀다. 자리로 돌아왔더니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러지 않아도 배가 고파 죽겠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있었다는 것이다. 먹을 것을 사먹으면 되지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했더니, 아이들은 그날 오전에 만났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야구장으로 왔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낮에 학교에 계시다고 해서 자기들만 일찍 만났다는 것이다.

일찍 만난것과 배고픔을 참는 것이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아 그게, 이미 돈을 다 써버렸어요. 입장권 살돈과 버스카드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그냥 참아야지요.' 아 그랬구나. 내가 나가서 햄버거를 사오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순식간에 굶주림에 시달릴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료수를 추가로 사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느새 햄버거는 종적을 감추고 빈 종이껍질만 남아 있었다. 그렇게 굶주림을 해소하고 경기를 관람하였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 비로인해 거의 다섯시간을 야구장에서 보낸 아이들은 패잔병같이 지쳐있었다. 저녁도 햄버거 하나로 때웠으니, 얼마나 힘들고 지치겠는가. 거기에 무더위까지... 각자 흩어져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내 옆에 앉은 녀석은 고등학교 진학해서 단 1개월만에 학교를 때려치운 녀석이었다. 단순히 학교에서 머리단속을 심하게 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검정고시를 볼 예정인데, 이번학기에는 자격이 없어 보지 못했다고 했다.

'선생님? 아까 햄버거 너무 고마웠어요. 정말 배고플때 선생님이 사주신 햄버거가 꿀맛같았어요.' '뭘 그걸 가지고 그러니. 더 좋은 것을 먹었어야 하는데, 그것밖에 없더라. 김밥파는 곳도 없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선생님 그런데, 저희들 오전에 만나서 영화보고 PC방에 가서 돈 다 썼어요. 원래는 선생님 야구장 표도 사드리고, 김밥도 사드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돈을 다써서 그냥 들어갔어요.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알아서 들어오실 것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경기가 시작될려고 하는데도 안오셔서 전화 드렸던 거예요.' 그녀석이 주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날 있었던 사실을 모두 털어 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미안해서 그냥 굶고 있었던 거예요.'

그랬었구나,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나중의 결과가 달라졌던 것이었다. 그래도 제자들이 예전의 선생님을 찾아서 함께 야구관람 가자고 하는 것이 어딘가. 고마울 뿐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행동을 제대로 자제하지 못하지만 몇년만 지나면 훌쩍 자라서 어른이 될 것이다. 그때가면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될 것이다.역시 교사는 아이들이 옆에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아이들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이창희 서울상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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