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추위에 떨지 않는다

2010.02.03 12:47:00

겨울이라 당연히 춥다지만 올해는 유난히 추운 날씨였다. 바람이 추위를 더욱 매섭게 몰아 부치고 있다. 올겨울 내내 북반구를 꽁꽁 얼어붙게 했던 혹한과 폭설이 지난 주말 다시 맹위를 떨쳤다는 보도다.

이번 동장군은 아무래도 훈련을 단단히 받은 듯하다. 입춘을 앞에 두고도 좀처럼 물러날 기세가 없다. 바람도 얼음처럼 차다. 투명한 햇살도 날이 저물자 일찍이 귀가를 서두른다.

겨울은 눈이라도 올라치면 모두가 아득한 명상으로 잠긴다. 나무는 더욱 침묵하고 하늘은 잿빛이 짙어진다. 그 위로 날아오르는 새는 화선지 위에 한 방울의 먹물처럼 번지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저 멀리 깊은 사념에 잠긴 나무들이 저마다 큰 키를 자랑하고 있다. 빈 들판에서 가지 끝을 차가운 바람에 의지하고 혼자 서 있다. 하늘을 향해 기원이라도 하듯 모두가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다.

겨울이 추웠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힘들었다. 정치적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고, 경제 한파도 여전했다. 베이붐 세대라고 불리는 중년들은 이제 사회의 문에서 은퇴하는 길목으로 몰리고 있다. 기업도 구조 조정을 핑계로 근로자를 퇴직시키고 있다. 모진 추위보다 더 추운 날이 계속되었다. 급기야 생활고를 못 견디고 자살했다는 애기 엄마의 이야기가 뉴스를 탔다. 대기업 부사장의 자살도 우리의 귀를 의심하게 했지만 사실이었다.

미동도 없는 나무. 나무는 죽은 것일까. 아니다. 나무는 생명을 잠재우고 있다. 추위를 이겨내며 안으로는 생명을 키우고 있다. 흠뻑 내린 눈을 뿌리로 빨아들이며 몸 안에 수분을 저장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나무는 겨울잠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새봄을 위해 쉼 없이 생명을 움직이고 있다. 가슴마저 다 비우고 마른 허리, 야윈 어깨로 더욱 수척한 몸뚱어리 하나 이렇게 곧추세우고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봄이 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만큼 우리에게 겸허함을 가르치는 것도 없다. 그 어떤 철인이 남긴 삶의 철학도 겨울나무가 주는 평범한 이치에 비하면 사치스러운 허영에 불과하다. 헐벗은 몸으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 있는 겨울나무의 정경을 보면 머리가 숙여진다. 눈보라와 혹한의 시련을 인고하고 감내하면서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삶의 의지가 새삼 강해진다.

맨몸으로 서 있는 나무는 텅 빈 충만함으로 나를 일깨운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청빈한 덕성이 나를 가르친다. 오늘날처럼 모든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겨울나무는 오히려 비어있음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나무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를 향한 생명으로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 인간만이 타인을 의식하고 타인과 비교한다. 가진 것을 비교하고 지위를 비교하고 학벌을 비교한다. 이 모두가 소용없는 짓인 줄 알면서 마음에 담고 있다. 소유욕도 마찬가지다. 가졌다는 것은 영원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스스로 버려야 하는 결별의 운명을 지닌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무는 추위에 떨지 않는다. 나무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생명을 틔우듯, 우리도 흔들리고 흔들려서 더 강해진다. 우리의 삶이란 것도 삶 속에서 싸우고 이 싸움에서 다시 삶을 껴 앉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추위뿐이겠는가. 우리는 두려움에 떨고 때로는 외로움에 흔들려야 한다. 그 아픔으로 인해 수없이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렇다고 슬퍼하지도 말라. 공허한 마음에 가슴 아린 이들이 우리뿐이겠는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어디 우리뿐이겠는가.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려움을 등에 지고 묵묵히 이 길을 걷고 있다.

나무도 그렇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진정한 스승은 밖에 있지 않다. 우리 마음에 있다. 겨울나무에 봄이 오듯 삶은 늘 새롭게 출발한다. 출발 속에 꽃이 핀다. 겨울을 이겨내고 꽃봉오리를 움틔우듯 이 겨울의 끝에서 삶의 희망을 생각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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