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는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비보(裨補)’라 불리는 전통적 경관 보완론이 있다. 비보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돕는다’ 또는 ‘보완한다’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비보라는 말 앞에 ‘풍수’를 붙여 ‘풍수비보’라고 했다. 멀리는 우리의 수도인 한양 광화문 앞의 물의 상징인 해태상과 가로 형태의 숭례문 현판이 불 모양인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잠재워 횡액을 막으려 했던 것이 있다.
이러한 풍수비보는 우리 여러지역에도 존재하고 있는데 가족 나들이 등을 하다가 눈여겨 본다면 우리 조상의 고유한 풍습과 함께 자연관을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충남 금산군 금성면 상마수의 소나무숲
이 소나무숲은 100여년 전에 이 마을에 살던 백낙헌이라는 사람이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안산 조성과 함께[ 횡액을 막기 위하여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이 숲은 6·25전쟁 당시 경찰 별동대가 땔감으로 베어 가려다 ‘나무를 건드리면 동네가 망한다’는 주민들의 결사반대에 부닥쳐 살아 남았고, 얼마 전 산림청과 금산군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여 “상마수 소나무 삼림욕장”이라는 것을 조성하여 가꾸고 있는 실정이다.
2. 충남 금산군 남일면 황풍리 두꺼비상
이 두꺼비상은 일제시대인 1933년에 마을 앞을 흐르는 봉황천에 다리를 놓았는데, 그 다리 모양이 지네라서 황풍마을 모양이 제비집터 모양인지라 이를 노려서 마을에 횡액이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하여 다리가 보이는 마을 들머리에 두꺼비 두 마리 상을 만들자 횡액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3. 전북 남원시 광한루
광한루는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 다시 지은 것으로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 이 곳에도 풍수와 관련된 것들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남원과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견두산(개머리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들개들이 울어서 주민들이 불안해하자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호랑이 석상을 광한루에 배치하여 견두산 방향을 쳐다보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풍수는 어찌 보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다소 미신적인 요소와 함께 지나친 발복 사상으로 인하여 부정적인 모습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풍수로 인한 산송(山訟, 묘지를 쓴 일로 생기는 訟事) 이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1천년을 넘게 우리의 삶을 자연경관과 함께 생각하면서 발전된 하나의 상징적 의미로써 이어져온 전통적인 사상이자 개념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예전과 달리 자연과 벗하여 살기 보다는 개발하고 훼손하는 현재 같은 잘못된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좋은 사상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