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회상하는 50년 교단일기④

2010.06.14 15:13:00

새 학교 이름을 만들자

1964년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이제 한창 바쁜 모내기철이었다. 이 무렵에는 우리나라 농촌의 80% 이상이 논과 밭에 모두 보리를 심고 심지어는 산과 논둑까지 무엇이든지 먹고 살 것을 심어야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너무나 가난하여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느 곳에나 먹을 수 있는 작물을 심어라"는 국가의 방침에 따라 학교 빈터에 옥수수와 호박을 심고 도로변의 길가에도 호박을 심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가난에 찌들었던지 모를 시기였다.

한 가정의 평균 자녀의 수가 6명이 넘었고, 각 가정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땅의 넓이는 논밭을 합해 보아도 고작해야 900평이 채 안 되는 가난한 고장이었다. 이런 고장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김영화 선생님은 오늘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난생 처음 시작한 직장 생활에서 맡은 사무가 학교 살림을 맡은 경리 사무였다. 평상시에 늘 돈에 관심이 없어서 셈이 그리 밝지 못하던 그였기에 늘 쩔쩔 매는 입장이었다.

더구나 이 곳은 두 마을이 학교 설립을 싸고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학교가 설립이 되어서도 한동안 갈등을 겪었다. 심지어는 감정이 격해져서 아이들의 등교를 막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하였으나, 간신히 더 이상 물의는 없이 견딜 수 있었지만, 학교 일을 하려면 양쪽 부락 유지들이 서로 앙금을 걷어내지 못한 채 가끔씩 충돌을 하곤 해서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더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어떻게 조정을 해볼 요량으로 양쪽 부락의 유지들이 모이면 그런 저런 이야기가 드디어는 학교 설립을 둘러싼 감정의 골 쪽으로 흘러가고 서로 자기들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몇 차례의 회의는 늘 그렇게 다툼으로 끝나고 말았다. 적어도 서너 시간씩이나 걸린 회의는 술 한 잔씩을 마시고 헛소리로 끝나고 마는 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학교에서는 어지간한 일이면 차라리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이 따로 모여서 그 의견을 듣고 학교에서 조율을 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 학교가 내년(1965년)이면 독립교가 되어서 교장이 오고 새로운 학교로 정식 등록을 하게 된다고 학교 등록을 준비하라는 공문이 떨어졌다. 이 학교 설립을 위한 준비로 첫 번째가 학교 이름을 지어야 했다. 지금은 학교가 있는 마을 신호리의 이름을 따서 신호분교이지만 정식 학교 이름을 이렇게 짓는다면 봉룡리에서 그냥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 집 앞에 세운 학교이니 너희들의 자녀만 가르쳐라’고 억지를 주리는 마당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학교의 교직원 이래야 교장, 교감도 없이 몽땅 교사만 7명이 모여서 학교의 이름을 짓기 시작하였다.

두 마을의 이름자에서 따서 모은 것으로 '봉신' '봉호' '신봉' '신용' '용호' '호용'이 있었지만 이것은 어떤 것이라도 서로 자기 부락의 이름이 머리에 가지 않았다고 거부 반응을 할 것이라는 게 모두의 의견이었다. 다음으로 나온 것이 이 곳이 그 옛날 '흥양'현의 터여서 아직까지도 '문안'이라고 부르는 게 이 지역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리는 것이라서 어디서 만나면 “'문안'에 사시는군요”하면 아주 흡족해 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김영화 선생님의 제안으로 '문안'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하지만 이 이름이 좋긴 하지만 학교 이름을 한자로 적을 수가 없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가 되었다. 이 당시만 하여도 한글전용이라는 국가 시책이 발표가 되어서 몇 년이 안 된 시절이었기에 한자로 적을 수 없는 학교 이름이어서는 안 된다는 선배 선생님들의 주장이었다.



