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하노이 힐튼 포로수용소에서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간 수용됐던 미군 장군 짐 스톡데일(Jim Stockdale)이 있었다. 그는 잘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가운데 어려운 현실을 끝까지 직시해 살아난 반면, 다른 포로들 중 곧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낙관주의자들은 대부분 상심을 못 이겨 죽고 말았다고 한다. 어설픈 낙관주의자는 죽고 냉정한 현실주의자는 살아남았던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거야'라고 대책 없이 낙관한 사람은 처음엔 희망찬 모습을 보이다가 예정된 시간이 지나자 급격히 비관적으로 되었다가 끝내 상심을 못 이겨 쓰러졌다고 한다. 살아남은 포로들은 위기 속에서 내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실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한 사람들이다. 세계적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자신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소개하면서 더 유명해진 일화다.
얼마 전 전 세계 사람들을 경이로움과 함께 환호로 들끓게 했던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매몰되었던 33명의 광부들의 극적인 구조 장면은 위에서 소개한 스톡데일 패러독스와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다. 지하 700여 미터 되는 곳에 매몰된 33명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어려움을 견뎌냈다고 한다. 게다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밖의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그들의 생활모습 등을 교감하였기 때문에 생존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8일이 넘는 기간 동안 숨 막히는 지하 막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보통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뛰어넘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그들이 탄광이 무너지기 전에 그나마 넓고 쉴 수 있으며 산소가 비교적 많은 공간인 현재의 구출장소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도 천우신조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을 살아남게 한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극한의 죽음 앞에서도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면서 버텨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른바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막연히 곧 구출될 것이라고 믿었다가 구조용 캡슐 굴착 작업이 만에 하나 실패한다던가 해서 어설픈 낙관주의에 빠졌더라면 탄광에 매몰되어 포기로 사망하는 비극이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업무분담,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 조성, 작업반장을 중심으로 하는 리더의 리더십 등이 어우러져서 전원 무사생존이라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해 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극적인 장면 이면에는 값싼 광산 유지를 위해 안전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방치한 광산개발업자와 칠레 정부의 직무유기, 구출된 광부들에 대한 무분별한 취재로 인하여 생긴 사생활 침해, 피녜라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제고를 위한 현장 언론플레이 등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무엇보다 사람 목숨이 제일 중요한데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된 다른 지역의 광산노동자들을 위한 안전관리가 이번 구출작전으로 세인의 관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극적인 구출 장면도 감동이었지만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다루는 것이 이번 사건의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