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31)

2011.02.15 11:40:00

피노키오의 편지

“선생님 여기가 정수네 집이예요.”
“응, 그래 ? 고맙다. 이제 알았으니 넌 돌아가거라.”
“선생님 안녕히 다녀가세요.”
“그래, 잘 가 !”

영우의 인사를 받으며 선생님은 비탈길을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찾아가는 정수는 이제 국민학교 5학년생입니다. 집안이 넉넉지 못하여 어머니가 생선을 받아 이고 다니면서 팔아서 집안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찾아가는 집도 언덕위에 덩그랗게 서 있는 자그마한 것으로, 읍내에서 주욱 벗어나서 5일 장터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가에 서 있는 정미소 뒤쪽의 언덕위에 있는데, 언덕이 어찌나 높은지 아래에 정미소가 지붕만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전근을 오시기를 묘하게도 12월에 오셨기 때문에 말썽꾸러기 우리 반을 맡게 되셨습니다. 우리 반의 아이들은 67명이었는데, 어찌나 말썽을 피웠던지 도무지 이웃 학교까지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처음 우리 반 교실에 들어오시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작년 12월 우리가 아직 4학년 2반이었을 때였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을 칠판에 쓰시고서 간단히 소개를 하신 다음에 우리에게 한 사람씩 자기를 소개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67명이나 되는 우리가 자기소개를 하는데 거의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이들의 숫자가 많기도 하였지만, 그 보다는 우리들이 어찌나 말을 잘 하지 못 하던지, 다시 하라고 시킨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윤경식입니다. 축구를 잘하고 공부는 중간도 못 됩니다”하고, 자신을 소개한 경식이 다음부터는 거의 열명이 지나도록 자기를 소개하는 말이 우리들의 귀에도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랬으니, 우리를 알아보기 위해서 시킨 선생님이야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짐작이 갔습니다.

“자 이렇게 간신히 자신을 소개하다니 참 한심하군. 그런데 너희들 손 좀 보자. 아니 이게 어디 손이냐?”

선생님은 아주 낯빛까지 변하시면서 얼굴을 찡그리셨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어찌나 장난꾸러기에다가 전번 선생님께서 체육을 맡으셔서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우리들은 우리끼리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있던 참이라 완전히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었습니다. 차가운 겨울이건만 날마다 운동장에서 구슬치기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니, 우리들은 한두 사람을 빼놓고선 모두가 손등이 갈라져서 피가 흐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을 아주 무섭게 다루셨습니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그만 우리 교실에서 소리를 지르시면 이웃교실에서 아이들이 기웃거릴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손 깨끗이 하기, 떠들지 않기, 숙제 잘하기는 날마다 조사를 하시기 때문에 우리 교실은 일주일 만에 다른 교실보다 더 깨끗하고, 조용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교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같은 망나니들을 맡을 선생님이 없고, 그 아이들을 다룰 사람은 선생님뿐이라고, 교장선생님이 다시 5학년 담임선생님으로 또 우리를 맡게 하셨기에 우리는 그대로 5 학년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이들도 하나도 바뀌지 않고 선생님도 다시 맡아서 우리는 아주 다른 반보다 빨리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이 찾아가시는 정수는 유명한 말썽꾼으로 아직도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아이 중에서 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수가 하고 다니는 짓을 다 이야기한다면 아마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정수와 가장 친하고, 가끔 같이 가서 정수가 하는 짓을 보았으니까 내말은 절대로 거짓말은 아닙니다.

정수는 4학년 때부터 동네에서 너댓 살이나 위의 형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그 형들과 같이 나쁜 짓들을 하였습니다. 형들이 하는 대로 담배를 피우고, 구두 닦는 형들과 화투를 쳐서 돈내기 노름도 하고 다녔습니다.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돈을 훔쳤습니다. 불쌍한 어머니가 생선을 팔아서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온종일 헤매고 다니다가 지쳐서, 저녁 일찍 잠이 들면 돈주머니에서 돈을 빼어내는데 한두 번이 아니고, 처음에는 자기가 사먹을 만큼의 돈만 가지고 나오더니, 나중에는 그 돈주머니를 통째로 들고 이웃 도시로 나가서 며칠이고 돌아다니며 돈을 다 써 버리고 거지꼴이 되어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4학년 때에도 두 번씩이나 이런 짓을 해서 학교에서는 이미 소문이 나 있는 아이 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미 틀린 아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이입니다.

