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간지에 집단사고(Groupthink)에 대한 칼럼이 실렸다. 집단사고란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 없이 한 목소리에 끌려가다 무모한 실수를 저지르는 현상을 일컫는다고 했다. 그만큼 모두가 ‘예’할 때 ‘아니오’ 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란다. 칼럼니스트는 몇 가지 역사적 사례를 들어 집단사고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었다.
나는 종종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교육관련 토론을 벌이거나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볼 때 문제의 핵심은 보지 못하고 진실의 주변을 빙빙 돌며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는 듯한 인상을 받곤 하는 것이다. 특히 공교육의 부실을 논하는 자리에서 그렇다.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에 불과한지를 금방 알게 된다. 토론자 대부분이 본질을 외면하고 혹은 모르고 모두 집단사고의 최면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주고받는 대화가 그만큼 공허하고 근본적 해결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공교육은 대한민국 자라나는 세대의 거의 100%가 받고 있는 교육의 현장이다. 이 교육의 현장을 고액 연봉을 받는 일부 학원 강사들의 교육 행태와 1:1로 비교하여 공교육을 꼬집는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영하는 무책임한 방송이 한 사례가 될 것이다.
왜 공영방송까지도 이렇게 앞 다퉈서 온 나라를 점수 따기 경쟁, 사교육 열풍 속으로 몰고 가는지 그 제작진들의 양식이 의심스러웠다. 최고 연봉을 받는 좀 특별한 사교육 강사들을 굳이 취재 비교하려면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특수학교와 비교를 해야지 왜 대한민국 보편적인 인문계 고교와 그런 강사들을 비교해서 전 국민들의 의식을 혼미하게 만들어 놓느냐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우리 공교육은 아주 건실하고 최선을 다 하여 그 역할과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낙천주의자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 염세주의자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극명하게 다르듯이 공교육을 보는 관점도 크게 다를 수 있다. 나는 아주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우리 공교육을 보고 싶다.
솔직히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교육 당국의 무책임과 일선교사들의 무능과 직무태만이라기 보다는 공교육이라는 엄청나게 큰 덩치에 상당부분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 종종 허점이 노출되어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것이다.
자율학습 보충수업을 모두 없애고 야간 자율학습을 모두 없애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학부모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맡기고 마음 편히 생업에 종사하는 측면도 있다. 또 학생들의 잠재능력을 끄집어내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학생들을 하루 종일 학교에서 지도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사교육으로 달려가거나 거리를 활보하며 시간을 탕진할 수도 있다.
또 공교육에서 인성교육과 특기적성교육이 안되고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인성교육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 있고 친구 간에 신의를 지키는 것이 다 인성교육의 영역이다. 교통법규를 지키고 인터넷 예절을 지키고 어른 공경하는 것이 다 인성 교육과 연관이 있다. 학교라고 하는 울타리 속엔 그런 인성교육의 요소가 기본으로 다 깔려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런 것은 학교생활의 기본 골격이다. 선후배관계, 사제관계 속에 또 각 과목을 이수하는 중에 음으로 양으로 그런 인성교육은 아주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배어드는 것이다. 학교의 각종 행사를 통하여 사회 속에서 지켜야 할 도리와 기본예절 도덕이 자연스럽게 학생들 인격의 틀 속에 내면화되는 것이다.
오로지 국어, 영어, 수학만 중시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편견이다. 교과서를 비롯한 국영수의 교과 내용은 거의 인성교육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덕성, 진리와 정의, 자연보호와 봉사활동 등 학생들의 인성을 길러줄 내용으로 가득한 것이다.
특기적성 교육이란 무엇인가? 타고난 개개인의 특기와 소질을 계발시키는 교육을 말한다. 한번 예를 들어보자. 요리, 댄스, 무도, 컴퓨터, 동양화, 서양화, 서예, 축구, 농구, 마술, 도자기, 연극, 영화, 원예, 수영, 등산, 문학, 애완동물 기르기, 자연보호활동……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 특기적성 분야이다.
이것을 다 학교에서 교육 시켜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방법상으로도 불가능하다. 학교의 많은 활동 속에서 그 개개인의 재주가 스스로 발현되기도 하고 교사에 의해 발견되기도 하지만 전체 학생의 특기를 모두 발굴하고 신장시키기엔 역부족이다.
공교육에서 다 할 수 없는 것을 사교육이 보충한다면 바람직한 상호보완적인 체제가 될 것이다. 한 예로,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 무도에 뛰어난 소질을 갖춘 학생이 있었다. 학교의 체육선생님도 그에게 검도, 합기도, 태권도를 모두 가르칠 수는 없었다. 그 아이는 검도장, 합기도, 태권도장을 다니며 무도를 익혀 각 분야 유단자가 되었다. 그리고 모 대학 경호학과에 입학했다.
재능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도 발굴 되고 연마 된다. 사교육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사교육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공교육의 영역을 침범하는데 있다. 침범이란 말이 어폐가 있을지 모른다.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있게 마련이니까. 소수 정례 반을 만들어 우수한 학생만 뽑아 모든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다.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은 절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선의의 경쟁의 장을 마련해 주고 공정한 평가를 하여 스스로 발전해 갈 기회를 제공한다. 학사일정을 짜고 교육과정을 편성하여 학생들이 공평하게 소질을 찾아 목적을 향해 갈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특수지역의 기업형 사교육 관행을 1:1로 공교육과 비교하여 공교육의 붕괴, 공교육의 부실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언론의 행태는 거의 추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우연히 영문으로 출판 된 톨스토이의 명상록을 읽다가 한 구절에 눈이 멎은 일이 있다.
“Thinking yourself better than others is stupid and not morally good. Thinking your family is better than others is even more stupid. Thinking your nation is better than the rest is the worst idea you can think up. However, some don`t think of this as bad, and consider pride a great virtue.” -Leo Tolstoy
“남들보다 내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고 비도덕적이야. 남의 가족보다 내 가족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건 더 어리석지. 자기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고? 그건 최악이야. 그런데 어떤 이는 이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교만을 미덕으로 생각한단 말이야.“
-필자 역
불과 100여 년 전의 한 성현의 이 말씀이 우리 사회에선 이미 쓸모없는 궤변이 된 것인지 모른다. 세상이 점점 사악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남을 밟고 일어서는 교육에 전 국민이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언제쯤 진정한 교육이 구현되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