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유난히 규정짓기를 좋아한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더 그런 경향이 보인다. 나는 어느 공파 몇 대손이고, 어디 학교 출신이며, 고향은 어디인가를 연발한다. 우스갯소리로 이러저러한 관계를 연결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다 한 가족이 된다는 말도 있다.
규정짓기에 대한 일례를 둘 들어보자.
조선 개국공신 중 일등공신인 삼봉(三峰) 정도전이 우리나라 사람 팔도인물 품평을 내린 것은 유명하다. 이는 개국 초에 태조 이성계가 하명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으로 거울속의 미인처럼 우아하고 단정하다. 강원도는 암하노불(巖下老佛)로 큰 바위 아래에 있는 부처님처럼 어질고 인자하다.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로 맑은 바람과 큰 달처럼 부드럽고 고매하다.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로 바람결에 날리는 버드나무처럼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긴다고 하였다. 경상도는 송죽대절(松竹大節)로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을 절개가 있다. 북쪽에 있는 평안도는 맹호출림(猛虎出林)으로 숲 속에서 나온 범처럼 매섭고 사납다고 하고,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이라 해서 봄 물결에 던지는 돌로 비유하였다.
그런데 삼봉은 태조의 고향인 함경도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어서 하라고 재촉하자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말한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태조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이에 눈치 빠른 삼봉은 잽싸게 석전경우(石田耕牛)라고 하였다. 즉, 거친 돌밭을 가는 소처럼 묵묵하고 억세다는 뜻으로서 부지런하고 인내심이 강한 성격의 함경도인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에 용안에 꽃이 핀 태조는 삼봉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전투구 또한 지형 특성상 강인한 함경도 지방 사람들의 성품을 잘 나타내지만 고향 사람들을 개에 비유하자 심기가 불편했으리라.
범주를 더 키워서 국민성이라는 것을 말할 때 흔히 등장하는 나라가 있다. 프랑스, 영국, 독일이다. 프랑스인은 달린 후에 생각하고, 독일인은 생각한 후에 달리고, 영국인은 걸으면서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성은 무엇일까. 어느 회의에서 자기 나라의 국민성을 이해시키는 순서가 있었는데 어느 나라 사람이 프랑스는 예술, 영국은 신사, 독일은 근면, 일본은 예절 이라고 어쩌고저쩌고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때 한국 사람이 그랬단다. "빨리빨리 하고 들어가요. 나도 할 말 있는데"
요즘 동일본 지역에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해서 참화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아비규환을 넘어서 원자력 발전소의 핵물질 유출로 인하여 주변국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에서 일본인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이 있다. 대혼란 와중에도 질서정연 줄서기, 차분한 반응, 유가족들의 절제된 슬픔의 모습 등이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게다가 방송들도 그들의 모습을 유가족 동의하에 찍거나 극단적인 슬픔의 모습들을 직접 방송에 보여주지 않고 멀리서 찍는 등 자극적인 장면 연출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아수라장의 상태에서도 속으로 슬픔을 삭이는 그들을 보면서 경탄 보다는 오히려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이련가.
이러한 그들의 특징을 잘 살린 것이 '他人に 迷惑を 掛けるな'(메이와쿠 가케루나)로서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말이란다. 심지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람을 구해주면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보다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올 정도라고 한다니.
오히려 이러한 일본인들의 모습은 단순히 민족성이라고 규정할 것이 아니라 학교와 가정에서 꾸준히 이루어진 교육의 성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것은 열도로 이루어진 섬나라라는 지리적인 여건도 일조를 했겠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진 공교육과 가정교육의 힘이라고 본다. 우리도 이러한 배려 문화가 분명히 존재했고 면면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성급한 경제개발과 함께 급격한 사회변화가 이루어지면서 그러한 아름다운 배려의 전통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나만 제일 중요하다는 이기주의의 폐해가 횡행한다. 학교와 가정에서의 꾸준한 교육만이 그러한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고, 원수 같은 나라라고 해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말할 수 없는 고통에 힘들어 하는 일본인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위기를 극복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