5학년에 올라와서 얼마 되지 않은 4월 초순에 정수는 6일째 결석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정수의 일을 자세히 알아보시더니 드디어 오늘은 정수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아시고서 직접 찾아오신 것입니다.



“정수 집에 있니?”
“넷?”
“응, 마침 집에 있었구나. 난 또 어디 나가 버렸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지......”

선생님이 들어서자 정수는 눈이 똥그래가지고 선생님께 인사도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말썽만 피우는 자신을 이렇게 직접 찾아 오셨으니 면목이 없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얼굴을 보셨으니 숨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반가이 맞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으응, 그래, 혼자 있니?”
“네.”
“다들 어디 가셨어?”
“어머니는 아직 안 오셨고, 아버지는 어디 놀러 가셨나 봅니다.”
“그래? 차라리 잘 되었구나. 그럼 나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나 좀 할 수 있겠지?”
“네.”

선생님은 정수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손에 들고 가셨던 책은 마루 귀퉁이에 놓아두고 방안에 들어선 선생님은 재빨리 방안의 형편을 살펴보고 정수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생각하셨습니다. 가난의 때를 벗어나지 못한 듯한 궁색한 살림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수야, 너 요즘 무엇 했니? 오늘로 일주일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데 어디를 다녀 온 것이냐? 아니면 집에 있으면서 안 나온 것이었냐?”

선생님이 물으셨지만 정수는 무어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
“김정수 !”

선생님의 엄한 목소리가 정수의 목을 움츠리게 하였습니다. 정수는 무어라고 대답은 하여야겠는데 어떻게 말을 하여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김정수, 이번에는 얼마나 가지고 나가서 5일간을 살다가 돌아 온 거야. 엉.”

선생님은 이미 정수의 버릇을 다 알고 따지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거짓말을 잘 하는 정수라도 이젠 더 버틸 수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잘못 했습니다.”
“잘못 했다구? 무얼 어떻게 잘못 했다는 말이냐?”
“..........”

정수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자, 이제 선생님이 다 알고 왔으니 차근차근 이야기 해보자. 우선 어디로 갔다 왔니?”
“네, 이웃한 K시에 갔다 왔습니다.”
“응, 며칠 만에 집에 돌아왔지 ?”
“닷새 만에 돌아왔는데 염치가 없어서 여기저기 헤매다가 오늘 점심때에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왜 염치가 없었어?”
“어머니 돈을 가져다가 써버려서요.”
“어머니 돈을 쓴 게 염치가 없었다면, 앞으로는 안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게 하면 되지 않아?”
“선생님 저도 그럴 생각이야 하지요. 그러나 나도 모르게 가끔씩 그러게 됩니다.”
“정수야, 그럼 넌 지금 네가 한일이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는 미안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니냐?”
“물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버릇이 잘못 들어서 그러지 알고는 있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까 한 번 열심히 고쳐 볼 수 있겠니?”
“저도 이젠 고쳐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자, 좋다. 그럼 앞으로 내가 열심히 도와 줄 테니까 내일부턴 아무 소리 말고 학교에 나와야한다. 알겠니?”
“네. 내일은 틀림없이 학교에 나가겠습니다.”
“그래, 우리 정수가 선생님과 약속을 지키면 너는 이제 차츰 새로운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은 정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집을 떠나셨습니다. 정수는 집 앞까지 따라 나와서 선생님을 배웅하고 돌아왔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려던 정수는 마루 한 귀퉁이에 놓인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책이지?’

