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회상하는 50년 교단일기(18)

2010.10.21 09:59:00

청지기의 아들

“한, 둘, 셋........”
“그래, 그렇게 똑바로 넘기란 말야. 자 다시 한, 둘, 셋, 넷,....”
교실 한 칸에 마련된 탁구대 두 개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마주 붙어서 한 창 신나게 볼을 넘기고 있습니다. 아직 첫 여름의 푸르름이 짙어 가는 계절이지만, 운동을 하는 아이들의 온 몸은 질척하게 땀으로 젖어 있습니다. 등짝에 찰싹 붙은 런닝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반바지를 적셔서 반바지의 뒤쪽에는 젖은 옷이 양쪽 엉덩짝에 달라붙어서 마치 사랑의 표시 하트를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의 땀자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팔을 흔들면서 마치 기계처럼 같은 동작을 되풀이합니다. 상대방에서 쳐 보낸 볼을 받는 순간에 라켓을 쥔 오른 팔이 앞으로 올라가서 얼굴 앞을 지나 왼쪽 귀까지 올라갔다가는 자동으로 뒤로 재껴 오는 볼을 잡기 위한 준비 자세로 갑니다. 마치 로봇과 같이 똑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기를 1000번이니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전라남도에서도 남쪽 바닷가인 보성군 득량면 득량서초등학교는 바닷가에 있는 면 중에서도 산중에 있는 학교입니다. 바다와 이 학교가 있는 고장 사이에는 해발 600여m의 천방산 줄기가 병풍처럼 득량만을 막아서 있고, 북쪽으로는 조상 대대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봉수대가 있는 봉화산이 있어서 이 마을은 산들로 둘러싸인 조그만 분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 조그만 분지 한 가운데에는 정말 이상하리만치 개뫼라 불리는 아주 낮으막한 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높이는 불과 5,60m 밖에 안 되는 산이지만 온통 돌산으로 밭 뙤기 몇 개가 서남쪽 산기슭을 따라 골짜기를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산과 봉화산에서 내려온 한 줄기 산자락의 사이에 자리 잡은 득량서초등학교는 이제 갓 10 여 회를 졸업시킨 비교적 신설에 가까운 학교로서 교통이 불편하고 규모도 작아서 군내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학교입니다.

이 작은 학교에 운동부가 활기를 띄기 시작한 것은 젊은 교사들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68년부터였습니다. 아직 역사가 깊지 않은 학교가 군내 체육대회에서 점차 그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처음으로 실시된 핸드볼대회에서였습니다. 인원수가 적기 때문에 다른 운동부는 할 수가 없는 형편이어서 학교에서 택한 운동이 핸드볼이었습니다. 비교적 출전 인원이 적고 또한 운동장이 그리 크지 않아도 되는 운동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특히 여자부분이 강해서 남자들과 힘겨루기를 할 정도이었습니다. 이웃학교가 너무 멀어서 다른 학교하고 경기를 가져 볼만한 여유도 없고 하니까 같은 학교 팀끼리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조금도 어색한 기분이 없이 남녀가 경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남자 팀에서는 아직 4학년인 김삼출이 뛰어난 볼 감각을 가지고 득점원이 되었고, 여자부에서는 6학년에서도 가장 키가 큰 박경애가 득점원 이었습니다. 언제나 경기 중에 얻은 점수의 절반가량을 이 두 사람이 차지할 정도이었습니다.

