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또 다른 나

2010.11.01 11:39:00

아침나절에 한 젊은이가 마을로 찾아들어 마을 어귀에 길가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어르신,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다름 아니라, 제가 지금 새로 이사할 곳을 찾고 있어서요.”
노인은 고개를 들어 젊은이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럼, 젊은이가 지금껏 살았던 마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소?”
그러자 젊은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예의도 모르고, 자기의 잇속만 챙기는 참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어요. 더 이상 참고 견딜 수 없어 이렇게 이사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게 젊은이! 매우 실망스럽겠지만 여기 사람들도 다 그렇다네.”
그 말을 들은 젊은이는 서둘러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한참이 지난 그날 오후에 다른 젊은이가 와서 아침나절의 젊은이처럼 이사할 곳을 찾는다며 그 노인에게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떠한지를 묻는 것이었다. 노인은 아침나절에 젊은이에게 했던 것처럼 지금까지 살았던 그 동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바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제가 살았던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이지요. 오랫동안 한가족처럼 사이좋게 지냈는데, 제가 이번에 직장일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처럼 인정이 넘치는 곳이면 참 좋겠습니다. 어르신.”

그러자 노인은 맞장구를 치듯 환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젊은이, 자네는 정말 운이 좋구먼, 이곳 사람들은 자네가 살던 동네 사람들처럼 인정이 넘치고 마음씨가 참 곱다네. 자네가 마을 사람들을 좋아하면 그들도 틀림없이 자네를 한가족처럼 반겨줄 것이네.”

이 이야기에서 보듯 왜 노인은 아침나절의 젊은이에게는 인심이 매우 사납다고 하여 아예 이사 올 생각을 못하도록 하고, 오후의 젊은이에게는 이사와도 좋다는 말투로 이야기했을까. 아마도 마을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폄하하는 젊은이에게는 틀림없이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다고 본 것 같다. 즉 그 젊은이 내부에 잠재된 그릇된 시선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고, 그저 남만 탓하는 사람들의 편협함을 꼬집은 것이 아닐까. 어디선가 본 시 한 수가 떠올랐다.

거울 안의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웃으면 나를 따라 웃고
내가 찡그리면 그 또한 찡그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거울 안의 내가 거울 밖의 나에게 알려준 것은
내가 웃어야 남들도 따라 웃고
내가 찡그리면 남들도 나를 따라 찡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보는 타인은 어쩌면 거울에 비친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 또는 두루 살피지 않은 속좁음으로 적당히 자기식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다 열린 마음으로 타인과 공감하고자 할 때 이런 편협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눈에 비친 세상과 사람들은 어쩌면 거울 속의 나처럼 내가 만들어낸 또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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