정수는 책을 들고 뛰어 내려가서 선생님께 “선생님 이 책을 두고 가셨는데요?”하고 책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은 가시던 길을 멈추고 정수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셨다가 “으응, 그 책 재미있어서 내가 읽던 것인데, 네가 읽고 싶으면 먼저 읽고 줄래?”하시면서 정수에게 주고서 가셨습니다. 책을 들고 돌아오면서 ‘이게, 무슨 책인데 선생님이 재미있어서 읽다가 두셨을까?’

정수는 더욱 궁금증이 생겨서 책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책은 '피노키오'였습니다. 선생님이 읽다가 두셨는지 책의 중간쯤이 접혀져 있었습니다. 정수는 책을 펼쳐서 선생님이 접어둔 곳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어어, 이거 아주 재미있잖아.”

정수는 저녁을 먹는 것도 잊고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아니 책을 읽는 다기 보다는 책 속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갈수록 피노키오의 하는 짓이 자기 자신과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안 듣고 제멋대로 날뛰는 피노키오는 어쩌면 정수 제 자신의 이야기인 듯만 싶었습니다.

“자식 정말 바보 같이 거짓말은 왜 해. 그러니까 하마터면 죽을 뻔 했잖아.“

혼잣말을 하면서 그냥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날 밤은 처음으로 12시 사이렌이 울리도록 까지 책을 읽었습니다. 어머니가 들어 오셔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시고선 “제 어미 못할 일만 시키고 이제 와서 웬 일이야?”하시고 다른 말씀을 안 했습니다. 이미 한두 번이 아니고 또 말을 해 봤자 쇠귀에 경 읽기󰡕라고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정수는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겠는데 도무지 염치가 없어서 사과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모른 채 하고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두고 가신 책이 정수의 난처한 입장을 피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어쨌든 정수는 이제 이 책의 선생님이 접어둔 곳에서 뒷부분을 거의 다 읽어 버렸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정수는 다른 날과 아무런 다른 점이 없이 책가방을 챙겨들고 학교로 갔습니다. 지금까지 같으면 며칠씩 학교를 빠지고 나서 학교에 가려면 아주 창피하고, 겸연쩍어서 학교에 들어가기가 싫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그냥 다니던 학교에 가는 것처럼 아무런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 ! 정수 왔구나. 아주 잘했다. 난 오늘 또 안나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지?”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정수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선생님 어제 이 책 제가 조금 덜 읽었는데, 다 읽고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 책이 재미있었니? 나도 재미있어서 읽다가 두었거든, 그럼 정수가 먼저 읽고 주려무나. 내가 나중에 읽지 뭐......”

온 교실을 쏘다니고 뛰고 장난을 일으키는 선동자 노릇을 하던 정수가 쉴 시간이 되어도 책만 읽고 앉아 있자 아이들은 이상해서 “야, 야! 정수 좀 봐라 웬일이니? 무슨 책인데 저렇게 정신을 놓고 책만 읽고 있지?”하고 소곤거리는 것도 못 들은 채 정신을 한 곳에 모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마 딴 때 같으면 덜한 숙제를 해서 검사를 맡아야 할 일이 있더라도, 그까짓 거 집어치우고 한바탕 뛰고 볼 정수였습니다. 점심시간에도 정수는 밖에를 나가지 않고 책을 읽는데 정신을 팔았습니다.

곁에서 아이들이 뛰면 오히려 “야, 뛰려면 나가서 놀아!”하고 소리를 지르며 책만 읽는 정수를 보고 아이들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야, 정수야, 무슨 책인데 그렇게 열심이냐?”

반장이자, 정수와는 무척 친하기도 한 병남이가 책을 들추며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오랜만에 책 좀 읽으니 이상하냐? 나 좀 가만히 놔 둬”하고 대꾸하면서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야, 집어 치워 네가 책에 미쳐 있으니까 이상하다. 정수 답지 않고....”
“뭐라고? 난 책 읽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
“아이, 미안 미안! 그러나 저러나 무슨 책이야?”
“너희들은 이미 다 읽었을 책이야. 가만히 놔 둬.”

