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그 독특한 문화를 체험하다

2011.01.04 08:13:00

필자는 얼마 전 독특한 선거 체험을 하였다. 살고 있는 아파트 동대표가 된 것이다. 능력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억지춘향이 식으로 나선 것이다. 우리 동(棟)은 몇 년간 대표없이 지냈었다.

다행히 동 대표 단독 후보가 되어 주민들 찬반투표로 진행되었다. 같은 출입구를 쓰는 대다수 주민들이 동의를 하여 주어 동대표가 되었다. 이제 동 주민들의 민원을 듣고 봉사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 대표 회장을 역임한 퇴직한 교직선배가 권유를 한다. 이왕 봉사하는 것, 동 대표 회장에 출마하라고. 동 대표회장은 아파트 주민들이 직선으로 뽑는 것이다. 필자는 이 아파트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주위 사람들과 인간관계가 넓지 못한 것이 약점이다.


회장 후보로 두 명이 나왔다. 12월 29일이 선거일인데 하루 전날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도 유권자를 찾아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타박을 주신다. 그러고 보니 선거에 출마한 사람치고는 너무 무사태평이다. 아니다. 주민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부랴부랴 배부용 선거 홍보물(A4 1/2)을 만들었다. 선관위에서 붙인 공보물에는 기호, 성명, 사진, 학력, 경력 등은 있지만 공약이 없다. 그렇다. 선거공약을 만들자. "주민들의 작은 민원도 크게 듣겠습니다" "쾌적하고 행복한 아파트를 만들겠습니다" "저비용 고효율로 주민 부담을 줄이겠습니다"

퇴근 후 아내와 같이 홍보물을 돌리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밖으로 나온 주민들은 별로 없다. 날은 어두워오고 이대로 가다가는 성과가 없을 것 같다. 궁리 끝에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아파트를 향하는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며 전단지를 건네었다. "이번 회장에 출마한 기호 2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거 당일, 필자와 아내는 하루종일 출장이다. 세대주를 대표하여 딸이 투표를 하였다. 투표결과가 궁금하다. 관리사무소에 들어서니 이미 개표가 끝났다. 676세대 중 142세대가 투표에 참가하여 투표율은 21%. 필자는 112표를 득표하여 79%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선거관리위원들이 축하인사를 건넨다. 동대표 회장이 된 것이다.

그 다음날 조그마한 당선사례 전단지를 만들었다. 국회의원, 시도의원 흉내를 내는 것이다. 당선사례 용지는 엘리베이터 입구에 한 장 씩 붙였다. 그러면서 선거에 당선된 정치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만약 내가 국회의원이 되어 당선사례를 붙인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주민들의 다수가 필자를 지지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공직에 있어서가 아닐까? 그것도 교직에 몸담고 있어서 청렴도를 믿은 것 같다. 공직자가 부패하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만다. 아직도 교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좋은 것 같다.

관리소장을 통해 공동주택 관리규약을 이메일로 받았다. 동대표 회장의 법규상의 임무를 알기 위해서다. 그래야 맡은 바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동별 대표자 등의 해임사유도 나온다. 법령이나 규약을 위반하거나 업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할 경우이다.

함께 당선된 감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 분과 어느 정도 의견일치를 보았다. 사사로움을 버리자, 주민들의 이익과 공익을 생각하자, 규정(규약)대로 하자, 잘못된 관행은 타파하자,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자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이제 임기 2년간 동대표들과 뜻을 모아 쾌적하고 행복한 아파트를 만들어야 한다. 사사로운 이익 추구는 절대 금물이다. 동대표나 동대표 회장이나 봉사직이다. 입주자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선거공약을 지키며 봉사하려 한다. 오늘 출근하여 지역교육지원청에 겸직허가 신청을 하였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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