이렇게 핸드볼이 좋은 성적을 거두자 다른 부서도 출전을 하려고 했지만, 선수로 뛸만한 아이들이 없어서 핸드볼 선수가 축구 선수도 하고, 달리기 선수도 하고 탁구 선수도 합니다, 물론 같은 날 경기가 열리지 않으니까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경기에 출전을 하는 이 학교는 학생이라야 모두 약 300명 정도이니까 사실 선수가 될 만한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경기에 어느 종목에서나 가장 우수한 선수는 딱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김삼출이라는 촌스런 이름의 아이는 정말 이 학교의 가장 능력 있는 아이로 꼽힙니다. 이제 겨우 4학년이지만 출전하는 모든 경기에서 주전으로 공격 제일선을 맡아야 할 만큼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부도 일등, 문예 작품도 일등, 웅변이며, 그리기 대회까지 거의 학교 전체를 통틀어서 김삼출이 없으면 시체라고 할 만큼 모든 활동을 다 나서서 하면서도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아이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분야에서 각광을 받던 김삼출이가 마지막 선택한 경기는 탁구이었습니다. 군내에서 가장 우수한 선수 5명을 선발하여 훈련을 시키는데, 그 중에 세 명은 보성남국민학교 아이들이고 두 명이 이 학교의 선수들이었으니까, 삼출이는 당연히 보성군대표 주전 선수가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엔 약간 뒤진 실력으로 대표선수에 선발이 되었지만, 불과 한 두 달의 훈련을 거치면서 당연히 최고 기량을 가진 선수로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다른 어떤 선수와 겨루어도 지는 일이 없는 무적의 기량은 이제 감독과 겨룰 만큼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출이에겐 한 가지의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선수가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이런 정도의 선수라면 스카웃을 해서 계속 운동을 시키는 일도 많지만, 그 때만하여도 그런 기회란 정말 하늘이 내려준 기회이고 좀 채 그런 기회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6학년이 되어서는 이제 그런 걱정 때문에 갈수록 경기 성적도 나아지지 않고 날마다 기운이 빠져 갔습니다. 이제 마지막 기회인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을 하면 중, 고등학교까지 진학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학교에서라도 데려갈 것이니까요. 그런데, 삼출이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가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으니, 점점 뒷걸음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슬럼프에 빠져 점점 더 기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떠나 읍내 학교에서 날마다 10시간 이상씩을 운동만 하는 생활이 지겹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도 났습니다.

‘아무리 잘해 보았자 중학교도 못 갈 건데 이까짓 것 잘해서 무얼 해.’
이런 마음이 자꾸만 게으르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전국체전을 한 달가량 앞두고 도에서 마지막 경기가 있기 전에 집에 가서 옷들도 빨아 입고 오라고 마지막 외출을 보내 주었습니다. 삼출이는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이 무척 반갑고 몇 달만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서 신이 났습니다. 내일 오후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니까 오늘 오후와 내일 오전은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삼출이가 마을 앞에 나가자 친구들이 서너 명 놀고 있었습니다.