이렇게 말하는 정수를 더 이상 이야기를 걸 수가 없어서 병남이도 시들해져 그냥 자리로 가서 앉고 말았습니다. 정수는 난생 처음으로 책을 한권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만화책은 읽은 것이 있지만 동화책을 끝까지, 그것도 단 하룻만에 다 읽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만화는 우선 읽기 쉽고, 재미가 있지만 아무래도 읽고난 다음에 머릿속에 남은 거라고는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읽고 나니 베네트 할아버지의 고운 마음씨에 감사드리고 싶고, 장난꾸러기 피노키오가 마치 자기의 모습인 것 같아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하였습니다.

정수는 일부러 아이들이 다 가버리도록 다 읽은 책을 다시 뒤적여서 이곳저곳을 읽으며 기다리다가, 선생님꼐 책을 가져다 드리며 “선생님 책 잘 읽었습니다. 아주 재미있었어요”하고 말을 하자 선생님은 반가운 기색을 보이시며 “그래? 재미있었니? 나도 덜 읽었는데 어서 다 읽어 보아야지”하시면서 책을 받아들었습니다.

“선생님 또 이런 재미난 이야기책이 없습니까? 한 권 더 빌려 주세요.”
“그래? 그럼 빌려 주고 말고, 어떤 책을 줄까?”

선생님은 이미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정수가 그런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부러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저것 살피다가 한 권을 뽑아서 주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했는데, 선생님이 특별히 정수에게만은 빌려 주어야겠구나. 읽고 나면 또 빌려 줄 수 있으니 날마다 라도 빌려다 보아라.”

이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학교 도서관을 맡으셨기 때문에 우리 교실에는 학교 책일망정 책이 몇 십 권 놓여 있지, 그 때(1970년대 초)는 사실 국민학교 교실에 학급도서란 것이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선생님 덕분에 학교 책을 교실에 두고 마음대로 읽을 있는 것만도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급에서만 읽을 수 있지, 집으로는 가지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수에게 만은 마음대로 빌려 주겠다고 하신 것은 선생님이 정수에게 책을 읽게 하여서 학교에 재미를 붙일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정수는 이제 열심히 책을 읽는데 재미를 붙여서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가서 뛰어 노는 것도 잊은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변한 정수를 아이들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정수는 아이들이 무어라고 하던 이상하게 생각을 하던 관계없다는 듯이 열심히 책만 읽어대었습니다. 정수는 본래 어떤 일을 시작하면 이렇게 정신을 온통 쏟아 붓는 성격이었습니다. 노는 것도, 싸움질하는 것도 한번 시작을 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질이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놀기에서 멀어지면 금방 착실하게 공부하는 어린이가 되겠구나 생각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면 친구들이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친구도 있고, 놀러가자고 조르는 친구, 왜 안 오느냐고 윽박지르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학교를 하루쯤 빠지기도 하면서 그래도 큰 탈이 없이 5학년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6학년 때에도 우리는 반을 다시 나누지도 않고, 담임선생님도 다시 우리를 맡으시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저 말썽꾸러기들을 아주 맡아서 졸업을 시켜야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장선생님께 우리 선생님은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고 합니다.

“교장선생님, 제가 그 아이들을 맡아서 졸업까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허락을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그 아이들을 맡아서 꼭 구제해야 할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성적은 별로고 말썽꾼이지만 이 아이를 반장을 시켜야 하겠습니다. 이것만은 허락을 해 주십시오.”

교장선생님도 정수는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쾌히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6학년 때는 정수가 1학기 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정수가 반장을 한다고 하자 모두들 웃어버렸습니다. 그 말썽꾸러기가 어떻게 반장을 하느냐고 따지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모른다. 앞으로 정수가 어떻게 하는지 봐라.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두고 보도록 하자.”

