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이 부끄러운 시대

2011.01.10 15:37:00

모임에 가면 남의 이야기를 듣는 축에 속한다. 변변한 말재주도 없고, 또 좌중을 압도할 만한 사회적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얼굴만 내밀고, 끝자리에 앉아 있다 오는 편이다. 엊그제도 주변에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뜻하지 않게 내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발단은 내 옆자리에 중소기업의 임원이라는 사람이 앉고 시작되었다. 그 사람은 늙직했지만 외모에서는 기름이 흘렀다. 말에 자신감이 넘치고 몸짓도 익었다. 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데 툽상스러운 자기 손을 내 무릎에 얹어가며 화제를 주도했다.

그러다가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작품 활동을 여전히 왕성하게(?) 하냐며 알은 체를 해 왔다. 그 순간 주변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면서 그 사람이 다시 말이 많아졌다. 자기 안사람도 얼마 전에 수필가로 데뷔했다는 것이다. 평생교육원에 나가더니 바로 수필가가 되었다고 큰 소리를 친다. 그러더니 책도 곧 출판한다면서 은근히 자랑을 했다. 다시 술이 넘치자 요즘 주변에 작가가 흔하다며 혀끝을 찼다. 작가 배출을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대안도 제시했다.

그 사람은 처음에는 아내를 자랑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갈수록 문단의 현실에 칼날을 세웠다. 잘못된 부분도 있어서 고쳐주고 싶기도 했지만 워낙 거칠어서 말을 섞지 못했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정제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지적한 것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이 있다. 특히 작가가 너무 많다는 말에는 부끄럽기도 했다.

금년 한국문입협회 주소록에 보니 회원 수가 1만1천명이 조금 넘는다. 주변에 단체에 가입해 있지 않은 문인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문인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문인이 많은 것은 일본과 비교해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약 두 배 반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문인수가 3천 여 명에 불과하다.

같은 맥락이지만 문인이 되는 길이 너무 쉽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1990년대 이후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문학지가 우후죽순처럼 탄생했다. 자연히 잡지사는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결국 잡지사는 경영난 극복을 위해 신인 등단 제도를 두고 문단 등용자에게 책을 떠넘기는 장사를 해 왔다. 그러다보니 함량 미달의 작가가 마구 배출되고, 글 한 편도 제대로 못 쓰는 작가가 우글거린다.



그와 더불어 문단은 글 쓰는 문화보다 패거리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일부 문단정치꾼들이 신인 배출을 통해 자파 세력을 지속적으로 불리고 이를 기반으로 문단의 권력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사실 문인이 많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문인이 많으면 우리의 문학이 풍요로워진다. 따라서 자랑거리로 삼아야 한다.

문제는 문인 수가 아니라 작품의 질이다. 문인이 많아지는 만큼 그와 비례해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문인은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어설픈 글을 쓰면서 문인 행세를 하면 본인은 물론 모든 문인이 공멸하게 된다.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아무나 문인이 되는 상황은 안 된다. 현대는 자격증 시대다. 문인도 전문가로 자격증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공신력 있는 잡지를 통해서 등단하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문인 단체의 개혁이 필요하다. 문인 협회에 식구가 많아지면서 패거리가 탄생하고 권력화 하는 경향이 많다. 문협 선거 때마다 비리가 속출하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집행부는 문학 행사보다는 선거에서 있었던 비방에 대한 보복에 치중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중앙 문단에서 지방 문단까지 자행된다. 문단은 글 쓰는 문화 구현보다 패거리가 모여 반복과 질시를 일삼게 된다.

문인은 문화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다. 시대의 지성인이고, 대중에게 지식을 주는 스승이다. 달빛이 온 세상을 은은히 비추듯 고귀한 언어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는 존재이다. 문인이라고 자랑할 필요는 없지만, 문인이 부끄러운 시대라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는 문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문인이라는 명함보다 글로 말하는 문인이 필요하다. 문인은 스스로 문학습작 및 문학이론 등 문학에 관한 역량을 살찌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독자의 고달픈 인생을 어루만질 수 있는 글을 위해 밤을 밝히고,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문인은 창작의 고통을 천형으로 여기고 글을 써야 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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