“여어, 삼출아, 너 오랜만에 집에 왔구나? 탁구는 재미있니? 이제 대표선수로 나가는 것이지?”
늘 함께 살아온 마을 친구 범석이가 반가워하며 이야기했습니다. 삼출이는 가볍게
“으응, 잘 있었어? 친구들 잘 지내지?”
하고 건성으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무슨 행사가 있는지 마을 사람들이 마을 앞에 모여서 시끌벅적 합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바로 친구 범석이네 집에 채일<차광 천막>이 쳐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삼출이는 얼른
“쳇 오늘 범석이 네에 무슨 잔치가 있었나?”
하고 돌아서려는데 범석이가 팔을 붙잡으면서 끌었습니다.
“너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우리 고모가 시집을 가는 날이야.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가자 우리 집에 가서 어머니께 음식을 좀 달라고 해서 먹자.”
하는데 그냥 뿌리치고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삼출이는 마음속으로
‘이 집은 정씨 가문에서 가장 윗어른 댁이니까 우리 아버지가 오셔서 일을 할 것인데 눈에 뜨지 말아야 할 텐데...... 안 가는 게 낫겠지?’
혼자 속으로 이런 계산을 해봅니다. 그러나 몇 달 만에 만난 같은 반의 친구가 잡아끄는데 뿌리치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범석이를 따라 들어가 채일을 친 저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으려는데, 범석이가 소리칩니다.
“아주머니 여기 한 상 차려 주세요.”
누구에게 한 말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소리치고 잠시 있으려니까 한 상 가득 차린 음식상을 들고 나타난 것은 삼출이 아버지였습니다.
‘아 ! 아버지, 여기서 만나지 말았으면 했는데 하필이면 아버지가 상을 들고 나타나다니........’
삼출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차마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장면을 본 삼출이 아버지는 넉살 좋게
“어? 삼출이가 왔구나? 그래 집에서 맛있는 것도 못해주었는데 잘 됐다. 자 여기 맛있는 것 더 가져다줄게 실컷 먹어라.”
하시면서 삼출이 앞에 상을 바쳐 놓으면서
“도련님, 부족 한 것 있으면 부르십시오. 더 가져다 드릴 테니....”
하자 범석이는 친구 삼출이가 있는데도 전혀 생각지 않고
“ 알았네. 이따 부를 테니 우선 놓고 가게.”
하고 아버지에게 하대를 하는 말로 어서 가라고 쫓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삼출이는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와서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삼출이 아버지는 이 마을 진주 정씨들의 청지기입니다. 돈이 없어서 마을 뒤에 세운 이 마을 윗대 어른들의 제사를 올리는 제각 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의 잔치 같은 일이 있으면 하인처럼 그 집안의 일을 도와주고 얼마간의 곡식을 품삯으로 받아서 생활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가을에 산에서 드리는 제사인 시제를 드리기 위해 마을 집안사람들이 돈을 모아 사 놓은 논과 밭을 갈아 농사지어 가지고 제사를 모시고 남은 것으로 목구멍을 지탱하는 동네 하인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 사는 모든 정씨네 일가들은 자기네 하인으로 여겨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모두 삼출이 아버지에게는 존댓말을 쓰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삼출이는 이 마을의 종놈의 아들인 셈입니다.

“여보게, 괭개 자네 거기서 무얼 하나 어서어서 손님들 상을 봄 봐주라고 하고, 상마다 모자란 것이 없는지 좀 돌아보며 가져다 드리게. 어서 !”
“예, 서방님, 염려 마십시오. 지금 상을 계속 차리고 있으니, 가져오기만 하면 됩니다요.”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부리는 사람이 삼출이 아버지입니다. 이런 모습을 어려서부터 보아 왔지만, 이제 삼출이가 나이 들어 조금씩 세상을 알게 되면서 못마땅하고 자신의 처지가 불만스러워지면서 점점 보기 싫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양반댁 아이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도련님이라고 불러서 높여 드려야 하지만, 양반의 자녀인 아이들은 종이나 하인들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고 <하게, 해라>는 등의 하대(낮추어 부르는 말)를 쓰게 되어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친구가 자기를 옆에 앉혀 놓고서 그렇게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더 이상 거기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 이 시대에 그런 말을 직접 듣고 보니 삼출이는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불쌍하고 보잘것없는 초라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잘 해 가지고 우리나라 제일의 선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가 자신을 옭아매고 비참하게 만들 것 만 같았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놈이야. 천하게 태어났으면 아버지처럼 남의 집 개 노릇이나 해야지 이렇게 열심히 해서 무얼 하겠다고 이 지랄인가?”
이렇게 혼잣말을 하던 삼출이는 산비탈에 있는 이 동네를 처음 들어와 마을 일군 어른의 산소에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봅니다. 삼출이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마을에서는 친구 범석이 고모의 결혼식으로 온 동네가 떠들썩하였습니다. 삼출이는 집으로 돌아가서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가지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삼출이는 기운이 쭈욱 빠지고 기분이 나지 않아서 운동을 할 기분도 아니고 몸도 아픈 것 같아서 그냥 자리에 누워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다 이렇게 마음과 몸이 함께 움직이는 이상한 것인지 점점 늘어지고 일어나기가 싫어졌습니다. 점심도 먹지 않은 삼출이는 저녁에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오후 늦은 시간부터 내내 잠을 잤습니다. 마치 죽어 가는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르게 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꿈을 꾸는 것인지 잠을 자는 것인지 모르는 상태로 아침이 밝아버렸습니다.

