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까? 아니면 공부를 할까? 그것이 문제로다
지난 16일(수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아이들에게 예치금 일자(12.14∼16)를 다시 상기시켜 주려는 의도에서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확인결과, 아이들 대부분이 예치금을 납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락이 되지 않는 일부 아이들에게는 ‘기간 내 꼭 예치금을 납부하라’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등록 여부를 확인하고 난 뒤,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아이들 대부분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으며 일부 아이들만이 자격증 공부와 대학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용돈과 등록금을 벌 요량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 모두에게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라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퇴근 무렵,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일부 아이들이 비번을 이용해 학교를 찾아왔다. 사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왠지 낯설어 보였지만 성숙미가 묻어나왔다. 반가움에 악수를 하고 난 뒤, 아이들을 데리고 휴게실로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들은 아르바이트하면서 느낀 점과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학창시절 공부하기 싫다고 늘 투정을 부리곤 했던 한 여학생은 지금 하는 일이 힘든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고충을 먼저 이야기하였다.
“선생님, 공부보다 쉬운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아이는 열심히 일한 만큼 보수가 너무 적다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공부만 하고 육체적인 노동에 길들여지지 않은 아이들이기에 그 힘듦이 더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아이들의 생각이 대견스러웠다. 아이들은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졸업을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날 밤. 한 아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아이는 수시모집 1차에 합격하여 입시에 대한 부담을 일찌감치 떨쳐버린 상태였다. 전화에서 그 아이는 간단한 안부내용과 더불어 전화를 건 목적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몇 번이고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했으나 헛수고를 했다며 담임인 내게 일자리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건강하시죠? 죄송하지만 일자리 좀 구해 주세요. 아무 일이나 관계없습니다.”
통화를 끝낸 뒤, 녀석의 사정이 딱해 평소 친분이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일자리 구하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특히 졸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뜻 일자리를 주려고 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대학 방학과 더불어 입시가 끝난 중․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로 일자리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설령 일자리를 구했다고 할지라도 고작 해야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순직 일(배달, 서빙, 판매 등)뿐이다. 또한, 아이들 대부분이 받는 시급 또한 노동부가 고시한 최저 임금(시급 : 4,000원, 일급 : 32,000원, 월급 주40시간제 : 836,000원, 주44시간제 : 904,000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간신히 피자집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녀석을 소개해 주었다. 피자 배달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녀석이 그 일을 잘해낼 지가 관건이었다. 아무튼, 녀석이 피자 배달을 시작한 지일주일이 지났다.
문득 녀석의 근황이 궁금하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근무를 잘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녀석이 이틀 일하고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에서, 녀석은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공부보다 쉬운 것은 없다며 남은 방학동안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하였다.
내심 녀석이 어려운 일을 해봄으로써 돈 버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느껴보기를 바랬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녀석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