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졸업한 한 제자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선생님, 1학기 성적 올 A 나왔어요."
그간 연락이 없던 제자의 문자가 나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였다. 사실 지난 일 년 동안, 대학 진학으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기에 내심 제자의 대학생활이 무척 궁금했던 차였다. 문자에서 제자는 이 기쁨을 선생님과 함께 하고 싶다며 오후에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문자 메시지를 읽고 난 뒤, 문득 제자와 지낸 지난 일 년이 떠올려졌다. 등하교 시 늘 책을 보며 다녔기에 선생님뿐만 아니라 전교생 모두가 제자의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알 정도로 유명하였다. 심지어 점심시간 식사를 할 때에도 주위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하는 제자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잦았다. 그래서일까? 제자의 이름 뒤에는 늘 책벌레라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
학창 시절, 제자는 자신이 목표한 대학(서울대)에 합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매월 치른 모의고사 결과에 속상해 많이 울곤 했던 제자의 모습을 보며 담임으로서 안타까워한 적도 여러 번. 그럼에도, 제자는 포기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제자는 2학기 수시모집(지역균형전형)에 지원하여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합격한 날, 제자는 지금까지 관심을 두고 아낌없이 성원해 준 선생님을 찾아가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선생님들 또한 제자의 합격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졸업식 이후, 제자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담임 선생님인 나 또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제자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학교를 방문하겠다는 제자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지금까지 내가 제자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편, 변해 있을 제자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4교시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오자 제자의 가방으로 보이는 낯선 가방 하나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교무실 어딘가에 있을 제자의 모습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교무실 저 멀리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제자였다. 교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제자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온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본 제자의 모습은 대학 생활이 매우 힘들었는지 예전보다 약간 수척해 보였으나 그래도 성숙함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학창시절 발견하지 못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넘쳐났다. 제자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다며 시간 할애를 원했다. 기말고사를 앞둔 터라 혹시 선배의 특강이 기말고사 공부에 방해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아이들 대부분은 선배와의 대화를 원했다. 아이들의 뜻에 따라 제자와 함께 교실로 갔다. 제자는 후배들과 간단한 수인사를 나눈 뒤, '대학생활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내가 이야기를 해줄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평소 알고 싶은 대학생활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강의에서 제자는 대학에 입학하여 수강과목 모두 A 학점을 받은 노하우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대학생활에서 시간 활용의 중요성과 대학 선택 시 고려해야 할 사항 등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하였다.
■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위해서는
- 시간 활용을 잘하라.
- 창의적인 리포트를 작성하라.
- 취업을 위한 스펙을 만들어라.
- 외국어(영어) 공부에 전념하라.
- 봉사동아리에 가입하라.
- 많은 정보를 수집하라.
■ 대학선택 시 고려해야 할 사항
- 대학보다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해라.
- 선택한 학과의 전망과 취업률은 높은가?
- 얼마나 많은 학생이 장학혜택을 받는가?
- 전공과목 교수진의 확보율은 어떻게 되는가?
- 제시한 비전(Vision)을 실천하고 있는가?
제자의 강의가 끝난 뒤, 아이들은 선배와의 대화가 유익했다며 이와 같은 시간을 자주 갖기를 요구했다. 아직 대학 결정을 못해 고민해 오던 한 아이는 선배 때문에 가야 할 대학과 학과를 결정했다며 좋아했다. 아무튼, 제자의 강의는 아무런 목표 없이 생활해 오던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제자는 사법고시를 준비해 사회의 약자를 위해 일하겠다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고등학교의 힘듦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자는 학창 시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며 후배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제자가 떠난 뒤, 제자가 후배들에게 해준 말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해주었다.
"후배들아, 일류대학이 나를 일류로 만드는 것 아니라 내가 대학을 일류로 만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