이 날 이후로 삼출이는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은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코치선생님이 이런 삼출이에게 “왜 그래? 도대체 어디가 아픈 거야? 자세히 말을 해봐야 할 것 아니야. 이제 시합이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누워 버리면 난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하며 걱정을 하였지만, 삼출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런 이야기를 알까 봐서 숨겨야 할 지경이니 말도 못하고 가슴만 아팠습니다. 그래서 자꾸 어디가 아프냐는 코치선생님의 말씀에도 무어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연습이 시작되기 전에 삼출이는 가까운 병원으로 끌려갔습니다.

“별로 열도 없고, 특별히 나쁜 곳도 보이지 않은데, 무언가 마음속에 걱정이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어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것만 같군요.”
의사선생님은 코치에게 이렇게 말을 해주면서
“언제부터 저러지요?”
하고 살그머니 물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삼출이를 밖에 내보낸 뒤였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저 얘 무슨 감추고 있는 것이 있어요. 마음속에 감춘 것을 알아내어야 할 것 같은데... 저래가지고는 운동을 계속 하기가 힘들 거예요. 정신이 집중이 안 되니까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니까요.”
의사 선생님은 코치에게 이렇게 당부를 하면서 우선 안정을 시키기 위해서 하루 이틀쯤만 가만히 쉬게 해주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코치선생님의 마음은 바지작거리며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한 달도 남지 않은 큰 시합을 앞두고 가장 믿었던 선수가 갑자기 힘을 잃고 누워버리고 말았으니 이만저만 실망이 아닙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삼출이는 이틀쯤을 쉬고 나서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연습도 열심히 참여하고 점차 제 기능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코치를 한없이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날마다 연습은 정말 피를 말리는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그런 힘든 생활을 삼출이는 잘 견뎌 주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일주일만 있으면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전남을 대표라는 마크를 달고 다른 도의 대표들과 어깨를 겨루는 경기가 열리게 됩니다. 이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최종 선수 명단과 상대방의 전력에 따라 알맞은 선수를 골라 시합을 하는 요령만이 경기를 이기느냐 지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코치선생님으로서는 이렇게 삼출이가 기운을 차려 경기에 나가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삼출이는 아직도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경기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버지처럼 동네에서 천한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로야 쉽게 당연히 경기에서 이겨서 앞으로 이 나라 제일의 선수가 되는 것이지만, 사실 삼출이가 전국 제일의 선수가 된다면 어느 신문에선가는 삼출이의 이야기를 실을 것은 틀림이 없는 일입니다. 지금 삼출이가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삼출이는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왔으면서도, 학교에서는 가장 좋은 성적으로 일등을 해왔고, 운동이나 무엇 하나 남에게 지지 않았던 아이이니까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서 “저렇게 머리가 좋아서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무엇이나 잘하는데 그 까짓 재주 있으면 뭘 해. 태어나기를 잘 못 태어나서 어디 내 놓을 게 있어야지? 제 아무리 잘나 봤자 청지기 아들 밖에 더 되나?”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면서 어른이 되어도 남들의 천대를 받아야할 아이라는 소릴 수없이 들어오던 삼출이가 이런 사정을 모를 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그렇게 큰 시련을 겪으면서 마음속으로 이번 경기를 꼭 이기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모를 일입니다. 어느 순간에 다른 생각을 하게 될는지 모르는 코치는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삼출이를 지켜보면서 다른 아이들과 달리 더욱 신경을 써왔습니다.