그날 오후부터 선생님은 정수를 붙들고 반장이 할 일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날부터 정수는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청소시간이 되면 앞장을 서서 청소를 하고, 다른 아이들이 안하고 놀고 있으면 같이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잘못을 저질러도 선생님은 “김정수! 반장이 되어가지고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하시면서 꾸짖으셨습니다. 숙제를 안 하고는 못 배기도록 해서 만약 안 해 온 날은 그 날 오후에 남아서 기어이 다 하고 검사를 맡아야 보내 주셨습니다. 정수는 조금 못 견뎌 하면서도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반에서 약간 부끄러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학교도서관에 두어야할 월간잡지의 부록으로 나온 만화책을 우리 교실에 두었는데, 이것이 조금씩 없어지더니 어느새 반도 넘게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여기 좀 보아라, 여기에서 여기까지 이 만화책이 각권마다 20권씩이 꽂혀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가량이 없어지고, 요것만 남았으니 이걸 누구 다른 반이나 도둑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반의 너희들 집에 보려고 가져다 둔 사람은 내일까지 모두 가져다 두도록 하여라.”
하고,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겨우 다섯 권이 돌아왔을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책을 잊어먹은 것도 화가 나셨지만, 우리 반의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속이려고 한다는 것이 마음 상해 하셨습니다.

“너희들을 도둑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전번에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책이 안돌아오고 있으니, 이것은 도둑이 되는 것이다. 이젠 너희들이 이 책을 모두 찾거나 도둑으로 불리거나 한 가지를 해야 하게 되었다. 어떻니 너희들을 도둑이라고 해도 괜찮겠니?”

선생님이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 날 오후 공부가 끝나고 모두들 돌아가고 나자, 정수는 선생님에게로 다가가서 “선생님, 제게다 교실 열쇠를 좀 빌려 주십시오”하고,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엇하려고?”
“제가 만화책을 찾아 놓겠습니다.”
“어떻게 찾는단 말이냐?”
“죄송하지만 사흘만 시간을 주십시오.”
“글쎄,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다 찾아 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수는 한사코 말씀을 드리지 않고 열쇠만 달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하는 수 없이 열쇠를 정수에게 맡겼습니다. 그 날 오후에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 우리들 중에 몇 사람은 정수에게 불려갔습니다.

“야, 영춘아, 우리 선생님이 내게다 열쇠를 맡기셨다. 이 열쇠를 줄 테니까 너 교실에 들어가서 만화책 세 권만 가지고 나올래. 그럼 우리 오늘 저녁 내내 공짜로 만화를 볼 수 있잖니? 너도 해봤지? 난 딱 한권 가지고 갔는데 ,우리 선생님은 그런 것을 모르시더라.....”
“나는 두 권을 가져다 팔아먹었어. 아까는 아실까봐 무섭더라야.”
“뭘 네가 두 권만 가져가, 유건이가 봤는데 다섯 권이나 가져갔다고 하던데....”

이때서야 영춘이는 ‘아차’하고 생각을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가져간 다섯 권을 가져다 놔. 만약에 안 가져다 놓으면 내가 친구들에게 모두 다 털어놔 버릴 테니까.”
“아냐, 난 정말 세 권 밖에 안 가져갔어...... ”
“또 거짓말, 아깐 두 권이라고 했는데 이제 왜 세 권이니 ?”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불려갔던 아이들은 모두다 몇 권씩을 가져다 두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단 하루만 시간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 소리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자기가 가져다 팔거나, 바꾸어 버린 책보다 한두 권을 더 가져오라고 하여도 이젠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영춘이, 상수, 종식이, 춘식이, 종갑이, 윤숙이, 상미 그럭저럭 열명 가까이 된 아이들이 모두 걸려서 할 수 없이 책을 사와야 했습니다. 물론 한두 권은 더 맡았을는지 몰라도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까, 아니라고 버틸 수도 없었습니다. 정수는 우리가 가져다 판 책방의 단골이었으니, 만약 아니라고 했다가 아저씨하고 직접 대면을 하면 자신이 곤란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책방아저씨에게 물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하나 찾아서 꼼짝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사흘 만에 책장에는 만화책이 거의 다 돌아 왔습니다. 우리들도 놀랐지만 선생님도 깜짝 놀라신 눈치였습니다.

