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형 교장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2010.11.16 15:57:00

내가 만난 교단의 선배 ①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인간도 역시 입으로 걸린다. -탈무드

30년 동안 내가 만난 열여덟 분의 교장 선생님의 유형을 돌아보며 교단 혁신의 앞 자리를 맡은 선봉장이신 멋진 교장 선생님이 넘쳐나기를 비는 마음으로 내가 만난 관리자의 유형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익명이며 실제 인물의 행실을 가감 없이 기록하여 훌륭한 관리자,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관리자의 모습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 유형 - 목민관의 자세를 지닌 청빈형 교장 선생님

청빈형 교장 선생님은 정말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정말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청빈형 관리자는 가장 많은 장점을 보유하신 분이고 도덕적인 흠결이 없으니 교직에 몸 담은 분이라면 첫째로 가져야 할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에 발린 칭찬은 할 줄 모르셨고 학교 살림도 자신의 살림보다 더 아낀 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 담장 공사를 진행하다가 예산이 부족하면 자신의 봉급을 털어서 쓰는 건 보통이었고 장거리 출장을 가시면 예의 상 약간의 금일봉을 전체 교사의 이름으로 넣어드리면,
"내 앞에서 돈 자랑 하십니까?" 하시면서 드린 돈보다 두 배나 비싼 물건으로 답례를 하심으로써 추후의 모든 촌지의 근원을 근절하고자 하는 뜻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따님 혼사마저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음을 서운해 하는 교직원들에게,
"당신들이 내 가족입니까? 왜 내 딸 결혼식에 못 와서 서운해 하십니까?"라고 일갈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설날이나 추석 뒤에는 꼭 전 교직원을 관사로 불러서 떡국을 대접했던 분입니다. 혹시라도 명절에 사택으로 선물이라도 가지고 가면 어김없이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사모님이 선물 때문에 혼이 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명절에도 안절부절 작은 정성조차 표현하기 어려워하다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일꾼인지 조무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일을 하고 사셨는데 몇 년을 입어서 떨어져서 기운 체육복 차림으로 학교를 가꾸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장 선생님을 아이들도 모두 좋아하였고 동네에서도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교실을 다니시면서 유리창이 깨지진 않았는지, 새는 곳은 없는지 일일이 점검하고 다니셨지만 어떤 선생님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친정 아버지처럼, 할아버지처럼 편하게 하시면서도 모든 잣대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철학을 고수하셨던 그 분이 정말 그립습니다.

벌써 20여 년도 넘었지만 그 분의 너그러운 웃음이 그립습니다. 학교 살림이 마무리 되어가는 12월쯤이면 1년 동안 쓰고 남은 예산을 공개하시면서 남은 돈을 어떻게 투자하여 학습력을 올릴 것인지 전체 회의를 통하여 의사 결정을 하셨으니, 투명한 예산 집행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즈음보다 더 앞서 가신 그 분의 혜안은 가식이 없는 관리자의 모습, 진정성을 지닌 공직자의 모습을, 가르치는 직업을 지닌 선생의 기본 자세를 몸으로 보여 주셨기에 내 인생의 사표로 남아있습니다.

내 인생의 선배님, 말보다 행동으로

그렇게 강직하고 청빈하셨지만 인생의 선배로서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진로 문제를 상의드리면 함께 고민하고 마음으로 위로하며 대안을 찾아주려고 애쓰셨던 모습이 정말 눈에 선합니다. 틈만 나면 운동장의 유리 조각이나 쓰레기를 치우러 다니시면서도 선생님이나 아이들에게 시키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기 반이 맡은 청소구역을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 반이 하지 않으면 교장 선생님이 직접하시니 그 민망하고 죄송스러움을 아이들도 깨우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처럼 존경받는 분이었지만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마지막 1년을  남겨둔 해 여름에 그 학교 어린이 익사사고가 발생하여 지역사회가 들끓고 책임 소재 문제로 학부모와 분쟁 시비가 일었지만 그 분이 살아오신 여정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문제가 되지 않도록, 그분보다 먼저 나서서 막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고라는 것이 어찌 보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 교정을 나가시는 몇 달 전에 벌어진 사고로 괴로움으로, 자책으로 몸을 상하실 만큼 힐들어하셨다는 후문을 듣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비슷한 사고를 당한 많은 교장 선생님이 고소 고발의 대상이 되고 법적 책임까지 져야만 하는 상황이 많은 것에 비하면 그 분의 경우는 특별하였기에 많은 선생님 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오랜 동안 교직에서 쌓은 덕으로 학부모의 분노를 덮은 거라고 했지요. 그래도 그 분 스스로는 많이도 아프셨을 것입니다. 지켜내지 못한 생명이었음을 자책하시면서 평생을 아파하고도 남으신 분.

매사에 말보다 행동이 앞선 분이라 교직원을 책망하거나 아이들을 공개적으로 혼내는 일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과 같은 사표는, 그 분과 비슷한 분도 만나기 어려웠기에 지금 이렇게 더 그리워 하는지도 모릅니다. 가난함을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시면서도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셨던 내 인생의 선배가 그리운 걸 보면 가을 탓인가 합니다. 특히 말조심을 철칙으로 삼으셨기에 흠결이 잡히지 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청렴과 말조심! 물고기가 아닌 인간도 조심해야 할 것을 몸으로 보여주신 그분처럼 살고 싶습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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