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와 ‘우거지’는 차이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시래기’
배춧잎이나 무청을 말린 것.
- 시래기를 볶아 대보름에 먹는다.
- 시래기를 말리기 위해 겨우내 벽에 걸어놓아야 한다.
‘우거지’
푸성귀를 다듬을 때에 골라 놓은 겉대.
- 김장이 끝나면 우거지를 정리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시래기’는 일반적으로 무의 윗부분 즉 줄기와 잎이 있는 부분만을 따로 모아서 말린 것을 말한다. 한자어로 ‘청경(靑莖)’이라 한다. 새끼 따위로 엮어 말려서 보관하다가 볶거나 국을 끓이는 데 쓴다.
‘우거지’는 야채의 겉 부분 또는 윗부분을 걷어낸 것을 말한다. ‘우거지’의 어원도 ‘웃걷이’이다. ‘웃’은 ‘위(上)’ 또는 ‘겉(外表)’을 나타내므로 문자 그대로 배추와 같은 야채의 윗부분을 걷어낸 것을 이른다. 간단히 말하면, ‘시래기’는 무에서 ‘우거지’는 배추에서 나온 것을 이른다. 김장철이 되면 배춧잎 겉대와 무청이 주위에 지천으로 널린다. 이들은 언뜻 보면 버려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초겨울 햇볕에 바짝 말린 ‘시래기’와 ‘우거지’는 겉모습과 달리 우리 몸에 좋은 영양분이 듬뿍 들어있다. ‘시래기’는 먹을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엔 중요한 음식이었다. 해서 요리법도 다양하다. ‘시래기나물(시래기를 볶아 무친 것), 시래기떡(시래기를 쌀가루에 섞어 찐 떡), 시래기지지미(시래기에 콩나물, 무를 섞어 만든 지지미), 시래기찌개(시래기를 넣어 끊인 찌개), 시래깃국(시래기를 넣어 쑨 죽)’ 등이 있다.
이 중에 ‘시래기’를 넣고 멀겋게 끓인 죽을 ‘갱죽’이라고 했다. 가난한 시절에 식구는 많고 쌀은 떨어지면 어머니는 지혜를 발휘한다. ‘갱죽’을 끓이는 것이다. 시래기를 듬뿍 넣고, 쌀은 두 사람 분으로 국을 끓이면 다섯 식구의 식량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갱죽’이다.
‘시래기’는 말려야 하지만, ‘우거지’는 배추를 다듬고 바로 만들어진다. 사실 지금은 배추 등을 다듬어서 겉대는 버리고 있다. 하지만 옛날 물자가 귀할 때는 버릴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거지’를 이용해서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우거지김치, 우거짓국, 우거지 찌개, 우거지 해장국, 우거지 숙주, 우거지 토장국 등.
옛집에는 겨울이면 으레 ‘시래기’가 매달렸다. 집집마다 줄줄이 ‘시래기’를 엮어 바람과 햇살에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염상섭의 ‘만세전’에도 ‘일 년 열두 달 죽도록 농사를 지어야 반년짝은 시래기로 목숨을 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까…’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시래기’는 궁핍과 배고픔으로부터 가족을 구해 주었던 음식이다.
요즘에는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먹을거리도 많아져서, 무청이나 배추의 겉잎은 바로 버린다. 김장도 직접 담가 먹지 않는 가정이 늘다보니 아예 ‘시래기’와 ‘우거지’를 볼 수가 없다.
최근에는 건강과 관련된 음식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시래기’가 주목받고 있다.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가 골고루 들어가 있어 겨울철 보양식을 만드는데 제격이라고 한다. 특히 ‘시래기’가 식이섬유소가 많아서 대장질환 예방과 콜레스테롤 흡수를 낮추는데 효과적인 식품이라고 한다. ‘시래기’의 원료인 무청에는 칼슘과 철분도 많이 들어있어서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라 하니 이제는 귀한 음식이 된다. 가난과 빈곤의 상징인 음식이 오늘날의 풍성한 식탁에 오른다니 아이러니한 세상사이다.
어른에게는 가난한 시절의 눈물겨운 추억이 있는 ‘시래기’. 쌀을 한 줌이라도 아껴보자는 심산으로 부엌에서 어머니는 갱죽을 끓였다. 그야말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국물로 배라도 속여 보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지혜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겨울에는 갱죽이 최고.”라며 자존심을 내세운다. 실제로 춥고 배고플 때 우거지나 시래깃국에 밥 한 그릇을 해치우면 힘이 솟는다. 그때의 추억이 담긴 안도현의 ‘갱죽’이라는 시 한편을 소개한다.
갱죽
하늘에 걸린 쇠기러기
벽에는 엮인 시래기
시래기 묻은
햇볕을 데쳐
처마 낮은 집에서
갱죽을 쑨다
밥알보다 나물이
많아서 슬픈 죽
훌쩍이며 떠먹는
밥상 모서리
쇠기러기 그림자가
간을 치고 간다 <안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