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frame) 벗어나야 정책은 성공한다

2009.12.29 21:07:00

미국 캘리포니아대 인지언어학과의 조지 레이코프(George P. Lakoff) 교수가 쓴 '코끼리는 생각 하지마'란 책에 따르면 정치는 프레임 싸움이라고 한다. 미국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코끼리(공화당 상징)'를 생각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순간 국민들은 오히려 코끼리를 떠올리며 공화당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즉, 실재하는 현실을 이해하게 해주거나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을 창조하도록 해주는 심적 구조다. 일종을 이데올로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느닷없이 웬 프레임 얘기를 하냐면 현재 돌아가는 사회 현실을 보면서 이런 것이 그대로 구현되고 있지 않나 해서다. 예를 들면, 대통령과 여당은 이른바 4대강 사업이 대운하로 가는 이전단계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반면에 야당과 시민단체는 보의 높이나 여러 정황을 들이대면서 대운하로 가는 기본단계라 하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과 여당이 제 아무리 대운하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해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데 있다. 왜냐하면 이른바 '세종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라는 것을 대통령 공약,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으로도 확정해 놓고도 이후에 손바닥 뒤집듯 하였으니 믿음을 쉽게 저버린 것에 대한 선행학습을 경험한 국민들이 지금 주장하는 4대강 사업 또한 믿지 않기 때문이리라. 곧 4대강 사업이 대운하가 아니라고 강변할수록 국민들은 더욱더 그것이 대운하일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곧 대운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다.

필자는 대운하가 뭔지 4대강 사업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 토목 전문가도 아니기에 그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함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다만 자연은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것이 순리(順理)라는 것은 알고 있다. 과거 치수(治水)라는 것도 물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거나 막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음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이런 것만 그런 것이 아니다.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교육정책 중에서 교원평가제, 학교평가제, 외국어고 문제 등이 그렇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이러저러한 정책을 펼치며 사교육비 경감과 공교육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국민은 이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정책들이 사교육을 더 강화시킬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프레임 싸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상대와 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말을 하건, 설득을 하건 간에 믿음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믿음은 말로만 해서는 효과가 없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하고 대화해야 한다.
둘째, 정책에 대하여 공유할 수 있고, 명확하면서도 도덕적이고 보편적인 전망을 상대편에 제시해야 한다. 최근 대통령 측근의 사람들이 내놓는 설익은 정책들이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이런 것이 부족해서다. 아무리 착안사항이더라도 사회에 큰 변혁을 일으킬 정책이라면 어느 정도 가다듬고 의견수렴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고 본다.

셋째, 주장을 하는 사안에 대하여 가치관, 소망, 사명 등을 담은 프레임을 구성하되, 맞은편에 대해서 섣부른 공격을 하지 않아야 한다. 공방이 있는 순간 맞은편 생각이 또 다른 공론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전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부터 참모들까지 반대편 세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서 그들의 실체를 더 견고하게 한 부정적 외부효과를 낳았다.

넷째, 나 이외 다른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알고 이해하고 있다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다. 사실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지금 세상은 한 사람의 생각과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인지체계를 갖추지 않은 존재이다. 그런 특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소망적 사고'가 있는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 'UFO 함정'이 있다. UFO에 관한 것만 믿고 보게 되어 반대 사례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보정하는 것이 바로 언어요, 대화다. 소통이라는 것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정책입안자 또한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모든 것의 전문가는 아니다. 나머지 부족한 분야를 채워줄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소통과 대화이다. 불통은 곧 정책실패로 이어질 것이다.
백장현 교육행정공무원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