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30)

2011.02.14 09:46:00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는 선생님

“김선생, 일어났는가? 어서 나오시게.”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선생님을 불러 깨우는 소리는 바로 이웃에 사시는 교장선생님의 목소리입니다. 아직 환히 밝지도 않은 새벽 기운이 감도는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해서 이렇게 일찍 나오셔서 김선생님을 불러내십니다. 김선생님의 아들인 나 선이는 오늘 아침에도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의 부름에 억지로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면서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습니다.

“아버지, 나도 따라 갈래요.”

내가 앞장을 서려고 나서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를 데리고 차분하게 나설 틈이 없습니다. 지금 벌써 교장선생님이 아마도 작업을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지난봄부터 시작한 학교공원화계획은 이제 가장 바쁜 계절이 되었습니다. 봄부터 화단을 꾸미고 나무들을 심고, 꽃모종을 가져다 심는 등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여 왔습니다. 학교 화단은 온통 아름다운 꽃모종들이 빼곡히 들어앉아서 꽃망울을 달기 시작한 것도 있습니다. 요즘은 화단에 있는 나무들을 다시 옮겨 심어서 보기 좋게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은 꽃모종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기 때문에 이른 시간이지만 꽃모종을 하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날씨가 가물어서 꽃모종을 하기에 무척 애를 먹고 있던 참이라서 비가 오니까 교장선생님이 서두르시는 것입니다. 벌써 학교 화단에는 아저씨 두 분과 학교 사택에서 사시는 선생님이 나오셔서 옮길 꽃모종을 떠내고 있었습니다. 이 꽃모종을 심는 것은 교장선생님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선이 아빠 김선생님이 계획을 세워서 심을 곳을 정하고 심을 거리 모종의 수를 정해 주면 그대로 심어야 합니다. 선이 아빠가 가장 꽃을 잘 가꾸고 멋지게 화단을 꾸미기 때문에 이 일을 맡아서 하기로 한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교문 앞에 조그만 동산을 만들어서 교문에서 운동장이 바로 들여다 보이지 않게 만들고, 자동차가 들어오더라도 운동장을 향하여 들어올 때 똑바로 달려 들어올 수 없게 하여서 운동장에까지 과속을 하며 달려들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동산에 조그만 조형물을 만들어서 여기에 이 학교 학생들에게 날마다 일깨워주고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새겨 넣기로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작업을 학교에 있는 아저씨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어린이들이 함께 힘을 합쳐 만들어 갔습니다. 부득이한 큰 힘이 드는 것들만 밖에서 사람을 불러 일을 시키는 정도였습니다.

이 동산을 만드는데도 자동차를 불러서 흙을 실어오게 하였고, 동산의 둘레에 쌓을 큰 바위만큼 한 돌들을 실어오게 했으며, 이 돌들을 쌓는 일을 학부모들의 도움을 받아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마침 학부모 중에서 큰 바위를 다루는 기술자인 비석을 만드는 석물공장을 하는 분이 계셔서 도르래를 이용하여 큰 바위들을 이리 저리 옮기고 보기 좋게 쌓아서 예쁜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동산 가운데에는 이 학교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우고 온 세상을 짊어지고 살아라는 뜻으로 지구본을 이고 있는 조형물의 앞 면에 '날로 새로워라'는 글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 동산은 거의 내 손으로 구성하였고, 나의 글이 새겨진 것이라서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이었습니다. 교문 앞을 가로 막아선 이 동산은 등교하는 어린이들에게 마음을 다지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박선생님과 함께 화단에 세울 동물상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유치원 그림책을 사다가 거기에서 만들 동물들의 사진을 찾아서 모형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사장에서 버려진 짧은 철근 도막들을 주워 모아 두었다가 이것들을 가지고 동물 몸통의 얼개를 짜기 시작합니다. 대충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이 동물상이 부서지지 않게 하려면 이 얼개를 잘 엮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동물 모양의 얼개를 엮어낸 다음에 여기에 동물상의 모양이 되게끔 콘크리트를 발라서 모양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다리라든지, 꼬리, 귀, 캥거루의 아주 가는 앞발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약하게 만들어서는 조금만 잘못하면 어린이들이 만지거나 잡아 당겨서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몸통보다 더 정성을 쏟아서 철근을 엮고 콘크리트를 바르는데도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맨 처음에 만든 것은 사자상이었습니다. 어른의 어깨 부분에 닿을 만큼 커다란 수사자가 정면을 바라보는 그런 모습을 만들었는데 꼬리를 그냥 공중에 떠있게 만들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부득이 아래로 내려뜨려서 바닥과 연결을 시켜서 철근으로 엮어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깨 부분의 갈기와 둥글고 커다란 얼굴 모습이 나타나고 사자의 모습이 되었을 때에는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서 구경을 하였고 너무 수고를 하신 박선생님과 아빠는 술대접까지 받았습니다.

