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을 이륙하여 서해의 상공을 날아 드넓은 대륙을 내려다보며 13억7000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는 넓은 땅을 보고 감탄을 했다. 서쪽으로 가면서 많은 산들이 개간이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산의 높이가 비교적 높은데도 계단식으로 개간을 하여 밭을 만들어 경작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개간을 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중국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하면 높은 산까지 개간을 했을까 하는 동정심도 생겼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맨땅을 드러낸 헐벗은 모습은 이상해 보였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밀밭과 보리밭이 길게 펼쳐진 모습이 녹색융단을 깔아놓은 듯 했다. 서안은 넓은 평야지역에 자리 잡은 인구 1000만이 넘는 도시라고 하는데 개발의 붐이 한창이었다. 공항도 현재규모 만한 청사가 거의 완공단계였고 시가지에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높은 빌딩이 올라가고 있었다.
영접 나온 학회 회원의 차로 250여㎞ 거리에 있는 백수현(白水縣)으로 달렸다. 날씨가 흐려서 뿌연 먼지가 많이 날렸다. 한참을 가다가 작은 마을에서 양고기로 점심을 먹었다. 양고기가 들어있는 수프에 큰 호떡 같이 생긴 빵을 뜯어 넣어 고기와 함께 건져먹으니 별미였다.
피곤하여 흔들리는 차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숙소인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 뒤편 주차장에서 짐을 챙겨 내리니 마치 공장에 온기분이 들었다. 안내자를 따라 로비에서 등록부에 사인을 하고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5층 방을 들어서는 순간 호텔임을 알았다. 테이블이 놓여있는 넓은 거실과 두 개의 침대가 있는 방은 깨끗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벽걸이 TV가 거실과 방에 있었고 방에는 컴퓨터도 놓여 있었다. 테이블위에는 사과, 오이, 방울토마토가 놓여 있었다.
중국은 겉치장은 안하고 속은 알차게 꾸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인집도 겉은 페인트칠도 안하고 허름해 보이지만 집안은 잘 꾸민다는 중국의 민족성을 알 수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저녁엔 술까지 곁들여서 흥을 돋우고 사람을 쉽게 사귀며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 일행은 정장차림을 하고 갔는데 학자인 그들은 대부분 점퍼차림의 평상복을 입은 채로 나와서 좀 의아했다. 교수이거나 학식이 상당이 높은 수준인데도 양복을 안 입은 채로 단상에 나와서 발표도하고 개막식을 한 다음 기념사진 촬영도 그 복장으로 하였다.
집이나 사람이나 외모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들의 생활습관이 그대로 나타났다.
곡우(穀雨)인 20일엔 창일유적지가 있는 사관(史官)에서 제를 올리고 한자절을 제정하는 비석을 세워 개막식도 함께 하였다. 제(祭)가 끝나자마자 비가 내려 풍년을 약속하는 가운데 과수원이 많은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섬서성 북부 황능현에 위치한 규모가 큰 황제능(黃帝陵)을 관람했다.
자유로 관광을 하는 마지막 날은 진시황의 병마(兵馬)유적지, 반파(半破)유적지, 비림(碑林) 등을 답사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문화유적이 찬란하였고 문화유적을 발굴보존을 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관광객을 유치하여 수입을 창출하려는 돈 버는 수단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중·일 3국 중에 한글과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는 문자 활용 면에서 가장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의 거대한 중국을 연구하는 노력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