이렇게 책을 거의 다 찾아다 놓고서 정수는 또다시 책을 읽기에 골몰하였습니다. 며칠동안이나 책읽기에 정신을 팔던 정수가 선생님께로 다가서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선생님, 나도 선생님 댁에 공부하러 가면 안 됩니까?”
“왜, 정수가 공부하러 다니려고?”
“네, 저도 밤공부를 하고 싶어요.”
“좋아. 네가 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오너라. 난 못 오게 하지만 다른 학교 애들이 몇몇이 와서 하니까, 같이 해보렴. 네게는 돈을 안 받을 테니까. 그렇지만 곧 그만 둘 것이면 안 오는 게 좋아.”

이 무렵에는 선생님 댁에 가서 모자란 공부를 더 배우는 것이 유일한 과외 공부였기 때문에 선생님이 불편하시다고 대문을 걸어 잠궈도 가만두지 않고, 담을 넘어서라도 쫓아다니면서 과외 공부를 시켜 달라고 조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딴 아이들은 집안이 넉넉하여 선생님께 조금씩 돈을 내고 다녔지만, 정수는 그럴 형편도 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정을 알고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정수는 그 날부터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선생님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하던 아이들은 눈이 둥그레 가지고 정수를 바라보면서 “선생님, 정수도 공부하러 오는 거예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정수가 공부를 하지 않고 말썽을 피웠지만, 이제부터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고 약속을 하여서, 오늘부터 여기서 함께 공부하기로 하였으니, 너희들도 모두 함께 잘 지낼 수 있었으면 고맙겠다.”
“정수도 오늘부터 이곳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나 동생들도 모두 한형제처럼 지내도록 해야 한다. 알겠지?”

선생님이 다짐을 하자 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이미 정수네 패들에게 한번쯤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두 정수를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서워서 감히 싫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뒤에 숨어 앉아서 눈짓으로 서로 싫다는 표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 정수가 이 아이들에게 앞으로는 잘 하겠다고 약속을 해야지?”
“친구들아, 이제 나도 나쁜 짓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아마 너희들은 나를 아직도 나쁜 짓만 하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이제부터는 착한 어린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단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희들에게만은 절대로 나쁜 짓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너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보호를 해주도록 할 것이니 아무 염려도 말아라.”

제법 의젓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친구들에게 꾸벅 절까지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그 소리에 너무 반가웠던지 박수까지 쳤습니다. 이렇게 되니 방안의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지고, 더구나 아이들은 이제 동네에서 무서운 것이 없게 되었으니, 한시름을 던 셈이 되었습니다.

“야, 이제 나도 정수형이 말려 준다고 해야지.”
“딴 아이들이 때리면 정수형 이야기를 해야지.”
“야, 이제부터 누가 건드리면 나한테 말만 해.내가 혼을 내어 줄 테니까.”

정수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부터 아주 싹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공부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발표를 하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이 못 푸는 문제를 정수는 자신 있게 풀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니 학급에서 아이들도 정수를 다시 보게 되었고, 반장으로 할 일도 꾸준하게 잘 하였으며,전체 아이들이 반장의 말을 잘 듣게도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아이들이나 학급이나 모두 조용하고 차분하게 잘 운영이 되었습니다.

말썽꾸러기 정수라고 읍내에서는 모두 다 알만큼 소문이 난 아이였습니다. 오죽하면 파출소, 경찰서에서도 가끔씩 학교로 전화를 해서 정수를 찾아가라고 전화를 할 만큼 말썽을 피우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정수가 이제 이렇게 변해서 착한 아이라는 소문이 나돌게 되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변화라고 해야 할일 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젠 공부도 제법 잘해서 우등상을 받을 만큼 성적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중학생이 되자 우리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습니다. 그래도 정수는 가끔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아마 나는 영영 나쁜 아이로 자라고 말았을 것이야. 난 그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어”하고, 그때를 이야기 하곤 하였습니다.

