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빠른 변화에 순응할 뿐 사람들의 속마음은 느림을 그리워한다. 옛길은 여유를 누리며 느림을 실천하기에 좋다. 예전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며 천천히 걸으면 심신의 피로가 저절로 풀린다.
산 깊고, 물 맑고, 경치가 수려한 괴산군 칠성면에 그런 옛길이 있다. 장을 오가는 사람들이 생활용품들을 짊어지고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지나던 산막이 옛길이 바로 그곳이이다. 괴산읍내에서 연풍방향으로 가다 갈읍교차로에서 칠성면소재지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칠성초등학교와 수전교를 지나 외사리로 가면 산막이 옛길 이정표를 만난다.
괴산군이 8억여 원의 사업비를 들여 조성한 산막이 옛길은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사은리 산막이 마을까지 2.3㎞ 구간이다. 산과 물로 막힌 길이지만 옛길을 걸어보면 농촌이나 산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이 느껴져 공해로 찌든 도시인들이 편히 쉬며 재충전할 수 있는 쉼터역할을 한다.
외사리 마을을 지나면 숲에 빼곡히 들어서있는 소나무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물가의 옛길은 나무데크 등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며 탐방객의 안전과 편의위주로 만들어졌다. 쉼터에서 솔 향을 맡으며 그네, 그물침대, 출렁다리도 즐길 수 있다.
옛길 전체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져 삼림욕하기에 좋다. 천혜의 비경이 아름아름 알려지고 있는 갈은구곡이 가까이에 있고, 달천강의 물줄기를 막으며 경치가 아름답던 연화구곡을 물속에 담근 괴산댐을 끼고 돌아 경치가 아름답다. 괴산댐은 우리 기술로 만든 첫 번째 댐이고, 나이 먹은 사람들은 1957년 댐 준공식에 참석했던 이승만 대통령을 기억한다.
고인돌 형태의 바위들과 주변에 돌무지가 있는 고인돌쉼터, 야생동물들이 지나다니며 목을 축이던 오솔길 옆 노루샘, 괴산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정자모양의 나무데크 전망대, 다래숲 동굴 등 명소의 유래를 담은 나무 표지판이 정겹다. 중간에서 만나는 약수터는 나무에서 아이들 오줌발같이 물이 쏟아져 걸음을 멈추고 목을 축이게 한다. 깨끗한 계곡물에 나무향이 배어나오도록 느릅나무에 구멍을 뚫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나무가 아파하는 모습이 어긋나는 장면이다.
맑고 신선한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산막이 옛길 끝에 있는 수월정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이 을사사화로 유배되어 거처하던 연하동 적소가 댐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195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히 걸으며 한가하게 보낼 수 있는 산막이 옛길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었나 보다. 내가 찾았던 8월 29일 오후에는 충북 곳곳에 숨겨진 이웃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청주kbs 충청스페셜의 이병철, 이나영 리포터가 산막이 옛길을 취재 중이었다.
많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다. 산막이 옛길 주변은 동식물의 보고다. 그래서 조용히 산책하고, 조용히 사색하고, 조용히 다녀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곳에서 산막이 옛길 지킴이를 자청하고 나선 노진규 옹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서울에서 생활하다 늘그막에 고향에 정착했다는 노 옹은 이곳의 역사와 연화구곡에 대한 시구들을 모두 알고 있을 만큼 박식하고 주관이 뚜렷하다.
군대산ㆍ비학산ㆍ군자산의 연관관계, 구진나루에 얽힌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풀어놓는다. 멀리 보이는 산모롱이 구진나루의 진은 나루 진(津)이 아니라 나아갈 진(進)으로 군대산과 연관이 있단다. 또 이곳에 반한 우암 송시열이 9번이나 다녀갔지만 장래에 물이 찰 지형이라 이웃의 화양동에 정착했다는 얘기도 전해준다.
교육에 관한 얘기도 막힘이 없다. 학원 한번 보내지 않은 딸이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단다. 옛길 주변이 대부분 노 씨들의 산이지만 물질보다는 정신이 제대로 박히게 교육하는 게 먼저여야 한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미리 전화하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주겠다는 노 옹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찾아가 막걸리 한잔 대접하며 산막이 옛길과 괴산에 관한 나머지 얘기를 들으려고 한다.
[교통안내]
1. 증평IC - 괴산(25분) - 칠성소재지(10분) - 괴산댐, 칠성면 외사리(5분)
2. 괴산IC. 연풍IC - 칠성소재지(25분) - 괴산댐, 칠성면 외사리(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