다행히 삼출이는 큰 문제없이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치렀습니다. 전국 제일은 아니었으나, 준우승을 차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 때 함께 뛰었던 선형수, 유재석, 안재형은 중학교에서 스카웃을 해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결국 대한민국의 대표 선수가 되어서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특히 안재형 선수는 아시안게임이니, 올림픽이니 해서 세계적인 선수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전국대회에 출전을 하였던 그 당시에 팀 안에서는 삼출이에게 미치지도 못하던 선수들이었습니다. 적어도 3 : 1 정도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던 선수들이 대한민국의 대표 선수로 자라나게 되는데 삼출이는 이런 선수 대열에서 끼지 못하고 탈락의 쓴맛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삼출이의 상대가 되지 못하던 선수들은 국가 대표선수로 자라는 길을 착실히 밟아 가는데 탈락의 쓴잔을 마신 삼출이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이냐? 넌 아무리 잘 뛰어도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청지기의 아들일 뿐이다. 네가 그걸 모르고 날뛰면 그만큼 더 큰 상처를 입을 뿐이다]
이런 자책을 하면서 날마다 마을 뒷산과 골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오그라드는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 꺼진 골방에 틀어 박혀서 혼자서 곱씹는 말이 “난 왜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내 능력도 발휘 할 수 없단 말이냐?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우리 아버지는 왜 그런 일을 하시면서 이렇게 자식들의 앞날을 막아 버렸더란 말이냐? 아니 지금이 조선 시댄가? 운동을 해서 이기면 되었지 내가 어디서 태어났으니까 안 된다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마음속에 응어리를 풀지 못해서 혼자서 울어 보기도 하고 가슴을 쥐어뜯기도 하였습니다. 껌껌한 방안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몇 날을 그냥 보내면서 한숨과 울음과 탄식만을 되풀이하던 삼출이었습니다. 아니 마지막 날에는 무려 70여 시간을 굶주린 배를 안고 스러져 가는 정신을 가다듬으려 했으나 가물거리다가 꼬박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 아니야. 아니야. 내가 무얼 잘 못한 것도 아니고 내가 경기에 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왜 이렇게 비참해진 것인가? 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발굽에 짓밟히며 뒹구르는 조약돌 같은 신세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난 저 아이들에게 진 적이 없다. 난 지지 않았어.......”
이렇게 입 속에서 신음 같은 푸념이 흘러나오면서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삼출아, 삼출아, 정신 차려라...... 어서 정신 좀 차려 봐.”
누군가가 삼출이를 부등켜 안고 흔들어 대는 것을 희미해져 가는 정신으로 들었으나,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눈을 떴다 감았다 를 되풀이 하다가 다시 스르르 정신을 놓고 허물어져 버리는 삼출이를 안고 어머니는 물을 흘러 넣으면서 한사코 흔들어 깨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삼출이의 입안에 흘려 넣은 물은 그대로 밖으로 흘러내리고 말았다.
“삼출아, 이놈아 삼출아. 도대체 무얼 먹었길래 이렇게 늘어져 버린단 말이냐?”
어머니가 한탄을 하면서 삼출이의 어깨며 가슴을 흔들어도 보고 주먹으로 두들겨도 보았지만, 삼출이는 점점 더 희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였습니다. 점점 더 늘어지는 몸을 가눌 수가 없는 어머니마저 삼출이 위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아무리 험한 세상이라지만 아직 어린 삼출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만큼 자신의 출생과 부모에 대한 큰 원망이 자신을 지탱하기에 벅찼던 것인가 보았습니다. 그렇게 스타 삼출이는 아무런 잘 못도 아무런 부끄러운 짓도 하지 않은 천사 같은 넋을 스스로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솜털이 가시지 않은 초등학생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 더 큰 실망과 설음을 안고 떠나간 것입니다.
‘청지기 아들로 태어난 서러움을 이기지 못 한 채.........’

2002.8. 26. 원중초 교장발령장을 받아든 날
득량서에서의 제자를 못 잊어서 <50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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