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점수관련 학부모의 민원제기는 서술형 평가에 논술형평가를 가미하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미 채점과정의 객관성 확보가 어려웠기에 채점 관련 민원이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을 했었다. 학교 교사들에게 자율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것은 학교와 해당교사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자율권은 없다. 학부모가 문제를 제기했을때 학교에서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처리하게 되지만 그 정상적인 절차라는 것을 학부모가 인정하지 않으면 문제가 더욱 더 커질 뿐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
애매하거나 전례가 없는 경우에는 각 학교마다 설치되어 있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결정을 학생이나 학부모가 따르지 않게 되면 문제가 커지게 된다. 객관식 문항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문제 자체가 오류가 있다면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해결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채점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서술형 문항이 문제가 되고 있다. 수학이나 과학 등의 과목은 그래도 민원발생이 적은 편이다. 나머지 과목들은 문제의 발생소지가 매우 높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영어과의 경우, 채점과정에서 여러번 반복해서 검토를 하지만 학부모가 문제를 제기할 경우 결국은 쉽게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단 1점으로 등급이 바뀌게 되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하게 채점기준을 적용했지만 학부모가 납득하지 않는 것이 이번 문제의 핵심으로 보인다. 결국은 영어가 매우 중요한 현실에서 등급이 하락하는 것을 채점상의 불이익으로 본 것이다. 채점기준을 달리하면 자녀의 등급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기에 학교에서는 쉽게 기준을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만일 기준을 바꾼다면 또 다른 민원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학교에서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영어교과의 등급이 사실상 당락을 결정짓게 된다. 그러니 학생이나 학부모가 영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채점기준이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당연히 민원을 제기한다. 근본적으로 상급학교 입시제도가 그대로 인 채로 서술형 평가를 확대하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교사들에게 채점상의 권한을 충분히 주어야 함은 물론, 모든 것을 학교에 떠넘기는 것도 지양돼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면 상급기관에서 직권으로라도 중재를 해야 옳다. 이런 문제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거치는 것 말고는 해결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 일임했으므로 학교에서 해결하라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하다.
학생들의 창의력 신장을 위해 도입된 서술형평가가 이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다 했을 것이다. 문제제기도 이루어졌었다. 그런데도 평가의 폭만 확대했을 뿐 민원에 대처할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지나친 경쟁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현재의 입시제도에도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합격하는 현재의 제도는 진정한 입학사정관제가 아니다. 학생들의 창의력과 잠재능력을 보고 선발하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이 탈락하는 상황이 발생하기에 결국은 학교성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통해서 작게는 서술, 논술형 평가의 반영비율 조절 및 출제에 대한 자율성 부여, 채점상에서 교사의 자율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 마련이 필요하고, 넓게는 상급학교 입시에서 적용되는 내신 반영과 관련한 사항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원론적인 부분이 정비되기 이전에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현재와 같은 문제로 학부모와 학교가 갈등일 빗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