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들어선다. 단정히 앉은 아이들이 선생님을 쳐다본다. 순간, 왜 이래. 당황하는 느낌을 받는다. 교탁에 책을 내려놓고. 아! 좋은 교실이다. 이런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싶다. 순간적인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담임이 누구냐고 물어 본다. 누구누구입니다. 그래, 그렇지. 그 선생님. 그렇지. 그 선생님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무언 중 대화를 하다가 어느 반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수업이 절로 된다고 말하곤 한다. 없던 생각도 떠올라 마구 쏟아낸다고 이야기 한다.
이처럼 교실의 아름다움은 정다운 교실을 만들어 가고, 정다운 교실은 아름다운 학생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정화된 교실에서는 샘솟는 맑은 수업이 산소처럼 이심전심으로 진행된다. 주고 받는 사설도 마치 연인이 주고받는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수업이 아름답다는 말을 쓰기가 참으로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건만 아름다운 생각으로 아름다운 수업을 만들어 가는 정다운 교실은 학생이나 교사 모두가 겨울철의 포근산 온기를 느끼듯이 서서히 달아 오르는 것 같다.
교실에 들어서도 아직도 학생들은 자고 있고, 뒤에서는 떠드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수업 준비는 아직도 하지 않고, 이제 사물함에서 책을 끄집어 내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한동안 보고 있다가 어느 정도 학생이 제자리를 정돈하면 학생들의 책걸상 밑을 쳐다본다. 쓰레기가 학생 자리 밑에도 교탁 주변에도 널려 있다. 주번을 시켜 교실을 쓸게 한다. 학생들 개개인의 책상 밑에 휴지를 줍게 한다. 그래도 또 다음 시간에 휴지가 많은 반에서는 수행평가 태도 평가 기간을 앞당겨 시행한다. 그리고 벌점을 더 높인다. 학생들의 머리가 길어도 복장이 어지러울 정도일 경우도 수행평가 기간을 조기에 시행한다.
태도면에 점수를 반영할 것을 학생 전체에게 공지한다. 이유없다면 그대로 시행한다. 정다운 교실과 정답지 않은 교실은 내 마음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름다운 교실에서 수업을 하면 더 많은 생각이 솟아난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 반에는 무언가 더 주고 싶은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난다.
정다운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질문을 반갑게 받기보다는 그들이 질문하지 않아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까지 물어서 도와준다. 흩어지는 거리의 낙엽의 오묘한 맛이 교실에 뒹구는 휴지 조각의 내음을 정화시켜 주니, 아름다움 바다같은 교실에서 정다운 수업이 내 마음 속에 자리잡기를 높은 가을 하늘 구름에 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