중학생이 된 정수는 1학년 때 우리들의 추천을 받아서 반장이 되었고, 다른 반에 지지 않기 위해서 저녁 늦게까지 환경정리를 하기도 하고, 우리 반의 아이들이 다른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았다고 하면 가만두지 않고 기어이 혼을 내어주기도 하여서 우리들은 정수를 무척 남자답고 고마운 아이라고 생각을 하며 자랐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할 무렵에는 아이들이 조금만 공부를 잘해도 모두 큰 도시의 유명한 학교로 진학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등생의 실력을 가지면 충분히 좋은 학교로 진학을 할 수 있는데도 정수는 한사코 읍내에 있는 농고로 진학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집의 형편이 자기가 대학에 진학을 할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어머니가 생선을 머리에 이고 다녀야 하는 처지에 자신이 대학에 진학을 한다는 것이 너무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정수야, 네가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만 가면 내가 생선 장수를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겠다. 대학을 가게 공부만 열심히 해라.”

어머니가 이렇게 당부를 해도 정수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제가 공부한다고 집을 떠나면 어머니 혼자서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어머니 일을 도와드리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집에서 집안을 돌 봐야 하지 않겠어요?”

정수의 결심은 굽힐 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정수는 중학생이 되어서 학교에서 돌아가면 집안일을 거의 다 해왔습니다. 집이 높아서 물을 길러다가 먹던 시절이었으니까, 물을 길러다 두는 것은 물론 집안 청소며 연탄 갈기나 조그만 집안의 손볼 곳은 스스로 다 손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정수가 없다면 어머니가 여간 일이 많을 것은 물론입니다. 정수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생선을 이고 시장이나 골목골목을 헤맬 때 자신은 편안하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만도 죄송스럽고, 어머니께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처지여서 정수는 절대로 대학엘 가지 않기로 마음을 다졌습니다.

정수는 자기의 생각대로 농고에 진학을 하여 근로장학생으로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녀서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또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농협이나 지도소등의 농업지도기관에 취직도 할 수 있어서 가까이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정수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서는 아주 샌님과 같이 학교일을 하는 것과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일에만 매달려서 친구들과 놀러도 가지 않고 시계추처럼 학교와 집 사이를 오가기만 하였습니다. 아무리 친구들이 놀러를 가자고 하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느 가을날 정수 어머니는 역 앞에서 그렇게도 고마우신 우리 선생님을 만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선생님을 보자 너무 반가워서 비린내 나는 손인 것도 잊고 달려가서 선생님의 손을 덥썩 잡았습니다.

“선생님! 정말 오래 간만입니다. 어디로 가셨는지 영 뵐 수가 없더니,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저를 모르시겠지요? 제가 김정수 애미입니다. 늘 우리 정수가 우리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도 못 잊어 하고 있습니다”하고, 선생님의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몹시 반가우면서도 얼른 생각이 안 나신다는 듯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선생님, 이리 오세요. 약주 한잔만 하시면서 우리 정수 얘기 좀 들어 보세요. 우리 정수가 선생님 덕분에 아주 효자가 되었답니다.”
그때서야 선생님은 말썽꾸러기 시절의 정수를 떠올리면서 “그럼, 저기 시장 가는 길목에 살던 김정수 어머니시란 말씀이시군요?” “예에. 이제야 생각이 나셨나 봐요.”