한 선배님이 한글 전용 때문에 생긴 전임지에서 일어난 일을 “한글 전용이 되어서 공문이 내려 왔는데, 교사의 전후좌우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는 지시가 있었지 뭐야, 그래서 사진관에 가서 선생님들이 모두 앞, 뒤, 오른쪽 왼쪽으로 앉아서 사진을 찍어서 차례로 붙여서 교육청에 제출했지. 그랬더니 ‘이게 뭐냐?’고 하더라는 것이야. 그래서 공문을 가지고 간 사람이 ‘공문에 그렇게 써있어서 모두 찍었는데요’했더니 온 교육청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구경을 하면서 웃고 떠들기를 ‘이거 현상 수배범들인가? ’ ‘아니야 중매쟁이가 확인하라고 보낸 거지 뭐야’하고들 야단이더라는 것이야. 알고 보니 교사는 선생님들이 아니라 학교 건물, 즉 교실을 말하는 것(校舍)이었는데 사람들의 사진을 보냈으니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야. 그래서 학교 이름도 한자가 없으면 곤란할 거야.”하고 예까지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했다. 

김영화 선생은 아직 어린 마음으로 “한글전용인데 뭐 한자가 없다고 안 될 것은 없지 않겠어요?”하고 주장을 했지만 혼자의 힘으로 뚫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나온 것이 “그럼 옛 이름을 살려서 쓰면 어떻겠느냐? '흥양'이라고 하자”는 의견에 모두 찬성을 하여 주었다. 문안에서 흥양이 되었지만 어쨌든 김영화 선생의 작명은 성공했고, 그렇게 결정을 해서 학교 설립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그게 불과 사흘 안에 모두 끝내야 하다는 것이었다.

학교 개교 때 너무 서로 다툼이 심했기 때문에 학교 이름을 만드는데도, 반드시 두 부락의 대표가 되는 분들의 동의서를 첨부하라는 교육청의 지시 때문에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모두들 논에 나가 모내기를 하는데 각 마을의 유지되는 분들의 도장을 받는 일이 간단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나가서 어느 분이 어느 들판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뿐 아니라, 들판에서 도장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한 마을에서 무슨 소리를 듣게 될는지 또 어떤 의견들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 서로 미루고 도장을 찍어주지 않으려고 하는 어려운 지경이었으니 사흘 동안에 약 30여명의 마을 유지들에게 도장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다른 장에다가 받아서는 안 되고 꼭 한 장에 모두 다 받아 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이 교육청의 주장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다툼이 있는 곳이라서 나중에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알 수 없으므로 이런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가 없었다. 젊은 교사 두 명과 양쪽 마을에 사는 선배선생님 한 분씩이 모여서 이쪽저쪽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도장을 받아 오는데 내일까지 가지고 가야할 서류가 아직도 한쪽 마을을 다 받지 못한 형편이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약 8㎞나 되는 길을 걸어 다니면서 도장을 받다 보니 마지막 봉서 부락에 왔을 때는 이미 밤 12시가 넘어 버렸다. 그러나 오늘 정오까지 가지고 들어가야 할 서류를 더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새벽 같이 일어나서 들판으로 나가면 만날 길이 없는데 어떻게 할 건가 생각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실례합니다”하고 들어서기 전에 온 마을의 개들이 밤중에 나타난 사람들을 보고 온통 합창을 하며 따라오는 바람에 어느 골목에서나 한바탕 실랑이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잠귀 밝은 어른들이 내다보면서 “내 이놈들, 조용히 해. 왜 이렇게 야단들인고”하면서 개들을 달래곤 하셨다. 우린 그런 분들을 만나면 다시 학교 이름을 설명하고 도장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를 계속하면서 마지막 도장을 받고 나니 새벽 두 시 반이었다. 어쩔 수가 없어서 그 마을에 사시는 선생님 댁이 들러서 그곳에서 누웠더니 겨우 두 시간을 잤는데 벌써 밖에서는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고 논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겨우 든 잠을 깨우고 말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얼른 일어나 나서서 자취방으로 달려오다시피 한 우리는 다시 자리에 누울 수도 없어서 아침밥을 끓여 먹고 학교로 나갔다. 다행히 날짜에 맞춰 학교 이름을 등록 할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밤을 새워서 마을을 돌고 잠든 사람들을 깨워서 도장을 받던 괴로움은 학교이름이 되어서 남아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흥양초등학교는 농촌 인구의 감소로 학생 수가 점차 줄어 1993년에는 마지막 문을 닫고 말았으니, 겨우 20년을 이어온 셈이 된다. 그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이름도 이제는 잊혀져 가는 옛 이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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