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나는 아이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00초등학교 000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유치원에 다니던 000입니다."
"아니,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니?"
"아, 선생님이 주고 가신 책이 있잖아요. 그 책 보고 알 수 있었어요."
요즈음도 가끔 오래 전에 근무한 학교 아이들의 전화를 받곤 합니다. 전교생이 한 가족처럼 살았으니 직접 가르친 아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그 기록들을 책으로 출간하여 헤어지던 날 주고 온 덕분에 아이들과 나의 연결고리는 이어지고 있으니 기록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교단일기는 중요해요
아이들도 자신들의 이야기와 학교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서 참 좋아했었습니다. 수행평가라는 형식을 거치며 자신들의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학교 문집의 형태로, 개인 글모음의 모습으로 자기 기록을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지만 객관적인 눈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교단일기의 필요성을 느끼곤 합니다.
200일 넘게 함께 살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교단일기를 출판하여 선물하는 것이라고 깨닫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의 일입니다. 6학년 아이들에게 날마다 일기를 쓰라고 하면 좀 맹랑한 아이들은 “선생님도 일기를 쓰세요?” "그~럼, 내 일기를 보여줄까? "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원고를 복사해서 나눠주면 금세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자신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때로는 즐거운 내용이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는 내용을 받으면 숙연해지기도 하고 자세가 바뀌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몸으로 보여주는 교육이라야 설득력이 있어요
말로 하는 것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자신들의 이름을 대하면 학교생활도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몸으로 보여주는 교육이라야 절반이라도 따라옵니다. 점심 식사 시간에도 급식 지도를 하려면 담임인 나부터 배식판을 깨끗이 비우지 않으면서 급식지도를 하면 설득력이 약해집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의 생활에 관심이 많다는 것, 좋은 일들은 기록해 줄 거라는 암묵적인 약속을 믿으며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혹시라도 사진을 찍으면, "선생님, 책에 쓰시려고 그러세요?" "그럼, 너의 행동과 말이 참 예뻐서 기록하고 싶구나."
그렇게 해서 탄생된 교단일기가 다섯 권에 이릅니다. 두고 온 학교 아이들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어제 일처럼 또렷한 그날들의 기록과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내 분신을 보며 벌써부터 여름방학을 기다립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책을 들고 찾아가서 그리움을 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내 마음의 숙제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육아일기를 남기듯, 나와 함께 숨쉰 아이들의 체취를 담아 이별의식을 치르는 날에 선물하는 즐거움을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아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 부스러기들을 줍기 위해 자판 앞에 앉습니다.
꾸지람 앞에서 눈물 흘리던 아이도 글속에 나타난 내 마음을 먼 후일에 읽고 그를 사랑하는 내 염려를 잊지 않고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벌써 55일째 부대끼며 살아온 우리 2학년 아이들의 크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이는 요즈음. 아이들이 보여주는 긍정적인 변화를 기록하는 일이 바빠졌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9명이 밥을 잘 먹는 예쁜 모습, 색칠을 참 잘 해서 기특하고 아침독서시간이면 발소리도 안 내고 들어오는 모습이 귀엽기만 합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3월, 4월. 그들에게 공들인 시간들이 이렇게 싹이 터서 꽃대를 올리며 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어미 곁을 떠나 새로운 꽃을 피우려고 날아가는 교정의 민들레 홀씨처럼 이 아이들도 자기만의 꽃을 피우려고 배움의 날개를 만들어가는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어른이 바로 나임을 자각하며 무거워지는 내 어깨를 생각합니다.
먼 후일 돌이켜 생각할 때, 나와 함께 살았던 그 교실을 즐겁게 반추해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꼬깃꼬깃 숨겨놓고 힘들 때마다 꺼내어 볼 수 있는 교단일기를 좀더 잘 쓰고 싶습니다.
내일은 우리 반 개구쟁이들을 몰고 봄꽃들이 부르는 교정을 돌아보며 마지막 봄나들이를 해야겠습니다. 며칠 동안 갇혀 지낸 교실을 벗어나 운동장으로 가야겠습니다. 펄펄 살아 뛰는 아이들이 달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호랑이 팀, 사자 팀으로 나누어 이어달리기 경주를 매우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의 상기된 볼이 벌써부터 그려집니다. 내일은 엉덩이에 뿔이 난 아이들의 터질 듯한 목소리가 월출산 자락을 휘돌아 나오는 봄바람에 실어 공부한 모습을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오십견으로 어깨가 벌어질 듯 아파도 내 곁에 아이들이 있는 동안 기록하는 이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내 글의 독자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내 책은 우리 아이들에게 보내는 연서이기도 합니다.
'기록을 남기는 교사'로서 아이들이 일기를 쓰듯, 나도 그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교단에 머무는 동안, 내 마음의 숙제를 다 해서 아이들 가슴속에 남고 싶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요?