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8할은 노스탤지어다

2010.05.24 16:40:00

바람이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미당의 언어다. 꿈이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편운재의 언어다. 그리움이라고 하려다가 너무 감성적인 것 같아 망설였다. 환상이라고 하자니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다. 그래 향수라고 붙였다가 지우고 노스탤지어라고 했다. 그러니 이 말이 얼마나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 독자는 짐작할 것이다.

무엇인가 기다리며 나는 인생을 산다. 그 기다림이 때로는 희망이 되고 때로는 사랑이 되고 우정이 된다. 기다리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이다. 한 때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기다리며 하루 이틀 세월을 보낸 적이 있다. 한 때는 좋은 시를 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다린 적이 있다. 날마다 한 소녀와 만나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긴 사랑의 편지를 보내놓고 며칠간 꼬박 집배원 아저씨가 오기만을 기다린 적도 있다.

군 생활 3년 동안 나는 제대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어서 취직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어서 결혼 날짜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무엇인가 기다리며 사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만큼 우리는 매일 기다리며 산다. 기다리며 사는 것 그것은 희망을 사는 것이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극적인 삶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설렘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내일이 오면 힘차게 희망을 찾아 나서야 한다. 학생은 학교로 힘찬 발걸음을 내 디뎌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으로 힘차게 하루를 열어야 한다. 우리는 매일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산다. 친구와 만날 날을 기다리고 애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오기를 기다린다. 어서 빨리 소풍날이, 운동회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월급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고 어서 빨리 추석이 와서 부모님 뵐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내가 쓴 글이 빨리 잡지에 실리기를 기다리고 내가 그린 그림이 어서 빨리 전시실에 내걸리기를 손꼽아 기디린다.

무엇보다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 어서 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오들오들 떨며 겨울을 지내는 동안 꽃 피고 새 우는 봄은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환상의 계절이다. 그러나 3월이 오고 4월이 다 가도록 우리가 기다리는 봄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바람 불고 비 오고 여전히 추운 날씨가 이어진다. 우리가 기다리던 봄은 5월이나 되어야 잠깐 우리 곁에 왔다가 다시 무더운 날씨로 이어진다.

그렇게 우리의 기다림은 때로는 실망과 허탈감만을 안겨주는 것도 참으로 예사롭다. 막연한 기대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무엇인가 기다리며 산다. 그 기다림은 바로 꿈이요 희망이다. 이 기다림이 없다면 실로 인생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그래 나는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리라 다짐한다. 적극적으로 그 기다림을 살 것이다.

외국의 풍광이 그리우면 훌쩍 그것을 찾아 떠날 것이고 산사의 정적이 그리우면 홀연 집을 떠나 그것을 찾아갈 것이다. 사람이 그리우면 적극적으로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글을 써서 글로 소통하고 모임을 결성하여 대화와 놀이로 소통할 것이다. 운동장을 찾아 젊은이들의 함성 속에 파묻힐 것이고 시장통으로 들어가 저 분주한 생존의 현장에서 삶의 열기를 느낄 것이다. 그리하여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처럼 무지개를 바라보며 여전히 감동에 젖는 삶을 살고싶다.

어느 날 저 평화롭고 고요한 저쪽 세계가 몹시도 그리운 날이 오기를 나는 바란다. 내 인생이 마침내 완성되었다는 흡족한 마음으로 훌쩍 그곳으로 떠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항상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생의 마지막 순간엔 고요한 저쪽 세계가 평화로운 피안의 세계로 아름답게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으로 그 아늑한 세계를 그리워하고 기다린다면 죽음은 또 하나 축복이 될 것이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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