이어서 키다리 기린은 화단에 있는 커다란 배롱나무의 잎을 뜯어 먹으려고 하는 자세로 만들어 졌으며, 호랑이와 하마, 캥거루, 얼룩말 등이 만들어져서 화단의 중간 부분에 알맞게 자리를 잡아 세워졌습니다. 아빠는 이런 일이 무척 힘이 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를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이셨고, 또 박선생님과 손발이 잘 맞아서 열심히 하셨습니다. 박선생님은 동물상을 만들고 아버지는 화단의 나무들을 이리저리 배치하여 동물상과 어울리게 만들고 화단의 둑에 여러 가지 모형의 그림을 그려 넣어서 수학 시간에 직접 모형을 가지고 길이를 재고, 그려보면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도형의 안에 알맞은 식물이나 화초들을 심어서 예쁜 화단을 겸한 수학공부 자료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아버지는 늘 나무들을 옮겨 심고 다듬는 일을 하시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 덕분에 학교의 모습은 날로 달라져서 군내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학교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학교와 이웃한 교육청에 나오시는 선생님들은 그냥 지나는 분이 별로 없을 만큼 많은 분들이 다녀갔습니다. 거의 날마다 구경을 와서는 만드는 방법을 배워 가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가기도 하여서 보람을 느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이렇게 학교에만 매달려 사시기 때문에 정작 우리들과는 별로 놀아줄 시간도 없고 우리 공부를 가르쳐 주시지도 않으신 것이 우리 형제 나와 영이의 불만이었습니다. 아직 어린 우리들은 늘 학교에 가서 아버지가 일을 하시는 것을 구경도 하고 거기에서 아버지의 심부름도 하였습니다.



아름다운학교 가꾸기 시범학교로 소개 된 아름다운 정원

“너 저기 가서 주먹만큼 한 돌멩이를 두 개만 주어 가지고 올래, 저기 돌멩이를 모아 놓은 곳이 있지. 거기 가서 가져와라 응.”

이런 심부름을 시키시면 우리들은 좋아라고 가서 돌멩이를 들고 낑낑거리면서 가져다 드리고 선생님이 잘한다고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 자랑스럽기만 하였습니다.

봄철에 시작한 일은 여름이 다가고 가을이 되어서도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가을에 들어서는 동물상들이 모두 서고 화단이 완성이 되었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동상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 작품을 만드는 것도 박선생님이 직접 나서셔서 선이 아빠도 함께 만드는 것을 도왔습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어 가면서 사진을 보고 차근차근 만들어 가는데 교실 한 구석에 철근을 엮고 얼개를 만들어서 뒷 면부터 콘크리트를 발라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다음에 뒤집어서 앞면의 얼굴 모양과 칼을 쥔 모습들을 만들어 가는데 이것은 여간 어려운 작업이었는지 오후 늦게까지 작업을 하시기 일쑤였습니다. 현관 앞에 조그만 분수대를 만드는 작업도 선생님들이 손수 만들어서 분수대 꼭지만 사다가 꽂아서 분수대를 만들었고, 분수대의 위쪽에 이순신장군상을 만들어서 세웠습니다. 이 동상을 만드는 데는 무려 한 달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 때에 맞추어서 동산을 세우는 작업까지를 모두 마치고 학교 공원화 작업을 모두 마치는 것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가을이 되면서 이 학교의 화단은 온 읍내의 공원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은 놀러 왔다가 너무 예쁜 화단과 정원을 보고 그만 반해서 카메라를 들고 오면 필름 한 통이 모자라서 다시 사러갈 정도로 아름다운 정원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이 아름다운 동산은 선이와 영이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가을볕이 따사로우면 이 동산에 내려가서 풀밭에서 뒹굴기도 하고 이제 일 학년짜리 누나가 하나하나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은 사자”하고, 가르쳐 주면 우리들은 “사자”를 외치면서 만지고 타고 올라가 보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들어갈 수도 없는 그 아름다운 학교 정원에서 우리들은 일년 정도 뒹굴기도 하고,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면서 마음대로 놀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버지가 만들고, 다듬어서 가꾼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버지를 따라서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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