선생님은 반가이 어머니를 따라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막걸리 한 잔을 시켜 놓고서 정수 어머니는 선생님의 손을 다시 거머쥐면서 “선생님 , 우리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정수는 사람 노릇하지 못했을 것이에요. 나는 벌써 그때 내 자식이지만 포기를 하고 있던 때였으니까요. 애미가 머리에 이고 생선장수 나갈 돈까지 몽땅 가지고 나가서 써버리고 나서야 집에 돌아오는 그런 자식을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지요. 그런 망나니 같던 정수가 선생님께서 바로 잡아 주셔서 지금 농고에 다니면서 장학금을 받고 다니고, 학교에서도 칭찬이 대단하답니다. 그뿐이 아니에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일을 어찌나 잘 하는지 이 애미가 저녁에 집에 가면 밥상을 다 보아 놓았다가 저녁을 차려 주고, 어머니, 다리 아프시지요? 하면서 팔다리를 주물러 주는 아주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자가 되었어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우리 정수를 사람 만들어 주셨는데 보답도 해드리지 못하고 정말 죄송합니다.”

넋두리를 하듯이 정수 어머니의 말씀은 계속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너무나도 변해버린 정수의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한없는 기쁨을 맛보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교사로서 가장 보람찬 순간을 경험하고 있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반가움에 얼굴에 발그레 홍조를 띄시면서 “어머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우리 정수를 저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만, 지금 서울로 올라갈 차표를 가지고 막 떠나려던 참입니다, 무엇보다 말썽꾸러기 정수가 그렇게 착한 아이가 되었다는 게 저도 한없이 고맙고, 반갑습니다. 부디 더 착하고 부모님을 위해드리는 효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도 더 건강하셔서 정수가 성장하여 훌륭한 젊은이가 되는 것을 지켜보시도록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술 잘 마셨습니다.”

딱 한 잔의 술을 드시고는 미안하다는 말씀을 거듭하면서 자리를 뜨셨습니다. 정수 어머니는 따라 나와서 대합실의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를 거듭하셨습니다. 대합실의 많은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채 우리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모두들 머리를 기웃거렸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 일주일쯤 뒤에 선생님께는 한 장의 편지가 배달되었습니다.

󰡔 피노키오의 편지󰡕
선생님 제 이름을 잊지 않으셨겠지요. 선생님의 제자 김정수입니다. 선생님이 주신 피노키오를 읽고 오늘의 제가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그때 선생님께서 제게 읽히셨던 피노키오 책은 지금도 저의 책상 위에 단정히 꽂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읽히기 위해서 일부러 그 책을 놓고 가셔서, 저는 그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그 책을 읽었던 그날부터 저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신 선생님은 저를 더욱 더 확실하게 붙들어 놓기 위해서 저를 반장을 시켜주셨고, 그래서 저는 난생 처음으로 학교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고, 저는 그때부터 학교생활이 그렇게 신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그 많은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선생님 집에서 밤공부를 하면서도 선생님이 저를 그렇게 감싸 주셨기 때문에 아이들이 나를 따르게 되었고, 나는 그 아이들을 돌보아 주므로 해서 동네에서 다들 이젠 아주 얌전한 학생이 되었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되니 저는 더 이상 나쁜 짓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한번 착한 아이라고 칭찬을 받고 보니 더 착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고, 나쁜 짓은 할 수가 없어졌지요. 저는 그 덕분에 아주 착한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선생님을 생각하며, 더 착하고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여서 그럭저럭 우등상을 받을 만큼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큰 도시로 진학을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어머니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농고로 갔습니다. 아직도 충분히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고 생각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나쁜 아이라는 말은 이제 듣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오직 선생님의 인도로 그 조그만 책 '피노키오'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는 정수라는 이름보다도 '피노키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 피노키오처럼 착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후 지금까지 그런대로 잘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좀더 자라고 성인이 되어서 선생님을 찾아 뵐 때 그때도 이처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을 하겠습니다.

선생님, 어머니께서 선생님을 만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져서 이 편지를 씁니다. 선생님 더욱 건강하시고 더 좋은 가르치심으로 저와 같은 아이가 있으면 늘 저보다 더 잘 이끌어서 좋은 아이로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또 다른 '피노키오'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저 같은 아이가 있다면 모두 저와 같은 '피노키오'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1980년 8월 21일
선생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된 '피노키오' 김정수 드림

편지를 손에든 선생님은 멀리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아련히 떠오르는 그날을 생각하시면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어 갑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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